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6
신약을 가져온 자에 대한 이야기는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물처럼 빠르게 퍼졌다. 사람들은 분분했다. 그가 역병의 해결책을 가져온 고마운 자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그를 의심했다. 그의 눈빛은 예리하고도 불안정해 보였고, 미소는 어딘가 뒤틀린 듯했다고 주관적으로 말하곤 했다. 어떤 이들은 그가 단지 새로운 약을 팔아넘기려는 광기의 제약회사 연구원일 뿐이라고 속삭였다. 그는 과학을 빙자해 위험천만한 실험을 벌이며, 사람들의 절박함을 이용하는 자일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퍼졌다. 그의 손끝에서 건네지는 신약이라는 물건은 이 끔찍한 역병을 막기 위한 구원책인 동시에, 사람들을 더 큰 혼란으로 몰아넣는 음모의 도구처럼 보였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이 약이야말로 "신약"이라며 절대적 신념을 갖고 있는 듯 보였다고 한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그의 말투에는 확신이 가득했고, 그의 행동에는 마치 자신이 구세주라도 된 듯한 태도가 엿보였다. 그는 한 손에 신약을 들고 군중 앞에 서서, 마치 종교적인 연설이라도 하듯 웅변을 늘어놓았다.
“이 약이야말로 여러분을 구원할 것입니다. 나을 자는 나을 것이요, 낫지 않을 자는 낫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묘한 열정이 실려 있었다. 그것은 광신도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그는 신약을 나누어줄 때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 묻곤 했다.
“당신은 믿습니까? 당신은 당신의 가족을 구원할 수 있는 이 약을 믿습니까?”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초조한 눈빛을 던졌고, 그 시선은 마치 비판적이고 불안한 무언가를 꿰뚫어보는 듯했다. 그의 태도는 어떤 의미에서는 위압적이기까지 했다. 그가 나누어주는 신약은 무료였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결국 나중에 독점적으로 높은 값에 팔아넘기기 위한 미끼일 뿐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마약이 아닐까 염려한 셈이다. 어쩌면 그는 사기꾼이거나, 아니면 단지 약을 팔기 위해 이상한 실험을 벌이는 미친 과학자일지도 모른다. 그의 불안정한 눈빛과 광신적인 말투는 사람들의 마음에 더 큰 공포와 혼란을 심어주었고, 그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신약의 효능을 그리 쉽게 믿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차라리 사기꾼인 편이 나았다.
사람들은 갈등에 빠졌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역병에 걸려 서서히 기이한 말처럼 변해가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자가 건네는 약을 삼켜야만 했다. 그에게 열광하는 자들조차 그 광기 어린 신념의 기저에 어떤 불안한 진실이 숨어 있을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절망과 공포 속에서 그에게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설령 거짓 해결책이라도 해결책을 들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그에게서 벗어나는 길은 없었고, 그의 약을 마다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자도 많지 않았다.
물론, 정말로 그 약을 먹고 나은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신약을 가져온 자를 신뢰했고, 그의 말에 열광했다. 그러나 나아지지 않는 자들은 그를 비난하기 바빴다. "이건 다 거짓부렁이야."라고 외치며 약의 효능을 부정하려 했다. 분명 나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이 모두 하나의 사기 행각이라고, 혹은 그 나았다는 사람들 또한 한통속이 아니냐며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소란스러운 말다툼이 끝없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갈등과 불신 속에 휩싸였다. 누군가는 “말이 말 같지 않은 말을 씨불이며 두 발로 걸어 다닌 것이 원래 인간을 흉내 내는 과정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고 중얼거렸다. 이게 다 원죄를 저질렀기에 말들이 나쁜 것만 보고 배운 것이라는 의미 같기도 했다.
한편, 신약을 가져온 자는 그저 담담히 “낫지 않는 자가 있을 것이요, 나을 자가 있으리니”라며 선문답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 말은 마치 성경의 구약청사에서 "믿을 자가 있고, 믿지 않을 자가 있을 것"이라는 내용을 패러디한 것처럼 들렸다.
그의 소문을 듣고 나는 어쩐지 그 자의 말을 온전히 믿기 어려웠다. 그의 말이 지나치게 모호했기 때문이다. 그의 태도에는 알 수 없는 무책임함과 묘한 차가움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점 때문이었을까. 모두는 그를 믿으려 하면서 온전히 믿지 못하고, 여전히 인간적인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사람의 힘으로 이 사태를 해결해야만 할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고민했다. 과연 저 이상한 것들을 구약동에 격리해놓고만 방치하는 게 옳은 결정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성 밖의 말들을 간신히 죽이고, 혹시나 다시 살아날까 두려워 온통 꽁꽁 묶어서 태우기까지 했다. 그러고도 두려워 그것을 땅에 묻고, 주변을 지키게 했다. 보름이 지나도 아무 낌새가 없었다. 만일 그것들이 영영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이제 남은 말들은 성안에 갇힌 셈이었다. 여전히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살아있을 때는 말이었고, 사람이었으며, 때때로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존귀한 것이나 비천한 것이나 죽음 앞에서는 매한가지니,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저들은 부자든 평민이든 구별하지 않고 똑같구나.”
그자는 그 말들을 일컬어 ‘존비’라 하였다. 그럴 듯하였다.
물론 그의 말은 얼핏 들으면 맞는 말 같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사람들은 이 상황을 믿고 싶지 않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안과 공포를 억누르며,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다시 공격적인 말의 본능이 꿈틀거렸다.
그러자 그들에게 신약을 나누어주는 자,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자, 신뢰하기 힘든 자가 눈에 보였다. 그의 말은 일관된 면이 있었으나, 듣는 자들에 따라서는 날이 갈수록 이상한 소리로만 들렸다.
요지는, 성안에 있는 존비들도 나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약을 가져가서 탕약을 만들 때 겨자씨를 섞어 "미디움" 불에 달여 먹이면, 나을 자는 나을 것이라 했다.
“낫고 싶은 자가 나을 것이니 그때의 신약은 그들에게 유익할 것이오.”
그가 이렇게 말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 무책임한 소리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모두가 생쥐 신세 같아서 감히 그럴 수 없노라고 했다. 이제 겨우 살았는데 다시 사지로 들어갈 수 없다고도 했고, 누군가는 그것은 존비들도 원하지 않을 것이라 하였으며, 또 어떤 이는 존비들이 원하는지 모르더라도 그들을 가두고, 그들의 집으로 다시 함부로 들어가는 것도 예의는 아니라고 하였다. 이래저래 말 같은 말 사이로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이 점점 늘었다.
현실을 보자면, 벽에 부딪히며 괴이한 포효를 하는 존비들의 몸부림으로 곧 대문과 벽이 무너지고 그들이 바깥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긴박한 상황에서, 이 한가로운 소리를 듣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신약을 먹이려 그곳에 들어갈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고, 당장 어디서 겨자씨를 구할 것이며, 다급한 상태에 중불 상태인 "미디움" 설정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한가롭게 겨자씨와 미디움이라니!’
사람들은 그의 말을 흘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