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서 우산을 쓴 건지,

미니픽션

by 희원이

♬ 빗방울을 흩다

빗- 질을 한 뒤

방- 울 달린 끈으로 머리를 묶고

울- 었다. 잠깐,

을- 고 나니


흩- 어진 표정으로

다- 마네기에 적응했다. 어차피 흩어졌으니,





√ 비가 와서 우산을 쓴 건지,

비가 와서 우산을 쓴 건지, 우산을 쓰고 싶어서 비가 오길 기다린 건지, 알 수 없는 저녁이었다.

그는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발목까지 고인 물웅덩이를 피해 가지도 않고, 신발과 양말이 철퍼덕 젖는 소리를 굳이 들었다. 버스 정류장 유리벽에 비친 얼굴은 비 때문인지, 온종일 참아 온 말들 때문인지 축축해 보였다.

우산을 양보한 친구들은 그 누구도 자신이 울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속도와 눈물이 흐르는 속도가 비슷해지면, 구분은 의미를 잃는다. 그는 고개를 조금 숙인 채 대신 움켜쥔 우산의 손잡이를 더 세게 쥐었다. 바람이 불어 우산이 흔들릴 때마다, 마음도 같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어쨌든 비는 그칠 것이고, 우산은 다시 접힐 것이다. 하지만 젖은 이유는 끝내 정리되지 않은 채, 그의 어깨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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