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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 준비든 공무원 시험이든 영어가 문제야

에세이

by 희원이

대학교에 입학한 후,

잠시 행정고시에 도전해보려는 마음을 먹었다.

그때는 모두가

고시나 공무원 시험 준비를 권장하던 시기였다.

높은 위상이나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성공의 보증수표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행정고시 준비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곧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첫 번째 시험조차 제대로 보지 않고

일찌감치 손을 놓았다.

법조문을 하나하나 짚으며 읽는 시간이 지나면

엉덩이는 따끔거리고

머리는 멍해졌다.

그 후로는 행정학과와는 거리를 두었고,

전공을 정할 때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고시 준비든 공무원 시험이든, 내 발목을 잡는 것은

영어였다. 물론 이 경우에는 영어도

발목을 잡은 것뿐, 다른 과목이 나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공무원 시험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보려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 후에는 유통업체에 잠깐 입사했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은 나와 맞지 않았다. 고민 끝에 그만두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해 보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공무원 시험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좀 쉬운 급수부터 시작해보자’는 생각으로

준비를 시작했지만, 영어가 또다시 발목을 잡았다.

이번에도 다른 과목이 나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물론 다른 과목을 열심히 공부했던 것도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영어는 언제나 문제였다. 다른 과목은 노력하면 성적이 조금이라도 오르는 느낌이 들었지만, 영어는 아니었다.

마치 바닥없는 구덩이처럼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점수는 답보 상태였다.


암기식으로 달달 외우는 문법과 단어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으나, 어느 순간

그마저도 한계를 느꼈다.


공무원 시험의 영어 과목은 나에게 장벽이나 다름없었다.

토익보다 더 어렵다거나 했던 것도 아닌데,

그냥 하기 싫어서 머리가 말을 안 들었다고 하는 편이

적절하다. 머리가 굳은 것이다. 머리가 영어에게 필패한 기억만을 감지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 장벽은 마치 눈앞에 있지만 절대

넘어갈 수 없는 벽처럼 보였다. 결국,

그 시험조차 제대로 치르지 않고

작은 기업에 취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다.

원래 잘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들 하지 않나?

나는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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