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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말들이 일어나는 꿈을 꾸었다 (5/7)

단편소설

by 희원이

#5

나는 소문을 들으며, 정말로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조분문 사건이 벌어진 곳은 이곳에서 한나절 거리도 되지 않았다. 누구나 그곳에서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더 이상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나는 반대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구약의 말들이 폐기되는 날이 오고, 그 말들의 주인 중에서 말들처럼 변해버린 자들까지 함께 묻히는 비극이 펼쳐질 것임을 예감했다. 그것은 마치 역병의 비극적인 진실과도 같았다. 모든 것이 불타버리고, 성경이 잿더미가 된 채로 누가 누구를 욕하고 죽였는지는 역사의 잊힌 장면이 될 것이었다. 너무 많은 싸움과 너무 많은 죽음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면 큰 기록만이 개괄적으로 남기 마련이었다.


내게는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부산까지 내려와 피난 행렬에 섞여 들었다. 여기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가족을 잃었고, 또 누군가는 친구를 두고 떠나왔다. 그들의 얼굴엔 지친 그림자와 두려움이 서려 있었고, 날카롭게 흩어진 소문들이 사람들 사이를 떠돌았다. 아이를 업은 어머니는 매 순간 누군가에게 묻고 있었다.

“이 길이 맞나요? 이 길로 가면 안전한가요?”

하지만 어느 누구도 확답을 주지 못했다. 다들 무거운 발걸음으로 떠돌며, 마음속에 알 수 없는 공포를 안고 있었다.

일주일간의 전투 끝에 사태는 웬만큼 수습되었다고 했다. 말들은 묶인 채로 죽지 않는 시체로 버둥거렸고, 그 옆에서 말들에 깔린 채 전염된 사람들도 함께 버둥거리다 죽어갔다고 한다. 죽은 다음에 또 죽었다는 말을 들으니, 그 모습이 상상만으로도 비참했다. 증오와 저주로 가득 찬 말들이 성경의 말들이 ‘모두 죽었음에도 여전히 죽지 않은 채로’ 을씨년스럽게 속삭이고 있었다고 했다.


부산의 항구는 피난민들로 붐볐다. 해풍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사람들은 마치 끊임없이 몰아치는 파도처럼 항구를 메우고 있었다. 각자의 사연과 공포를 품은 사람들이었다. 배를 기다리는 긴 줄에서, 어떤 이들은 성경의 광경을 목격했다고 중얼거렸고, 또 다른 이들은 제주도로 떠나면 안전할 것이라는 희망을 붙들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말을 들으며, 다시는 성경의 땅을 밟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 저주받은 땅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었다. 이곳을 떠나, 더 이상 되돌아보지 않기로 하였으므로, 피난민 행렬에 섞여 몸을 낮추고, 이겨낼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한 발짝씩, 나는 더 멀리 떠나고 있었다.


그때, 성경에서 들려온 마지막 소식이 들렸다. 누군가 신약을 가져왔노라며 “구약의 말들을 폐기할 수는 없다”고 선언했다는 것이었다. 구약의 말들과 말들에게 전염된 사람들은 일단 격리하고, 그는 사람들에게 저주와 증오의 말 대신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몸을 아끼는 것처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을 건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약을 전염병을 걱정하는 사람들과 전염병에 물든 자들에게 한 알씩 나누어 주었다는 것이다. 진정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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