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7
“증세가 잦아들었어요, 정말로. 신약이 정말 효과가 있긴 하네요. 존비들에게도요.”
그 말을 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지만, 거기에는 안도감이 깃들어 있었다. 모두가 긴장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 앞에 묶여 있는 존비 환자는 이제야 겨우 고요한 모습을 되찾은 듯 보였다. 누군가는 그의 얼굴을 살피며 나지막이 기도문을 읊조렸고, 또 다른 이는 재빠르게 그의 손목을 살펴 맥박을 확인했다. 언제든 그가 깰 수 있다는 것에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존비 환자는 비틀어진 채로 의자에 묶여 있었다. 그의 피부는 창백하고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격렬한 발작으로 피멍이 들고 긁힌 자국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그의 눈은 이제 반쯤 감겨 있었고, 눈꺼풀 밑으로 흰자위가 조금씩 드러났다. 그토록 불규칙하게 떨리던 숨소리가 차츰 느려지고 깊어지면서, 마치 그는 오랜 싸움 끝에 힘겹게 잠이 든 것처럼 보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간신히 성 밖으로 뒤늦게 빠져나왔던 그였다. 사람들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변하는 경우도 있지만, 며칠 동안 멀쩡했던 사례도 있다면서 그의 상태가 온전한지 알 수 없다는 의견이 팽배했다. 바깥의 사람들은 그들이 안전하다는 확신을 갖지 못했다. 그런 식으로 성 밖으로 빠져나온 자들은 허름한 창고에 한동안 갇혀 지내야 했다. 대개는 괜찮았지만, 정말로 사람들의 염려대로 발병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도 그랬다.
평소 말수가 적었던 그는 오전부터 식은땀을 흘리더니 방금 전 갑가지 온몸이 뒤틀리듯 경련을 일으키며 끔찍한 포효를 내질렀다. 그의 입에서는 거품이 섞인 침이 흘러나왔고, 그의 혀는 마치 제멋대로 굴러가는 것처럼 입 밖으로 튀어나와 흔들렸다. 발목과 손목을 묶은 밧줄이 닿는 곳마다 깊게 파여 붉은 상처가 남아 있었고, 무언가가 그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미친 듯한 발광과 날카로운 울부짖음은 다른 격리자들을 한층 더 공포에 몰아넣었고, 모두가 그에게 물리지 않으려고 구석으로 가서 비명을 질렀다. 그곳을 열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모두가 전염되고 말 것이었다. 판단을 하기에는 촉박한 시간밖에 없었다. 그를 붙잡아 놓은 사람들의 심장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그의 몸은 싸움에 지쳐버린 듯 축 늘어져 있었다. 갈라진 입술 사이로 희미한 숨결이 새어나왔고, 이따금 깊은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에만 그의 몸이 조금씩 들썩였다. 피에 젖은 머리카락은 땀과 진흙으로 엉켜 있었고, 눈가와 볼 아래로는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가 꾹 다문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낮고 길게 끄는 신음 소리가 이따금씩 격리된 방 안을 채웠다.
누군가는 이 상황을 보고 “그가 진정되었다”며 안도의 눈빛을 보내지만, 다른 누군가는 여전히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잠든 것처럼 보이는 이 순간조차 언제 다시 발작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얼굴에는 광기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목구비는 긴장으로 일그러졌고, 이따금씩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며 잠재된 공포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존비 환자의 몸은 지금 고요한 정적 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는 언제 다시 깨어날지 모르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모두가 한 걸음 떨어진 채 그의 숨소리를 지켜보며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그가 진정으로 나았다고, 다시는 발광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떨리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존비병 환자들을 옆에 두고 사는 것은 너무도 불안했다. 그 불안은 그저 그들을 격리하는 것만으로 부족해 보였다. 존비뿐 아니라, 성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숨어 있는 구약동 사람들은 그들에게 잠재적 존비나 다름없었다. 격리 구역에 머무르는 동안 그들은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곳에서는 종종 발병 증세를 보이는 자가 나타나곤 했다.
격리된 자들은 긴장 속에 서로를 경계했다. 누군가가 불안한 신음을 내기 시작하면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불규칙한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고, 손이 떨리기 시작하면, 그들 중 누군가가 발병했음을 의미했다. 이윽고 그 환자는 괴이한 소리와 함께 몸을 비틀며 발작을 일으켰고, 심장이 터질 듯한 고동 소리가 그 공간을 뒤덮었다. 발작이 시작되면 환자는 곧바로 묶였다. 고통에 찬 비명과 함께 파닥거리는 팔다리, 뒤틀리는 얼굴을 보고 있자면, 도망칠 길 없는 공포가 다시금 밀려들었다.
그들은 묶인 채로 격리 구역 한구석에 방치되었다. 그 모습은 고요한 절망과도 같았다. 한때는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거의 괴물이 되어버린 자들을 묶어두고 사람들은 그들의 발작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그들은 마치 존비처럼 변해 있었다. 흰자위가 뒤집힌 눈동자와 불규칙하게 떨리는 근육, 시뻘겋게 부풀어 오른 상처는 그들이 곧 인간이 아니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도 아직은 시간이 있었다. 골든타임이었다. 사람들은 이때만큼은 물릴 것을 조심하면서도 그들에게 신약을 먹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물릴 위험보다는 그를 살릴 가능성이 더 높다고 믿었던 것이겠다.
신약이 투여되면, 그들은 차츰 진정되었다. 처음엔 몸의 경련이 조금씩 멎기 시작했고, 이내 뜨겁게 달아올랐던 눈빛도 흐릿해졌다. 그들의 호흡이 서서히 안정되었고, 몸부림치던 움직임도 점점 느려지더니, 마치 모든 힘이 빠져나가듯 몸이 축 늘어졌다. 그들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지만, 곧 낮고 깊은 숨소리로 잠에 빠져들었다. 잠든 그들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신약의 효과를 눈앞에서 확인한 것처럼 보였지만, 언제 다시 발병할지 모르는 불안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 과정이 되풀이될 때마다 사람들은 희망도 보았지만 여전히 의심을 놓지 못하는 자신들을 발견하곤 했다. 때때로 어떤 환자는 전혀 낫는 기색도 없었고, 재발병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나았다고 하지만 예전 같지 않아 모두에게서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더구나 그런 사례가 점점 느는 것 같았다. 존비병 바이러스가 신약에 면역력이 생겼다는 말도 돌았다. 돌연변이가 나왔다는 말도 돌았다. 그러자 사람들 사이에는, 이 병이 완전히 치유될 수 없다는 불안이 서서히 확산되었다.
존비병 의심 환자를 좀 더 강경하게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격리 구역의 작은 방에 서로서로 묶여 있었고, 신약에 의존해 증세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 시간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잠에 빠진 자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광기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언제 다시 눈을 떠, 존비처럼 발광을 시작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 환자들이 잠든 사이에야 가까스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만큼은 존비병의 발병으로 인한 혼돈과 공포가 멀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 불안은 잠깐의 휴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고 다시 시작될 그 끔찍한 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신이 올 때까지 그 끔찍한 의심과 공포와 죽음과 고통이 무한하게 반복될 것이라는 암담한 좌절감마저 생겼다. 그런 상황에서도 먹고 자야 지킬 힘이 생겼고 일을 해서 지킬 것을 마련해야 했다. 좋든 싫든 모두를 죽일 수도 없었으므로, 함께 버티고 서로를 저주하는 마음을 숨기고, 그것에서 의연해지고자 했다. 어찌 보면 모두가 살고자 버둥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