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글: 빌드업 & 콜라주
※ 콜라주 재료 (일부 게재되었거나, 게재 예정)
→ [삼행시]어쩌면 너무도 아름다우니, 신이 아름답다면
→ [삼행시]황후마마여
→ [삼행시]너를 사랑하고도
→ [삼행시]길가에 누운 단풍
“네 이름이 뭐니? 어디서 길을 잃은 거니? 넌 아기처럼 아무 기억이 없는 모양이구나.”
예- 상했던 일이 허무하게
쁘- 러지곤
곤- 경에 처한 적이 있었다.
바- 스락거리며
르- 저처럼 쭈그리곤 비닐을 이불 삼아
는- 물을 벗하였다.
뷰- 랑자가 되어선
티- 없이 맑은 정오의 하늘을 보며 따스한 햇볕을 잠시나마 느끼고자 서울역 광장에서 누워본 적이 있었나.
가- 련한 여인은 화장실
히- 터 옆에서 추위를 피하였고, 남자는 신문지를 구해와 여자의 머리에 종이를 덮어주었다. 새벽이었다.
꿈에선 한 여자가 내게 이름을 묻곤 했어요. 그 여자가 누군지 알아야 할 것 같은데, 기억 나지 않았어요. 그저 그녀는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니, 못내 웃으며 마들렌 과자 하나를 손에 쥐여주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곤 하였지요.
그 주변엔 벤치가 있고 어떤 남자가 신문을 펼쳐 읽고 있었지요. 별 건 아니었어요. 오늘의 운세 따위를 보고 있었는데, 그게 멀리서도 잘 보이는 것 같았죠. 그래서 꿈이란 걸 꿈에서도 알아챘지요. 꿈에선 그런 것쯤은 이상한 일도 아니었으니까요.
그곳을 홀로 지나서 아무도 없는 길로 들어서곤 하였어요. 어쩐지 쓸쓸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으레 그런 것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요. 꿈속에선 의외로 의연하고 담담하였지요. 감정이란 게 멀리서 나를 바라보는 존재일 뿐, 내 것이 아닌 듯하였거든요.
눈을 떴을 때는 추위가 느껴졌지만 오른쪽으로 기댄 팔에서 약하게 스미는 라디에이터의 온기가 있었고, 그 온기는 서서히 세지고 있었죠. 새벽 5시의 화장실은 더 직설적인 찬 바람을 막아주고 있는 데다가, 낯선 사내가 덮어주던 신문지 한 장은 의외로 꽤 효과가 좋았답니다. 이제 곧 전철의 손님들이 몰려들면, 오래 있을 수 없었지만, 온기로 언 몸을 녹이는 데에는 짧은 순간이라도 소중했어요.
당장에야 신을 찾지 않겠지만, 울적할 때나 위급할 때면 무심코 탄식하고 어쩌면 그리웠던 감탄사처럼, 기질 속에 억지로 팽개쳐두었던 합리적 하소연처럼, 때로는 배신하는 일본의 외교 전술처럼, 그럼에도 다락방에 숨겨놓은 비밀스러운 의지처럼, 신에게 기도하게 될지도 모르죠.
누군가는 그것조차 아주 귀찮은 일로 여겼어요. 오랫동안 버려지지 않아서 그런 한가로운 낭만을 찾는 거라며 그럴 여유를 부리려면 일단 돈을 훔칠 대상부터 찾으라 하였어요.
한번쯤 했을 만한 신을 향한 몽상을 사치스러운 비곗살로 비웃던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죠.
제가 어째서 이곳에 있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나질 않아요.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죠. 현실감이 없어진 채로 위험한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았죠. 모든 안전 장치가 풀린 느낌이랄까요. 똑같은 풍경이었을 뿐인데 말이죠. 남들은 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하철 역으로 오고, 또 자가용을 몰아서 출근을 하였어요. 그런 순간에 확고하게 믿었던 삶에 대한 좋은 방향이 갑자기 한꺼번에 사라진 듯했어요.
분명 살던 곳과 유사한 풍경 속에 놓였는데,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서 사고의 순간 뒤를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해야 할까요. 이런 곳에서는 오늘 살아있던 사람이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어요. 모두가 특별히 누가 죽을 것인지도 궁금해하지 않았죠. 당장 내가 살아야 했으니까요.
제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있게 되었는지, 어떤 변을 당했던 것인지 저는 기억하지 못한답니다.
겨울의 새벽을 한껏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은 일어나서는 바깥을 배회했어요.
호기로운 사내 몇몇은 역의 광장에 누워서 신문지를 덮고는 직사광선을 쬐려고 했죠. 조금이나마 단잠을 잘 수 있다고 해야 할까요. 머지않아 단속반이 뜨겠지만, 배짱 있게 버티던 사내들도 있기 마련이었지요.
그런 사내들을 온전히 믿으면 안 될 일이죠. 때로는 내게 방패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치명상을 입힐 존재일 수도 있었으니까요. 무리를 잘 판단해야 했어요.
그렇게 있다가 이유 없이 죽은 사람도 여럿 보았답니다. 하기야 사람이 죽는데 무슨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겠지요. 싸움에 휘말려 죽을 수도 있고, 추위와 병 때문일 수도 있고.
죽고 싶어서 죽은 사람도 있고, 때로는 길 가다가 뜻하지 않게 바닥에 누운 채로 손인사하듯 죽어버린 사람도 있었지요. 그러니 갑자기 길거리로 나앉게 된 사람들에게 어떤 이유 같은 건 사치스러워 보였죠.
그때 전 근처에서 그 광경을 보고 신고했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가는 행운을 누렸답니다. 어떻게든 중형만은 피하면서 유치장에서 버티며, 추위를 피할 방법을 궁리했는데, 형사들도 호락호락하지는 않더군요. 조금이라도 신빙성이 없다면, 바로 쫓아내겠다는 식으로 말을 몰아 붙이더군요.
“아가씨, 여기 있을 사람의 차림새는 아닌데, 무슨 변을 당하신 것 아니에요? 이름이 뭐죠?”
어쨌든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까요. 겨울을 피할 만큼만 형벌을 받길 원했는데, 정신병원에 가야 한다는 진단을 받으니까요.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어째서 그곳에 있어야 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요. 세상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때도 있었죠.
일단은 그럴 만큼 여유롭진 않았으니까요.
며칠 동안 밥을 규칙적으로 먹고 침대에서 잠을 자다 보니, 갑자기 그런 이유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하더군요. 어째서 내가 여기에 누워있는지 말이에요. 천장은 아무 말도 해주질 않았어요.
그때 이르러서야 가끔은 신도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너무도 아름답다고 하니, 억하심정이 들더군요.
“죽었던 그 사내, 제게 신문지를 덮어주곤 하던 사내였는데, 그 사람 덕분에 이번 겨울은 잘 보내게 되었죠.
그땐 그게 그렇게 고마웠어요. 가끔은 그가 어째서 죽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