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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Dec 24. 2024

등굣길의 우리는 서로를 알거나,

에세이: 외국어영역

등굣길, 그것은 매일 아침 반복되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새벽길에 버스를 타고 장사를 나가는 어른들처럼

학생들에게는 등굣길을 걸어야 했다.     


의무 교육 때문이다. 

의무 교육이 아니라면 학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을 테니, 이래저래 

일어나기 싫은 아침의 법칙은 

만고의 진리였으므로,     


학원 일정 탓에 방학이 더 싫다는 

어느 강남의 아이들처럼

때때로

차라리

등굣길이 더 낫기도 하였다.     


학생들은 비슷한 표정으로 조용히 걸었다. 

졸린 것을 이기는 표정이란 그리 흔하지 않았다. 

     

선선한 아침 공기가 볼을 스칠 때, 

우리는 서로를 힐끗 보곤 했다. 

무언의 인사가 오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에는 말 한 마디 섞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자신의 생각에 잠겨 있었고,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면서도 굳이 

말을 걸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등굣길의 우리는 서로를 아는 존재, 그러나 때로는 

단지 얼굴만 아는 존재로 그 길을 함께 걷고 있었다.     


그 얼굴을 알아서 꼭 아는 친구 같은 

익숙함이 스며 있었지만, 

대화를 나눈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존재의 확인만으로 충분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침마다 이렇게 익숙하지만 낯선 관계 속에서 

걷는다는 것은 묘한 안정감을 느끼게 했다.    

  

어른이 되고서는 집 앞 길목을 지날 때 자주 마주치던 사람을 보면 어쩐지 

미소를 머금게 되는 것과 엇비슷했다.      


모르면서도 아는 외국어처럼

얼굴은 알지만 이름은 모르는 사이, 

그들은 종종 비슷한 장소에서 나를 지나쳤다. 

그래서 어쩐지 잘 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모르는 외국어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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