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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Dec 04. 2024

기이한 죽음 (4/4)

연작소설

[목차]

◑ 구약의 말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 프롤로그  

♬ 기이한 죽음

♬ 다시 돌아온 죽음

♬ 안팎의 고립

♬ 저주파의 교란

♬ 사교의 주술

♬ 탈출

♬ 격리

♬ 붕괴

♬ 피란

♬ 에필로그


* <기이한 죽음> 줄거리

성경 도시는 고대의 성곽과 현대적인 건물들이 혼재된 기묘한 풍경 속에서 어둠에 잠겨 있다. 어느 날 한밤중, 도시 한복판에 말 한 마리가 높은 곳에서 추락하여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죽음은 도시 사람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그 말의 시체는 시일이 지나면서도 아무도 처리하지 않으려 한다. 사내들이 몰래 그 죽은 말을 치우려 하던 중, 미스터리한 여인이 등장하고, 여인은 죽은 말의 목을 물어뜯는다. 그 후, 여인과 사내들 사이에 폭력이 오가고, 그 와중에 죽은 말이 다시 살아나듯 일어나 사내들을 공포에 몰아넣는다. 여인은 그 후 배가 불러오며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4  

죽은 말을 도축업자에게 건네주었던 그날 밤, 몇몇의 사내가 야밤에 몰래 그 죽은 말을 수레에 태워 다른 곳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것을 맡아야 했던 사람들은 대개 아쉬운 상황에 처한 이들이었다. 도박 빚이 있거나, 도축업자의 지인이거나,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상관없이 당장 입에 풀칠할 일에 붙들린 자들이었다. 사실 아무도 말의 처리를 맡고 싶지 않았다. 어쩐지 부정 탈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성벽을 벗어나자, 그들 앞에는 밀집된 빈민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낮에도 음습하고 침침했지만, 밤에는 가난이 조금 가려진 채 낮은 포복의 불빛으로 스며드는 흥겨운 가락이 빈민가를 밝혔다. 마을에도 조금은 활기가 돌았다. 가난한 마을사람들은 환락이나 도박 등을 위해 남의 시선을 피해 그곳으로 몰려든 자들에게서 돈을 벌기도 했다. 누군가의 창백한 얼굴이 창문 너머로 잠깐 비쳤다가 사라졌다. 아무도 그들이 무엇을 나르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괜히 연루되면 마을만 피곤해질 뿐이었다. 수레를 나르는 이들은 그저 묵묵히 걸어갔다. 덜커덩대는 수레 소리가 울퉁불퉁한 돌길을 따라 퉁퉁 울려 퍼졌고, 사내들은 한껏 긴장한 듯 말을 삼키며 수레를 밀었다. 

빈민가를 벗어나자, 앞에는 들판이 펼쳐졌다. 허리까지 자란 잡초가 길을 막고 있었고, 사내들은 낫을 들고 앞서 나가며 잡초를 쳤다. 착착 소리를 내며 잡초가 잘려 나가자 짙은 풀 냄새가 퍼졌다. 길은 점점 가팔라졌고, 가파른 경사가 이어지면서 수레를 끌고 가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땀방울이 이마와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고, 손바닥은 축축해졌다. 밤공기는 후덥지근하게 습했지만, 그 속에는 찬 기운이 스며들어 있었다. 죽음이 옆에 놓인 것만 같았다. 긴장한 탓일 것이라 생각했다.

짙은 어둠 속에서 수레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죽은 말의 시신이 수레에 실려 있는 동안, 무언가 묵직하고 축축한 것이 그들 발목에 감겼다. 그들은 말없이 고된 호흡을 이어갔고,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발끝에 무언가가 들러붙는 불쾌한 기운을 느꼈다. 그 기운은 마치 도시에서부터 따라온 악몽이 점점 더 그들을 옥죄는 것처럼, 짙고 무거웠다.     


한참을 더 걸은 끝에, 그들은 들판 한가운데로 나섰다. 이곳은 그 누구도 오지 않는, 버려진 땅과도 같았다. 여기서부터는 수레를 밀기도 쉽지 않았고, 사내들은 한 걸음 한 걸음에 온 힘을 다해야 했다. 어두운 하늘 아래, 습기 찬 바람이 거칠게 불어오며 나뭇가지들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들은 그곳에 말의 시신을 내려놓고, 더 이상 할 말도, 할 일도 없는 듯 빠르게 돌아서려 했다. 무당에게 굿이라도 하게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다 돈이 드는 일이었다. 누구도 그 돈을 낼 만큼 불길함을 절실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어둠에 남겨진 죽은 말은 더 이상 아무도 보지 않기를 바라는 듯, 고요하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길을 잃은 듯한 발소리. 어둠에 잠긴 들판 끝에서, 멍한 눈으로 배회하던 여인이 나타났다. 그들에게 그녀는 그저 이상한 여인이었다. 그중 한 사람이 대낮에 그녀를 눈여겨보았던 것인지 ‘죽은 말 근처 동네를 몇 번이고 돌던 여자’라고 했다. 이미 동네에선 정신을 놓았다는 것으로 알려졌고, 얼굴이 곱상한 편이라 엉클어진 머리와 누추한 꼬락서니를 하고도 인근 남정네들에게 알게 모르게 알려졌다는 것이다.      


그녀가 그들의 뒤를 따라왔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성 밖으로 나와서 배회하던 차에 그들을 만난 것일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예기치 못한 만남도 흔한 일이었다. 그 여인은 말의 시신이 놓인 그 자리를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왔다. 바람에 머리칼이 휘날리며 그녀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 보였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초점이 없었고, 그 자리에 선 채로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했다. 그것이 그럴듯한 말로 부풀려진다면, 애초에 그런 상황에 강하게 연결된 저주가 그들을 옭아매었고, 여인을 이끌었으며, 다 예정된 만남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런 것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해도 맞는 말이었다.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겠다. 그리고 그런 만남에서도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사실 그런 일이 발생할 확률은 매우 낮기는 했다. 어쩌면 평생에 한 번도 겪지 못할 일이고, 겪고 싶지 않은 일이겠다. 

그럼에도 어쨌든 모든 게 정해졌던 것처럼, 그 여인은 죽은 말 곁에 서서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마치 그 말의 죽음에 대해 알고 있는 듯, 아니면 그 죽음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듯, 그도 아니면 불가사의한 힘에 얽혀 그곳에 있게 된 것처럼 그렇게 있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섬뜩하고 불가사의했다. 밤의 정적을 깨뜨리는 것은 그녀의 발소리뿐이었고, 주변의 풀들이 그녀의 발목에 스치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평소라면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정말 그 순간 비정상적으로 그 소리만이 크게 들렸다. 그리고 그녀는, 한 발짝씩 그 죽은 말 곁으로 다가가더니, 조용히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비로소 알맞은 자리를 찾은 듯,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머물렀다. 그러고는 천천히 일어나서는 죽은 말을 가엾다는 듯이 쓰다듬다가 갑자기 화들짝 놀라서는 그제야 무엇을 하러 왔는지 깨달았다는 듯이 말의 목을 덥석 물고는 살점을 뜯으려 했다. 

처음에는 여인이 무엇을 하려는지 쳐다보던 사내들은 말과 얽힌 사연이 여인에게 있겠거니 했다. 그러다가 맥락 없이 여인이 말의 목을 물어뜯고 있자, 놀라서는 여인을 말에게서 떼어내려 했다. 입가에 말피를 잔뜩 묻힌 여인은 돌아서서는 짜증난다는 투로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사내 하나가 화가 나서는 그녀의 머리를 툭 때렸다. 

“나이도 어린놈의 여편네가 보자보자 하니까... 재수 없게스리, 뭐하는 짓이야!”

물론 옆에 있던 사내들은 당황해서는 “지금 그게 뭐였지?”라면서 혼비백산한다. 말피로 범벅이 된 입술을 닦는 여인을 보고는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알 수 없는 부정한 기운이 자신들을 덮칠 상상 때문이었다. 그들 중 하나가 여인이 다가오려 하자, 각목으로 여인을 후려친다. 그곳에서 여인은 쓰러진다. 여인을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남자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여인을 몽둥이로 때리기 시작했다. 가볍게 때리다가, 여인이 아무 두려움 없이 거의 반사적으로 욕설을 내뱉는 것에 화가 나서는 점점 세게 때리기 시작했다. 

여인도 지지 않고 그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온갖 조롱의 말을 했다. 점점 그녀의 욕설에 모두가 취하기 시작했다. 화가 난 남자들이 광기에 휩싸인 듯 여인을 계속 두들겨 팼다. 점점 때리는 것에 흥이 나는 것처럼 두들겨 팬다. 역시 매만큼이나 모진 욕설이 내뱉어졌다. 사내들에게서도. 그 중 한 사내가 기어이 추잡한 소문에 관해 말하며, 시장에서 이미 알 만한 남정네들은 다 안다면서 허리춤을 풀려고 했다. 욕설끼리 공중에서 날벌레처럼 흩날리며 소용돌이를 일으키듯 엉켰다. 그때였다.     


어둠 속, 수레 위에 있던 죽은 말이 갑자기 꿈틀거렸다. 처음엔 작은 경련처럼 보였다. 말의 다리가 부르르 떨리더니, 그 움직임은 점점 더 커졌다. 말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다가, 어느 순간 강하게 떨리며 반쯤 감겨 있던 눈이 툭하고 떠졌다. 그 눈동자는 맑지도, 초점이 맞지도 않은, 말 그대로 죽음에 가까운 눈이었다. 그러나 그 눈 안에는 기묘한 빛이 깜박였다. 죽음의 눈이 어둠 속에서 스산하게 빛났다.

수레가 덜컹대며 흔들렸고, 말의 몸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 말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려는 듯, 앞다리가 경련을 일으키며 떨리기 시작했다. 낡고 거친 나무로 된 수레의 바퀴는 힘없이 비틀거리며 삐걱댔고, 말의 무거운 몸이 그 위에서 기괴하게 흔들렸다. 그때 말의 목이 천천히 움직였다. 길고 무거운 목이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는 듯 천천히 들리더니, 좌우로 비틀리고 위로 고개가 들렸다. 그리고 마침내 뒤로 꺾였다. 말의 몸이 부르르 떨었고 말의 머리는 제멋대로 좌우로 툭툭 떨렸다.

뼈와 근육이 마치 살아 있는 듯 비정상적으로 꿈틀거렸고, 말의 앞다리는 더 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몸의 균형을 잡으려는 듯, 말은 발을 바닥에 내려놓으려 애쓰고 있었다. 삐걱대는 소리와 함께 말의 다리는 천천히, 그러나 거칠게 펼쳐졌다. 굳어버린 관절이 비틀리며 경련을 일으키는 소리가 바람에 섞여 흉측하게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말의 몸 전체가 비틀거리며 무거운 소리와 함께 옆으로 휘청거렸다.

그런 줄도 모르고 사내들은 여자를 때리며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정도가 심해지자 말리려는 사내도 생겼다. 급기야 그들은 말리려는 사람과 계속 하려는 사람 사이에서 서로 욕설을 주고받으며 싸웠고, 어떤 사내는 여자를 향해 손을 뻗어 그녀를 강제로 습한 땅바닥에 눕히려 했다. 여자는 경기를 일으키듯 움츠러들며 눈물로 빌기 시작했고, 사내들은 그 일에 동의하지 않는 한 사내를 제압하고는 여자의 겁먹은 모습을 보며 조롱을 즐겼다. 그들이 폭력과 욕설에 몰두하는 동안, 수레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그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완전히 일어선 말의 모습이었다. 죽은 말이 마침내 완전히 일어선 것이다. 다리 근육은 굳고 부서질 듯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몸 전체가 불균형하게 흔들렸다. 눈은 초점 없이 허공을 향해 번쩍였고, 입가에서는 마른 침과 피가 섞여 나온 채였다. 말의 턱이 삐걱대며 부자연스럽게 열렸다 닫혔다. 기괴한 소리와 함께, 말의 몸은 다시 한번 크게 떨며 비틀거렸다. 말은 제멋대로 흔들리던 목에 힘을 주었고 간신히, 서서히 머리를 들어 올렸다. 낡은 수레에서 내려와 어두운 땅바닥에 발을 디디고 서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걸음마다 뼈마디라도 어긋나는 소리가 환청처럼 크게 들렸고, 마치 생명 없는 존재가 어둠 속에서 새롭게 생명을 부여받는 순간처럼 보였다. 결코 아름답지 않은 모습일지라도.

사내들은 입을 다물고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와 불신이 교차하며 일렁였고, 그들의 손은 멈춘 채로 떨렸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던 그들은 마침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공포에 휩싸여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비틀대며 일어선 그 말은 그들에게 향했다기보다는 그저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어느덧 그들 앞에 우뚝 서 있었다. 

남자들은 혼비백산해서 도망쳤고, 말은 그들의 도망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오로지 자신의 걸음걸이가 비틀거리지 않는 것에 집중하는 듯했다. 어쩌면 그저 아무런 생각이나 감각 없이 어떤 힘에 조종당하듯이 무감하게 움직였다. 마치 조종간을 잡은 존재가 서툴게 로봇의 움직임을 조종하며 적응하려는 순간인 것처럼. 그 순간 그 장소에는 어떤 의지를 고수하려는 존재는 없었다고 해야겠다. 모든 것이 어떤 운명을 따라 허탈하게 끌려갔다. 말은, 죽은 말은 여인이 있는 것도 개의치 않은 채로 어디론가 방향을 잡은 채, 어쩌면 우연히 그 방향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무언가 나오면 나오는 대로 상관없는 것처럼 오직 자신의 걸음걸이에만 집중하며, 비틀거리며, 균형을 잡으려 하면서.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여인은 한동안 자리에 누운 채 있었다. 입가에 묻은 말피 냄새가 코를 찌르는 채로 여인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흐린 밤에 별은 보이지 않았다. 여인은 조용히 웃었다. 실성한 듯 계속 웃었다. 

그날 이후로 여인의 배는 불러왔다. 아비 모를 아이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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