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목차]
◑ 구약의 말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 프롤로그
♬ 기이한 죽음
♬ 다시 돌아온 죽음
♬ 안팎의 고립
♬ 저주파의 교란
♬ 사교의 주술
♬ 탈출
♬ 격리
♬ 붕괴
♬ 피란
♬ 에필로그
* <기이한 죽음> 줄거리
성경 도시는 고대의 성곽과 현대적인 건물들이 혼재된 기묘한 풍경 속에서 어둠에 잠겨 있다. 어느 날 한밤중, 도시 한복판에 말 한 마리가 높은 곳에서 추락하여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죽음은 도시 사람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그 말의 시체는 시일이 지나면서도 아무도 처리하지 않으려 한다. 사내들이 몰래 그 죽은 말을 치우려 하던 중, 미스터리한 여인이 등장하고, 여인은 죽은 말의 목을 물어뜯는다. 그 후, 여인과 사내들 사이에 폭력이 오가고, 그 와중에 죽은 말이 다시 살아나듯 일어나 사내들을 공포에 몰아넣는다. 여인은 그 후 배가 불러오며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3
말의 시체는 여전히 그대로였고, 누구도 그것을 처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말의 시체만큼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칫 책임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 해결해야 할 일에는 되도록 모른 척했다. 누군가는 해야겠지만, 자신은 아니길 바랐다. 누구도 다가가려 하지 않았고, 한 걸음씩 뒷걸음질 치며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말 주변의 공기는 날이 갈수록 찐득찐득해졌다. 바람 한 점 없이 정체된 공기 속에서 모든 것이 알아볼 수 없게끔 뒤섞였다.
먹구름 사이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면서도 후덥지근한 한낮의 거리에서도 그 시체 주변은 어둠이 내려앉은 듯했고, 오싹한 기운에 몸서리쳐지는 듯했다. 그늘진 골목에 가득한 눅눅한 습기와 어디서부터 오는지 모를 한기가 끊임없이 스며들어 있었다. 시체 주변의 공기는 죽은 물고기가 썩어가는 듯한 끈적한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여름의 무더위로 아직 뜨거운 바닥은 덜 식은 채였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의 발바닥에 닿는 순간 그 차가운 기운을 품고 있었다. 잔열이 식은 돌 틈새로는 축축한 공기가 배어 나와 땀과 피, 그리고 비릿한 금속성 냄새를 풍겼다. 사람들은 저마다 흠칫거리며 그곳을 지나갔고, 불쾌한 기운이 몸에 묻은 듯 손을 털어내곤 했다. 찜찜한 기운에 몸서리를 쳤다. 그들은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얼굴을 찌푸리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들 발밑에 뭔가가 들러붙은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이 묵직하고 불쾌했다. 말의 시체를 바라볼 때마다 느껴지는 미묘한 기운, 그것은 오래된 상처에서 배어 나오는 진물 같았다. 한 사람은 기침을 삼키며 얼굴을 찡그렸다. 또 다른 이는 아예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이 거리의 공기는, 끈끈한 거미줄처럼 그들의 생각과 감각을 옥죄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그 주변을 돌아 지나가며 거리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인 시체를 쳐다보지 않으려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공기는 더욱더 눅눅해졌다. 거리 곳곳의 습기가 도무지 마르지 않았다. 축축한 공기 속에 묘한 끈적함이 더해졌다. 바닥에는 말의 피가 말라붙으며 검붉은 얼룩이 되었다. 얼룩은 시간이 지나며 더욱더 어두워져, 말의 죽음이라는 관념 자체가 그 자리에서 계속 썩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피로 얼룩진 돌바닥 주변에는 날벌레들이 모여들어 윙윙거렸고, 멀리서 조용히 흘러가는 흙탕물 소리마저 희미하게 들렸다. 사람들은 그 소리가 귀에 스며드는 순간마다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발끝에 달라붙는 께름칙한 기분을 떨쳐내려 애썼다. 그 죽음이 가져온 나쁜 기운이 도시의 모든 구석구석에 배어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불쾌한 냄새가 코끝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그 시체는 마치 도시의 한가운데에 거대한 악몽의 잔재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도시는 여전히 소리 없는 숨을 쉬며, 죽음을 중심으로 서서히 오염되었다.
도시 전체가 지리멸렬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 어둡고 불쾌한 기운은 건물 벽마다 스며들어 습한 곰팡이처럼 퍼져 나갔고,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침투해 들어갔다. 무언가 오래되고 사악한 것이 그 죽음의 중심에서 깨어나며 천천히 그들의 일상을 잠식했다. 그 도시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서서히 뒤틀렸다. 사람들은 그 기운 속에 점점 더 묶여 가며, 그들의 고단한 삶 속에서 계속해서 땀을 흘렸다. 이곳은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한없이 소용돌이치는 공간이 된 듯했다.
그런 도시의 거리에서 며칠 전부터 멍하게 배회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맴도는 듯했다. 몇 번이고 마을을 맴돌았다. 그녀의 눈은 넋이 나간 듯 초점을 잃었고, 그녀가 마을을 두 바퀴쯤 돌았을 시간이 지나 다시 보였을 때, 사내들은 거리 한복판에서 죽은 말의 시체를 끌고 도축업자에게 가져다주었다.
말이 거리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해서 말의 죽음에 대한 찜찜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 말이 도대체 왜, 어떻게 그런 상태로 그곳에 떨어졌는지 아무도 설명할 수 없었다. 말고기로 먹을 것인지, 부정 탄다며 태워버릴 것인지도 고민했다. 자기들이 할 것도 아니지만, 누군가는 해야 했다. 그리고 그냥 그것을 행할 이들처럼 궁금해 했다. 어떤 결정을 하든 그런 결정이 모두의 불안을 없애줄 것이라고 믿지 못하면서도, 그들의 선택을 궁금해 했다. 과연 그들이 선택하는 것인지 명령을 받드는 것인지도 궁금해 했다. 그즈음에 그 여인이 멍한 눈으로 다시금 그곳에서 보였다.
김요섭은 그 광경을 보고도 무심한 척하며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어이, 요섭 씨도 처음 봤겠지만, 나도 이런 건 처음이야. 말이 한밤중에 저잣거리에서 죽어 있다니, 이거 참 희한한 일이지. 여기가 원래 이렇게 흉흉하지는 않다고. 자네가 여기 오래 있지 않아서 잘 모를 수 있겠지만, 오해는 말라고."
투계판에서 돈을 걸고 있던 남자가 말 걸어왔지만, 요섭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이곳에 어렸을 적 부모를 따라 들어왔다. 낯선 삶, 이방인의 삶을 살다 보니 언제나 타지 사람처럼 보였다. 숨기려 해도 온전히 숨기지는 못했다.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 김요섭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그는 객지의 나그네처럼 보였다. 출세의 기회는 눈앞에서도 자신을 비껴갔다. 힘든 삶이었다. 떠돌이 생활을 그만두고 도착한 이곳, 성경에서도 사람 사는 건 큰 차이가 없었다. 모든 것을 새롭게 일궈야 했고,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해야 하는 삶이었다. 사람들은 어렸을 적 그를 보고 지나칠 뿐이었다. 모두가 정상인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긴장은 그가 점점 더 현실과 분리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