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목차]
◑ 구약의 말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 프롤로그
♬ 기이한 죽음
♬ 다시 돌아온 죽음
♬ 안팎의 고립
♬ 저주파의 교란
♬ 사교의 주술
♬ 탈출
♬ 격리
♬ 붕괴
♬ 피란
♬ 에필로그
* <프롤로그> 줄거리
어두운 기억에 시달리는 주인공은,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끔찍한 장면을 반복해서 떠올린다. 말이 사람을 공격하는 그 순간이 생생하게 남아 매일 밤 악몽으로 되살아난다. 그는 목덜미의 화상 자국을 만지며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고, 그 상처가 단순한 화재로 인한 것이라는 설명에도 믿지 않는다. 교회를 다니며 마음의 위안을 받으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 혼란스럽다. 그는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고 있다고 조언받지만, 꿈과 현실이 뒤엉킨 상황 속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헤매고 있다.
어둠 속에서 말 한 마리가, 그 날카로운 눈을 번뜩이며 서 있었다. 그 눈은 마치 나를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말은 천천히 머리를 숙이더니 갑자기 사람의 얼굴에 덮쳐들었다. 공격적으로 들이대는 이빨이 사람의 살을 찢어냈고,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도망치는 모습은 내 머릿속에서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다. 그 장면은 너무나 선명하게 박혀 있어, 매일 밤 잠들기 전마다 그 악몽이 되살아나곤 했다.
그 잊을 수 없는 경험, 마치 꿈속의 한 조각처럼 떠오른다. 경험이라 착각하지만, 어쩌면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꿈이어야만 했다. 마치 한낱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 나비의 꿈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게 나의 꿈인가? 지하철의 구석에 앉아 출퇴근을 하며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견디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이 흐릿하게 스쳐 지나가고, 지하철은 지루할 만큼 규칙적으로 덜컹거렸다. 하지만 나는 한동안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끝없이 돌고 도는 원 안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목덜미를 움켜쥐곤 했다. 거기에 있는 큰 화상 자국, 마치 오래된 상처처럼 남아 있는 흔적은 나의 무의식 속에 깊이 박힌 칼날 같았다. 대인기피증이 생긴 것도 이 때문일까? 더운 여름날에도 나는 항상 목덜미부터 어깨 부근까지를 가리는 옷을 입고 다녔다. 큰 흉터는 화재 때문이라고들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내 기억 속의 그 장면은 너무나도 생생했기 때문이다.
나는 교회를 다니며 심리적으로 많은 위안을 받았었다. 신의 가호 아래서 마음을 가다듬고,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하지만 그 끔찍한 장면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그것이 정말로 내게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나에게 주입한 허구의 기억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마치 나는 이 다중우주 속에서 끊임없이 떠도는 또 다른 나의 기억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한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그는 나에게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로 치료를 받아보라고 조언했다. 그 말을 듣고도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로 내가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기억하는 그 장면이 정말로 현실이었을까? 마치 현실과 꿈 사이를 가르는 경계가 사라진 것처럼, 모든 것이 뒤엉켜 있었다.
지하철의 기계적인 소리가 다시 귓가에 울렸다. 내가 앉아 있는 자리는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모습과 함께 섬뜩하게 비틀거렸다. 나는 무거운 공기를 느끼며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이것이 꿈일까, 아니면 현실일까 헷갈렸다. 목덜미의 ‘화상(?)’ 자국을 다시 한번 쓸어내리며, 눈을 감았다. 그 기억은 너무도 선명하고 잔인했지만, 어쩌면 나도 모르게 나비가 되어 그 꿈에서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나는 여전히 그 꿈과 현실 사이를 헤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