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지금은 취직 걱정이 대학 생활의 절반을 차지하는 시대지만, 한때는
'어디에 취직할까'를 고민하던 시대가 있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특히
명문 대학으로 불리는 서울대에서는
그 분위기가 더욱 두드러졌다.
그렇다고 내가 서울대에 다녔던 건 아니다.
들은 이야기지만, 친구들이 한 말이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그에 따르면,
학과방에 들어서면
벽에 가득 붙어있는 각종 대기업의 지원서류와 모집 공고들이 눈에 들어왔다.
과장해서 말하면 발길에 채이는 게 대기업 추천서라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는 여러 군데서 듣기는 하였다.
심지어 명문대라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엇비슷하게
상황은 좋았다. IMF 전까지는 그랬다.
소위
최상위 명문대 상위 학과 학생들이라면 아무 회사에나 지원서를 내면 “우리 회사에 꼭 오라”며 모셔가던 시절이었다.
서울대의 경우에는 학점이 너무 좋아도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을 만큼
적절히 평균적인 수준에서 학점을 관리해야 했다. 학교별로 회사에서 원하는 적정한 학점이 있다는 소문이 있기도 하였다. 대학원에 갈 것이라면 상황이 달라서 무조건 높은 게 좋지만
말이다.
아직은 경쟁에 덜 물든 때였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고생하면 그래도 그다음에는 수월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대학생 시절이었다.
1학년 때는 누구나 마찬가지로
캠퍼스의 자유를 만끽했다.
새내기 시절의 환희는 끝없이 놀고 웃으며,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동아리 활동을 하며 보냈다. 모두들 그저
‘지금’의 즐거움에 충실했다.
2학년이 되면 약간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취직과 미래에 대한 걱정이 스며들기 시작했지만, 그래서 아무리 2학년이라지만 학점이 이래도 되는가 싶어 스스로에게 반문하는 경우도 생겼지만, 여전히
그 걱정은 멀게 느껴졌다.
군대에 다녀오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3학년이 되자 학점 관리에 바짝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캠퍼스는 갑자기 전쟁터로 변했다. 도서관은 만석이었고, 강의실에서는 졸지 않으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펼쳐졌다.
최대한 학점을 회복하기 위해 스펙 수술이라는 처방을 내려야 하기도 했다. 스펙 화장 정도로는 부족해서 다시 여름학기 수업을 들으며 학점을 갈아 끼운 것이다.
4학년이 되면 분위기는 다시 한번 달라졌다. 그때는 학점이 이미 거의 결정되고, 후배들을 위한 조언자가 되기도 하며, 슬슬 기업에 지원서를 내기 시작했다.
대기업 채용 공고가 뜨면, 캠퍼스는 한순간에 긴장감으로 물들었다. 그래도 취업 재수라는 말은 드물 만큼 여러 회사를 차례로 응시하면 될 일이었다. 단 한 번의 시험을 대학을 1~3군데밖에 고르지 못하는 것보다는 훨씬 여유로웠다.
반드시 가장 좋은 곳으로 가야만 할 욕구에 불타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까 고시라든지 방송국이나 언론사에 입사하기 위해 재수를 불사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확실히 나은 상황이었다.
“좋은 회사에서 시작해야 좋은 스타트를 끊을 수 있다”는 말은 입시생이 대학을 대하는 것과는 사뭇 달라서, 빡빡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건 지금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리고 졸업을 앞둔 4학년 2학기에는 대충 학사논문을 준비했다. 또 중간에 먼저 입사해야 하는 경우라면, 그 상황에 대해 학교 측에서 충분히 감안해주었다.
논문 작성은 전공별로 차이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취직 준비로 바빠 구색을 맞춘 논문을 제출하는 데 그쳤다. 논문이 학문적 기여보다는 졸업 요건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보였던 것이다.
이건 지금도 아마,
그럴 것이다.
물론, 이런 시절도 오래가지 않았다. 이때만 해도 그나마 여유가 있었던 셈이다. 공부를 느슨하게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만 신경 쓰면 유리한 고지를 쉽게 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서울대의 상위 학과생들조차도 철저한 스펙 관리가 필요해졌고,
학점, 인턴십, 자격증 등을 기본으로 챙겨야 하는 시절이 온 것이다.
아직은 아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