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목차]
◑ 구약의 말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 프롤로그
♬ 기이한 죽음
♬ 다시 돌아온 죽음
♬ 안팎의 고립
♬ 저주파의 교란
♬ 사교의 주술
♬ 탈출
♬ 격리
♬ 붕괴
♬ 피란
♬ 에필로그
* <기이한 죽음> 줄거리
성경 도시는 고대의 성곽과 현대적인 건물들이 혼재된 기묘한 풍경 속에서 어둠에 잠겨 있다. 어느 날 한밤중, 도시 한복판에 말 한 마리가 높은 곳에서 추락하여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죽음은 도시 사람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그 말의 시체는 시일이 지나면서도 아무도 처리하지 않으려 한다. 사내들이 몰래 그 죽은 말을 치우려 하던 중, 미스터리한 여인이 등장하고, 여인은 죽은 말의 목을 물어뜯는다. 그 후, 여인과 사내들 사이에 폭력이 오가고, 그 와중에 죽은 말이 다시 살아나듯 일어나 사내들을 공포에 몰아넣는다. 여인은 그 후 배가 불러오며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1
구약동의 도읍, 성경의 어두운 거리는 깊고 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이 도시는 한편으로는 중세의 성곽처럼 삭막하고 비좁은 골목들이 뒤엉켜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갑작스럽게 솟아오른 현대적 건물들이 비현실적으로 섞여 있었다. 돌로 쌓은 고대의 성벽과 성탑이 위협적으로 서 있는 가운데, 콘크리트로 지어진 고층 빌딩과 밀집된 아파트 단지와 상점들이 마치 이질적인 이방인처럼 그 사이에 섞여 있었다. 그것은 결코 조화롭지 않았다. 마치 시간과 공간이 뒤틀려 혼합된 듯했다.
거리는 기이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낮의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어 길게 드리운 그림자가 거리와 골목을 뒤덮고 있었다. 그 어둠은 단순한 밤의 그림자가 아니라, 짙고 무거운 안개처럼 도시에 스며들어 바닥에서부터 천천히 기어오르는 불길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사람들이 말없이 지나다니는 거리는 정체 모를 눅눅함에 젖어 있었다. 그 습기가 발끝에서부터 치밀어 올라 사람들의 피부와 옷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 정적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깊었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 속에서 무언가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느낌을 자아냈다.
바람 한 점 없이도 공기는 묵직했고, 그 안에서 숨을 쉬는 일조차 버거웠다. 습기 찬 공기는 빗물이 고여 썩어가는 냄새를 풍기듯,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목구멍을 간지럽히며 기분 나쁜 끈적임을 남겼다. 절대로 느낄 수 없지만, 바이러스의 이동을 인간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다면 이런 식으로 감염의 순간을 느낄 것 같았다. 김요섭은 모기에 목을 물린 듯 가려운 부위를 자기도 모르게 긁어댔다.
주변에서 장사하던 사람들도 평소처럼 골목을 지나다니고 있었지만, 그 발걸음 하나하나에는 보이지 않는 망설임과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시선을 돌렸고, 입술을 꾹 다문 채 입을 떼지 않았다. 그들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는 공포가 떠다니고 있었고, 그 공포는 서서히 퍼져나가며 거리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어느 순간, 아무도 없을 법한 골목 어귀에서 낮은 속삭임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마치 도시의 지하 어딘가에서 울려 퍼져 올라오는 것 같았다. 깊은 지하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낮고 끈적한 목소리들을 환청처럼 듣노라면 이름 모를 사교의 금지된 의식이 비밀스럽게 진행되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그 소리는 명확하지 않았다. 사라지지도 않았다. 잘 들리지 않지만 집요하게 이어졌다.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기묘한 박자와 어둠 속에서 터져 나오는 낮고 끈적한 음성이 혼합된 그 소리는 듣는 이의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서게 했다. 사람들은 무언가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감지했지만, 그 정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그 의식의 소리는 도시의 정적을 더욱더 음울하게 만들었다. 소리가 사라졌다고 믿을 만큼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면 정적이 밀려오고, 그 정적의 배후처럼 불길한 소리가 백색소음처럼 도사렸다.
그 소리들은 도시의 고요한 밤 공기를 뚫고 나오며, 미묘하게 떨리는 진동으로 골목길을 가로질러 퍼져 나갔다. 가끔씩 그 목소리들은 기이한 박자에 맞춰 균일하게 읊조려졌다. 그 박자는 일정하지 않았고, 듣는 이의 심장을 따라잡을 듯 다가왔다가 갑자기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갑작스레 멈추거나 속도를 올려, 예측할 수 없는 공포를 자아냈다. 그 발음과 억양은 기괴하고 낯설었으며, 사람들의 귓가에 들어올 때마다 마치 악몽 속에서나 들을 법한 소리처럼 거부감이 느껴졌다. 그 소리들은 고전적이지도, 친숙하지도 않은 비정상적인 억양으로, 듣는 이를 깊은 무의식의 밑바닥까지 끌어내리는 듯했다. 귓가를 스치는 낮은 음성은 서늘하고, 축축하며, 마치 누군가의 귓속에 직접 들어와 속삭이는 것처럼 생생했다.
때때로 그 의식의 중심에서 작은 북소리나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일정하지 않은 간격으로 울려 퍼졌고, 듣는 이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타악기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금속의 으스러짐과 목재의 깨짐이 뒤섞인 음색이었다. 이 음향들은 깊고 낮게 울렸으며, 그 안에 무언가 살점을 베어내는 듯한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소리가 닿을 때마다 공기는 더욱더 무겁고 탁해졌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코와 폐 속으로 기어드는 소리의 잔향은 마치 지독한 냄새가 머릿속까지 스며드는 느낌을 주었다.
또한 의식의 일부인 듯, 누군가의 희미한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그 웃음소리는 진정 웃는 것이 아니었다. 악의가 가득 담겨, 듣는 이에게는 소름 끼치는 웃음이었다. 희미하지만 힘 있는 소리였다. 미끼를 걸어놓고 점점 얽혀 들어오는 낚싯바늘 같은 소리였다.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의 목소리 같지 않았다. 그 웃음소리는 한순간에 꺼지기도 하고, 또 다른 순간에는 갑자기 확성기로 확대된 듯 크게 들리기도 했다. 그 변화무쌍한 크기와 속도는 듣는 사람의 신경을 자극했고, 불안을 극대화했다.
지하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들은 지하의 돌바닥을 긁으며 걸어가는 발걸음 소리로 바뀌기도 했다. 그 발걸음은 일정하지 않았고, 조심스럽게 걷는 듯하면서도 때로는 급하게 달려가는 것처럼 들렸다. 그 발걸음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었고, 불규칙한 소리의 출처조차 알 수 없었다. 환청처럼 들었던 사람들이라면 그 소리가 자신들에게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 소리의 출처가 이름 모를 사교의 의식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렇다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이들이 참여하는지 사람들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소문으로 퍼져나갔지만, 진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 도시를 송두리째 저주의 구렁텅이로 던져놓고 파멸의 축제를 즐긴다고 하였지만, 그들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으므로, 어쩌면 그들은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소문은 되살아났고, 잦아들 때가 되어서도 쉽사리 잦아들지 않았다. 그 의식은 도시에 퍼진 비극의 전조처럼 보였고, 그로 인해 흥미로운 이야기는 계속 재생산되었으며, 목격자는 어디서든 스멀스멀 나타났다. 그렇게 들었다는 사람이든 듣지 못한 사람이든 그 소리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며 그들을 괴롭혔다.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그 소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그 소리는 더욱 명확하게 다가왔고, 그들의 마음속에 뿌리내렸다. 확인할 수 없는 사교 의식이 무엇을 불러내고 있는지, 그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채로, 그들은 점점 더 짙은 공포와 불안에 잠겼다.
그즈음 어느 날 새벽이었다. 갑자기 ‘쿵!’ 하고 무언가 무겁게 떨어지는 소리가 거리 전체를 가로질렀다. 한순간 모든 것이 멈춘 듯, 사람들은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눈을 돌렸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불빛이 겨우 비추는 곳, 거리 한복판에 무언가 큰 것이 떨어져 있었다.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니, 그곳에는 말 한 마리가 있었다. 마치 5층 높이 정도의 건물 옥상에서 떨어진 것 같이 거대한 몸뚱이가 거리 위에 무겁게 내리꽂혀 있었다.
말은 이미 죽어 있었다. 그 체구는 부서지고 찌그러져, 전혀 말의 형태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뒤틀려 있었다. 다리와 목은 보기에 흉측한 각도로 꺾여 있었고, 눈은 뒤집혀 새하얗게 굳어 있었다. 말의 얼굴은 마치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순간 그대로 고정된 듯 일그러져 있었고, 그 광경은 거리의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빛났다. 살점과 뼈가 뒤엉킨 처참한 상태의 시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이 턱 막히게 만들었다. 이 기이한 도시에서조차, 이런 모습은 비정상적이고도 끔찍했다.
비명을 지를 겨를도 없이, 말의 시체는 길가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서서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낮선 악취가 스멀스멀 퍼져나가고, 짓이겨진 살점 사이로 붉은 피가 경사진 바닥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부패한 살점을 보건대 이미 굳었어야 하는데도 피만큼은 선연하게 붉었다. 몇몇 사람들은 뒤로 물러나며 얼굴을 찡그렸고, 일부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들의 움직임은 조용하면서도 혼란스러웠다.
말이 떨어진 높이를 생각해 보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 같았다.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해야 적절했다. 이 도시 성경에서는 중세에나 있을 법한 성벽이 바로 옆에 이어져 있었고, 그 위로는 아파트와 같은 현대적인 건물이 불규칙적으로 솟아 있었다. 누군가 그 아파트 옥상에서 말을 떨어뜨렸다고 가정할 수 있을까? 아니면 더 높은 초고층빌딩 위에서? 도저히 눈에 띄지 않을 리 없고, 그곳에서 말을 사육하는 사람을 상상하기도 어렵다. 상상조차 힘든 그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혼란스럽고 두려웠다.
이 도시는 늘 어둡고 음울했지만, 말의 추락으로 한층 더해진 그 섬뜩한 풍경은 현실인지 악몽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수수께끼 같은 공포에 떠밀리듯 빠져들고 있었다. 벌써 누군가는 비명을 지르며 사건 현장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지 못한 사람들도 곧 알 것이었다.
습기로 가득 찬 거리는 눅눅하고, 바닥의 돌들은 축축하게 젖어 미끄러웠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방울들이 천천히 벽을 타고 흘러내리며 축축한 흔적을 남겼다. 벽돌 틈새마다 날벌레들이 끓었고, 거리에 흐르는 물속에는 벌레의 유충이 꿈틀거렸다. 누군가의 땀이 혼합된 듯한 눅진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고, 비릿한 피 냄새와도 같은 역한 냄새가 공기를 타고 맴돌았다.
사람들은 아무도 그 냄새의 근원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저 발걸음을 빠르게 하거나, 시선을 피하거나, 알 수 없는 불안에 뒤돌아보는 일이 반복될 뿐이었다. 그들은 무엇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싸우고 있었다. 아무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도시는 이미 자신만의 병을 앓고 있는 듯했다. 그 병은 사람들의 피부에 스며들어, 그들마저 무겁고 축축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성경의 도시는 숨을 죽인 채, 낯설고도 불균형한 풍경 속에 갇혀 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밤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