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목차]
◑ 구약의 말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 프롤로그
♬ 기이한 죽음
♬ 다시 돌아온 죽음
♬ 안팎의 고립
♬ 저주파의 교란
♬ 사교의 주술
♬ 탈출
♬ 격리
♬ 붕괴
♬ 피란
♬ 에필로그
* <기이한 죽음> 줄거리
성경 도시는 고대의 성곽과 현대적인 건물들이 혼재된 기묘한 풍경 속에서 어둠에 잠겨 있다. 어느 날 한밤중, 도시 한복판에 말 한 마리가 높은 곳에서 추락하여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죽음은 도시 사람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그 말의 시체는 시일이 지나면서도 아무도 처리하지 않으려 한다. 사내들이 몰래 그 죽은 말을 치우려 하던 중, 미스터리한 여인이 등장하고, 여인은 죽은 말의 목을 물어뜯는다. 그 후, 여인과 사내들 사이에 폭력이 오가고, 그 와중에 죽은 말이 다시 살아나듯 일어나 사내들을 공포에 몰아넣는다. 여인은 그 후 배가 불러오며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2
그러나 다음날 아침이 되자, 성경의 사람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해가 뜨자 어둠은 사라지고, 거리 곳곳에는 상인들이 어제와 다름없이 자신의 자리를 차지했다. 채소와 생선을 파는 노점상들은 큰 소리로 손님을 불러 모았고, 갓 구운 빵 냄새가 골목을 채웠다. 아이들은 아침 햇살 아래서 뛰어놀며 웃음소리를 내었고, 길거리 공연을 하는 악사들은 흥겨운 리듬을 연주하며 사람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물론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도 어딘가 모르게 삐걱거리는 불안함이 스며들어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나 노점상들 사이에서 어젯밤의 끔찍한 사건에 대한 소문이 조용히 오갔다.
"말이 떨어졌다고? 도대체 어디서?"
"분명히 다들 보았어. 저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졌다는 사람도 있고, 성벽 위에서 밀려난 거라는 사람도 있어."
"죽은 말이 갑자기 저렇게 길거리에 나타날 수 있나?"
김요섭은 그 혼잡한 시장 거리를 느릿느릿 걸으며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 옆으로 고급 세단 승용차가 지나쳤다. 벤틀리, 꼭 타보고 싶던 차였다. 도로가 포장되지 않은 조선 시대 같은, 어쩌면 고대의 이스라엘 왕국의 예루살렘 같은 낙후되고 번잡하기만 한 이곳에, 사실은 고대의 도시가 어떤지 막연히 영화 속의 모습으로 기억하므로 잘 모르기는 하지만, 어쨌든 흙탕물이 튀고 배수시설도 잘 안 된 이곳에 벤틀리가 웬말인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리 생각하자 생각에서 생각이 끌려 나와서는, 성곽의 남쪽으로 우뚝 솟은 롯데월드가 보였다. 너무도 높아서 하늘에 닿을 도전이라 하여 많은 이가 반대하였지만, 어쨌든 세워졌고 그곳에서는 세상의 어떤 곳도 살필 수 있다며, 성경의 주인이 올라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노라고 선언하기도 하였다던 전설의 빌딩이었다. 사람들은 멀리서도 산에 올라 롯데월드를 보고는 성경으로 오는 방향을 잡곤 하였다. 김요섭은 우뚝 솟은 산과 같은 건물을 보면서 순간, 어색함을 느꼈다. 그저 어색함을 느낀다는 생각만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자신이 조금 더 어색해 보였다. 이것이 말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하기야 김요섭은, 어쩐지 때때로, 그 자신이 자기 자신이 아닌 것 같았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우스운 소리라는 것쯤을 알았으나, 그는 그 자신이 다른 사람일 것 같다는 착각으로 현실에서 괴리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막연한 괴리감은 점점 강해졌다. 그가 스스로 뱉은 말이라는 것을 당연히 알았음에도 자신이 그런 말을 내뱉었다는 사실을 생경하게 느꼈다. 점점 더 그 말을 뱉은 자신을 믿을 수 없고, 그 말을 뱉은 적이 없다고, 심지어 그런 말을 뱉는 순간에도 생각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그는 키가 크고 말랐으며, 얼굴은 햇빛에 그을려 있었지만 눈빛은 날카롭고 신중했다. 새벽 일찍 몸을 움직여 일용직으로 돈을 벌고 종종 투계판에서 약간의 돈을 걸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김요섭은 이 도시의 변덕스러운 기운을 잘 알고 있었다. 마치 긴 인생을 시간을 때우며 견디는 것 같았다. 꼭 필요한 만큼, 그 필요한 만큼이 상황에 따라 점점 늘기만 하는 게 인생사인데, 그러거나 말거나 생계와 방세 정도의 적은 비용만을 해결하면서 소박하게 인생을 버텼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무기력함으로 세상을 표류하는 듯했다. 그것은 속하지 못한 자의 운명과도 같다고, 김요섭은 막연하게 느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상황의 급변, 미묘한 분위기 변화를 감지하는 것에는 탁월했다. 본능적으로 균열의 순간에 느슨하게 대처하다가 가장 먼저 나가떨어지는 희생양이 되는 신세였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누군가가 지나가며 던지는 말 한 마디, 혹은 팔짱을 낀 상인이 내뱉는 한숨 속에서 감춰진 긴장감을 포착하고 있었다.
"어이, 요섭 씨, 자네도 들었겠지?"
길모퉁이에 서 있던 한 상인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말이 한밤중에 떨어졌다는 거 말이야. 희한한 일이네. 저 윗사람들끼리 뭐라도 있었던 거겠지. 괜히 우리 같은 사람들까지 휘말리지 않았으면 좋겠군."
김요섭은 그 모든 것을 흘려듣는 척하며 대답 대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갔다. 사람들이 겉으로는 일상에 집중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끊임없이 수군대고 있었다. 어떤 이는 "그 말이 그냥 죽은 게 아닐지도 몰라. 병에 걸려서 그런 거라면..." 하고 말끝을 흐렸다. 또 다른 사람은 “그래, 말이 죽은 자리에서 피비린내가 진동을 한 채로도 한참을 서 있다가 구경꾼에게 무슨 구경났냐면서 쌍욕을 하고는 다시 쓰러졌다더군. 이 도시에서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분명해."라며 주변을 힐끗거리며 경계했다. 이쯤 되면 웃자고 하는 소리였다. 그런데도 다들 웃지 못했다.
그저 한 마리 말이 한밤중에 죽었다는 사실이 가십거리로 돌았다.
“그게 살인 사건도 아니고, 어쩌다 그랬겠지,”
사람들이 혀를 끌끌 차면서도 이야기는 금방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그 말고기, 먹을 수 있는 거 아녀? 주인이 없으면 발견한 사람이 임자인가?”
거리에 피가 뚝뚝 떨어지며 죽은 말의 모습이 김요섭의 눈앞에 선명히 떠올랐지만,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척하며 일상에 몰두했다. 이렇게 상인들과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불안이 조용히 퍼져나가고 있었다. "말고기를 처리한 사람은 어디로 갔는가?"라는 질문이 떠돌았고, 누군가는 비밀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며 그 대답을 피하려 했다. 겉으로는 평화롭고 활기차 보였지만, 고요한 호수 아래에서 무언가 어둡고 깊은 물결이 천천히 일고 있는 것처럼, 분명 지하로부터 끓어오르기 시작한 기운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 말의 죽음은 마을 사람들 사이에 개운치 않은 기운을 남겼고, 그들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그것을 견디려 애썼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정말 걱정했던 것만큼 큰일은 아닐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호들갑을 떨며 피난을 준비하는 것도 유난스러워 보였다. 이런저런 핑계를 들면서 타지로 이사한다고 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성경을 떠나는 것은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이 도시는 세상의 중심이었다. 그러니 표면으로 문제가 터져서 드러나지 않는 한, 견딜 뿐이었다. 되도록 문제의 핵심에서 비껴가면서, 함부로 나서지 않아서, 피해를 입지 않는다고 여겼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에 사람들은 점점 더 무겁고 습한 공기 속에 갇힌 듯했다. 날씨는 후덥지근해졌고, 거리 곳곳에서 날벌레들이 쉴 새 없이 들끓었다. 마을에서는 조용한 찜찜함이 감돌았지만, 시끌벅적한 동네 풍경 속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겉으로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보였다. 각자가 무언가에 집착하며 다른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묘하게 비정상적인 일상 속에서 그들은 너무나도 정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