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하나 / 도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소설

by 희원이

[목차: 한여름에 우주]

제1장. 그때 우주

제2장. 우주의 부재

제3장. 우주에 하나


[소개글]
- 이 성장소설은 스냅사진처럼 짧게 찍은 어떤 풍경을 통하여 이야기를 진행한다. 콩트처럼 운영하지만, 내용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상하였다.

- 종훈은 뉴질랜드 어학연수 때 하나를 우연히 다시 만난다. 인터넷 소설도 쓴다던 그녀는 사운드 엔지니어 공부 때문인지 뉴질랜드를 거쳐 호주로 갈 일정으로, 그곳에 있었다. 우연이었지만, 처음엔 창피했던 종훈. 그런데 그녀와 친해진다. 근거 없는 소문의 숲을 뚫고는. 사실 그때 사람들은 남의 소문을 만들어내기 좋아했다. 여자에겐 그런 소문도 종종 있었다. 본인만 모르는. 결국 근거는 없었고, 그 본질로 가닿는 경우에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기도 한다. 결국 그들은 서울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고, 연인이 된다. 취향이 비슷한 덕분이었겠다.





♬ 뉴질랜드의 하나

하나는 사운드 엔지니어 지망생이면서 인터넷 소설가였다. 그런 그녀를 뉴질랜드의 어학원에서 다시 봤을 때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예전보다 좀 마른 몸매가 보였고 말을 무척 차분하고 조리 있게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해커에서 봤을 때랑 상황이 달라서 그럴까, 날라리로만 보였던 하나가 의외로 침착하고 지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연히 수업을 같이 들었을 때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알아챘다고 했다. 하기야 부킹을 해서 첫날에 그런 식으로 말해서 따귀를 맞는 경우도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 역시 멋쩍어서 처음에는 외면하려고 했으나 수업에서 꼼짝없이 마주치는 바람에 볼을 어루만지면서 무안해했다.

그나마 다행히도 그녀가 나보다 낮은 수준의 수업편성표를 받아서, 그녀와 가까이 지낼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우연히 술자리를 같이 한 적 있지만 생각보다는 자주 마주칠 일이 없었다. 더구나 그녀는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 말이 거의 없는 편이었다.

하기야 그런 모습은 부킹걸 하나의 첫인상과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을 때 나와 같은 반에서 수강하던 P가 그녀에 관해 말해주었다. P에 따르면 그녀는 ‘정말 꽉 끼는 청바지를 입는’ 아이였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꽉 끼게 입었다. 그래서 ‘똥구멍이 의류도 먹는, 특히 파란색 옷을 즐겨 먹는’ 아이였다. 그리고 소문이 그다지 안 좋다고 했다. 이 근처 학원 다니는 애들 중 좀 논다는 애치고 하나와 안 자본 사람이 없다고 했으니 솔직히 그때 부킹걸 하나가 참모습에 가깝다는 확신이 생기려 했다. 그녀와 놀고서도 잠을 안 자본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천하의 바보라고도 했다. 그 소리를 들으니 은근슬쩍 오기가 생겼다.

그때부터 그녀는 자주 내 레이더에 잡혔다. 빡빡하게 다리를 조이는 7부 바지를 입은 그녀는 배꼽이 살짝 드러나려는 탱크톱을 입었다. 그녀의 윤곽이 내 레이더에서 일렁이곤 했다.

‘후.’

상상의 마계.

그녀의 일렁이는 궁둥이는 내 얼굴과 겹치곤 했다. 물론 가슴이 풍만하거나 몸이 예술적이지는 않았지만 얼굴은 예쁘장했다. 더구나 쉬운 여자.

그런 상상을 할 때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아찔했다. ‘쟤랑 안 자본 사람은 바보래.’ 머리에서 울렸다.

“오빠, 오랜만이네. 볼펜 좀 빌려 줘.”

그래, 그녀는 볼펜 좀 빌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서는 말보다는 그녀의 눈이 각인되어 있다. 두 눈이 무척 예뻤다. 그때 그 밤에는 잘 보이지 않았었는데.

사실 그녀와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안 자 본 사람 없다는 소문이 아무래도 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었다. 한번은 심증을 확신으로 바꾸려고 주위 아는 사람에게 그녀에 관해 물어봤지만 하나같이 ‘쟤랑 안 자 본 사람 없대’라고 말했다. 결국 내가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와 자 본 적은 없었다. 어쩐지 그 소문에 흥미가 떨어졌고 내 레이더는 무뎌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녀와 친구가 되어 있었다.

자연스러움, 스며듦.

관계라는 것이 대체로 그렇듯 우리에게도 뚜렷하게 기억될 만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볼펜을 빌려주었고, 음료수를 같이 마셨고, 영어 공부에 관해 토론했다.

“오빠, 난 리코딩 엔지니어링 공부를 하려고 왔어요.”

그녀가 아무에게나 말하지 않았던, 자기 자신에 대한 첫마디였다. 그렇다고 그녀가 나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다. 안 좋은 감정도 다 옛날이야기라며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는 하나가 학교로 바로 진학하지 않고 어학연수를 온 까닭이 궁금했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여 더는 묻지 않았지만 그녀가 가끔 꿈에 관해 말할 때면 몸에서 향기가 났다. 이런 말 닭살이라는 건 안다. 닭살이더라도, 거짓이더라도, 착각이라도 적어도 그때 내게는 그런 느낌이었다.

자연스러움, 스며듦.

그녀의 조곤조곤한 말투도, 그 말투 속에서 심심찮게 드러나는 강단도, 강단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따뜻한 눈빛과 웃음도, 현학적인 내용의 능숙한 말도, 때로는 어리바리한 미숙한 행동도, 현학적 능숙함과 어리바리한 미숙함 사이에서 생겨난 예상치 못한 귀여움도 조용히 내게 느껴졌다. 부킹걸 하나가 얼마나 단편적인 그녀의 모습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만일 그때 이후로 그녀를 만나지 못했거나 소문만 듣고 단정하여 그런 식으로만 대했다면 결코 그녀의 참모습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자연스러움, 스며듦.

그녀의 애교 섞인 도발이 나의 감정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난 셰퍼 같은 위대한 구체음악가가 될 거야. 아니면 인터넷 문학의 거장이 되는 거지. 여유 있으면 둘 다 하고.”

그녀는 녹음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주변 소리를 녹음하거나,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를 기록해두었다. 룸메이트인 재스민과 함께 쓰는 그녀의 방엔 녹음테이프가 쌓여 있었다. 간혹 버려진 테이프 더미를 볼 수 있었는데 자기테이프가 머리카락처럼 뽑혀 나와 파마머리처럼 뭉쳐있었다. 머리카락이 뽑히면서 머릿속에 자리 잡고 살던 어떤 추억이 끌려 나와 아무렇게나 팽개쳐진 듯했다. 하나가 지나쳤던 어떤 시간과 공간의 기록이 편집되어 버려진 듯했다. 어렸을 때 내 부모님은 일주일마다 자신들의 책장을 정리했는데 그때마다 쓸모없어진 종이뭉치나 책은 버려지기 위해 신발장 옆에 쌓이곤 했다. 어머니의 작업방에 들어가면 심심치 않게 구겨진 종이들이 널려있었다. 잘 못 그려진 캐릭터들이 구겨진 종이 속에서 찌그러져 있었다. 구겨진 파마머리 자기테이프에서 하나의 열정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삼 개월쯤 지나자 약간 의심이 생겼다. 그녀의 녹음기술이나 소리에 관한 열정이 대단치 않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어쩐지, 엉성한.

탱크라고 부르던, 도대체 몇 번을 떨어져도 끄떡없는, 그녀의 녹음기도 그렇거니와 값싼 공테이프 또 어떤가. 그런 걸로는 그녀가 말한 셰퍼인가 뭔가 하는 인물처럼 되기는 어려워 보였다. 아무리 아이디어 채취에 불과한 거라지만 너무 폼이 안 나질 않는가. 더구나 엔지니어 스쿨엔 들어갈 생각이 있긴 한 건지 줄곧 여행만 다녔다.

하루는 내가 물었다.

“사운드 엔지니어 공부는 핑계지?”

“응. 핑계야.”

허무하게도 그녀의 대답은 너무 간단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아는 선배 녹음실에서 바닥 닦아야지.”

“고생해도 한국에서 고생해야지.”

믿을 순 없었지만, 그녀는 사운드엔지니어 스쿨 입학금과 생활비를 모조리 여행에 쏟아 붓고 있다고 했다.

“이왕 그럴 거면, 유럽으로 가지 그랬냐? 문화의 도시들이 넘치는.”

“자연을 보고 싶었어. 탁 트인, 깨끗한 자연. 그런 곳에서는 하늘이 잘 보일 것 같았거든.”

그때 하나는 A4용지 한 뭉치를 읽어보라며 내게 던져주었다. 자신이 쓴 인터넷 소설이라고 한 원고는 잘 읽히지 않았다. 지겨웠다. 내가 소설에 문외한이기에 그렇겠지만, 흔히 인터넷 소설은 무척 재기발랄하고 한껏 유치하다고 하는데, 그녀의 소설은 어쩐지 어두웠다. 가라앉은 쇳조각이 길을 잘못 든 물고기의 비늘을 찢을 것만 같았다. 그땐 무심히 읽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가 내게 보여준 인터넷 소설 속 주인공의 사랑은 늘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련하다고 말하는 게 적당할 정도로.

“소리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을 의미 없는 그대로 드러내서 좋아. 하지만 가끔은 소리만 가지고 되는 건 아닌 것 같아. 나를 어떻게든 말하고 싶은데 소리로는 아무리 말하려 해도 부족하거든.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소리에 대해 시큰둥해지고 만 거야. 그렇다고 내 꿈을 포기했다는 의미는 아니야.”

하나는 자꾸만 뭔가를 설명하려 했다. 부연했고 다시 부연했다. 알 듯 모를 듯한 말 사이로 그녀가 곧 떠날 것이라는 말은 제대로 귀에 박혔다.

내 직감이 맞아 그녀와는 뉴질랜드에서 헤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만났다, 서울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알았던 사람처럼, 그런 운명의 연인처럼 만났다면 좋았겠으나, 그런 느낌 없이 너무도 예상치 못하게도 길거리에서 맞닥뜨렸다.

어쩌면 그것은 취향의 운명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나는 하나와 연극에 관해 토론을 많이 하면서 조금씩 연극에 관심이 생겼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종종 대학로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하나는 원래 연극을 좋아했었다. 이야기 만드는 법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취향 덕분에 우리의 행동반경은 합의할 수 있는 지점에서 교집합을 이루었고 그만큼 만날 확률도 높았던 것이다.

그런 것도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반가웠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날 우리는 술을 마신 뒤 모텔로 갔고 그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뒤로 하나와 사귀기 시작했다.





♬ 도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레종 곽에 새겨진 이 고양이, 난 이 고양이가 반고양이라고 생각해. 그 고양이만이 담뱃갑에 어울릴만한 모델이거든.”

“무슨 뚱딴지?”

“아니. 뚱딴지가 아니야.”

“반고양이가 뭔데?”

“터키의 천연기념물. 두 눈의 색깔이 다른 고양이야.”

“짝짝이?”

쿡, 하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래! 짝짝이. 두 눈의 색깔이 다르면 다를수록 그 혈통이 순수한 거래. 모순이 클수록 고귀한 거지, 반고양이는.”

“사람이 그러면 좀 이상하겠다.”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하나의 두 눈 색깔이 다른 걸 상상했다. 어색했다. ‘바이섹슈얼 판타스틱 원더우먼.’ 차마 말하진 못했다.

“왜 그러셔? 스즈키 종훈 오빠.”

“아니 아무것도. 그냥 좀 슬픈 운명인 것 같아서.”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모순이 클수록 열망하는 것, 아픔이 뭉쳐서 폭발할 수 있는 힘이 커질 수도 있잖아. 열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짧은 삶에서 축복일 수도 있어.”

나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다가 불을 뿜으며 터지는 사람을 상상했다. 좀 웃겼다.

“그러니까 담배가 반고양이와 통한다는 말이지?”

하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골초들도 마찬가지고.”

그녀는 라이터를 댕겼다. 부싯돌이 마찰을 일으켜 불꽃을 피운다.

“아주 대놓고 담배 찬양을 해라.”

나는 비아냥거렸다.

“오빠한테 배웠잖아. 담배도, 담배 찬양도.”

그러고 보니 그랬다. 뉴질랜드에서 담배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었다. 뭐 좋은 거라고. 게다가 청출어람 아닌가. 난 왜 한우주의 말을 업그레이드하지 못하는 걸까? 역시 문학 쪽에는 영 소질이 없다.

하나가 뻐끔거리자 담배 끝자락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삶에 대한 고민을 태우기 위해 조금씩 죽어가잖아. 담배처럼 뜨거운 불을 안고 사는 것 같아. 숨기려 해도 숨기지 못하는 뜨거운 불. 담배가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불을 연기로 내뿜으면 사람들은 습관처럼 그 아픔의 흔적을 들여 마시는 거야. 결국엔 폐에 구멍이 뚫리겠지. 씻을 수 없는 흔적이야. 어차피 그리 될 줄 알면서 그것을 놓지 못하는 것, 그게 아름답게 사는 것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해.”

나는 가슴을 쓰다듬었다. 폐가 뚫리면 정말 아플 것이라 생각했다. 그만큼 하나의 말을 진실처럼 느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하나가 쿡, 쿡, 쿡쿡쿡, 다시 웃었다.

“뭐야! 스즈키 종훈. 너, 아니, 오빠 너무 귀여워. 이렇게 귀여워도 되는 거니?”

하나가 호칭으로 살짝 장난을 쳤다.

“뭐야?”

나는 휘둥그레 눈을 떴다. 살짝 닭살 올랐지만 기분은 좋았다. 하나가 나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아니, 이 바이섹슈얼 판타스틱 원더우먼이!”

나는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살짝 간질였다. 하나의 몸이 바짝 긴장하며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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