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 차원의 링크

보고서

by 희원이

[목차: 정보와 하이퍼링크]

1장. 정보

(생략)

2장. 하이퍼링크

♬ 현대 정보사회의 특징

♬ 하이퍼링크

- 하이퍼링크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 쓰기 차원의 링크

- 읽기 차원의 링크

- 행동 차원의 링크





▪ 행동 차원의 링크

셋째, 행동의 차원에서는 좀 더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상대에게 유익하거나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게끔 촉구해 주는 촉매제다.

우리가 매일 인터넷에서 배우는 하이퍼링크의 속성을 더 절실하게 읽어낼수록 그 속삭임은 더 크게 들릴 것이다(주1).

간단하게 자신이 돕고 싶은 아프리카 어린이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방법을 힘겹게 찾지 않아도 얼마든지 인터넷에서 그 길을 알아볼 수 있다. 그저 안방에서 자신의 클릭 한 번으로 실질적으로 도움을 그들에게 줄 수 있다. 그다음 그것보다 더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개연성도 충분하다. 그 시작에 하이퍼링크가 있다.

하이퍼링크 역시 인터넷 환경에서 희미한 연대를 의식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한다. 링크로 손쉽게 접근한 해외봉사 사이트에서 이용자가 의미 있는 선행을 한 뒤 비록 그 아이가 누군지는 몰라도 뭔가 그와 연결된 기분을 느꼈다면 하이퍼링크는 그 희미하고 느슨한 연대 의식의 시작점에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온전한 연대라 부르기 어렵다. 우리는 서로를 “알면서도 모르기도 하고, 모르면서도 안다.(주2)” 어떤 블로그에 자주 방문하여 그의 행적을 안다고 할 수도 있으면서, 정작 그를 직접적으로 알게 되면 책임이 생기므로 모른 척하는 게 편할 때가 있다.

더 좋은 정보를 원하지만 누군가와 알고 지내지 않는다. 하기야 현대사회에서 관계할 할 사람이 너무 많다. 그것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그래서 오히려 관계 성립의 욕구는 떨어지고, 관계 자체도 표피적이기 쉽다.

그러나 여러 사람과 교류하다 보면 간혹 누군가와 실제로 소통하는 경우도 생긴다. 무수한 사람들이 그 과정을 거쳐 인간관계를 조금 더 확장한다. 그런가 하면 인터넷 동호회에 가입하여 삶의 반경을 적극적으로 넓힌다. 실제로 인터넷을 잘 활용하는 사람들이 인간관계와 사회참여가 넓다는 연구결과도 있다(주3). 인터넷에 매몰되면 주위와 단절이 될 것이란 예상과는 다른 결과다.

물론 예전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인간관계는 제한적이다. 다만 절대적인 숫자만을 따지자면 과거보다 지금의 인간관계 빈도가 훨씬 많을 것이다. 억지로 관계를 맺다보면 이웃과 알고 싶다는 욕구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달리 보면 이제 이웃의 개념이 예전과 다르다. 폐쇄적인 공간 내에서 어쩔 수 없이 섞여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얽히는 인간관계와 달리,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서 오히려 교류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예전에 동성애자들은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자신을 숨겼다. 하지만 이제 인터넷 동호회 모임에서 자기 생각을 털어놓는다.

이때 희미한 연대는 오히려 폐쇄성을 극복하는 새로운 만남을 예비한다. 무수한 부작용에도 더 많은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하이퍼링크는 방대한 정보 사이에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으니 마우스를 클릭하여 신속하고 용이하게 ‘바라는 것을 읽으라고’ 촉구한다.

다만 그것만 가지고는 어떤 연대의 책임 같은 것을 느끼기 어렵다. 책임이 없을 때 우리는 간편하게 권리만을 행사하는 버릇에 길들여진다. 그래서 인터넷에는 쓸쓸한 독백과 방백이 널려있고 이것을 훔쳐보는 시선이 있다. 간편하게 사회문제를 개탄하되 독고노인이나 아프리카의 어린이를 위해 마우스 클릭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클릭 한 번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를 도울 수 있다. 예전에는 단순하게 생각만 하다가 결국 방도를 몰라서 돕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비교적 쉽게 도와줄 수 있다. 희미한 연대가 희망적인 의미를 품는 순간이다.





(주1) <웹 시대의 지성>에서 나는 시민지성이라면 기록의 행간을 읽어낼 수 있는 안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세계를 적극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다.

다만 그것은 공허한 말과 생각만이 쓸데없이 많아지는 것일 수 있다. 아무 책임 없고 피해 없이 어떤 사건을 비판하는 행태를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비판자는 말만 깔끔하게 할 뿐 실질적으로 그 사건과 전혀 관계없다. 그래서 피해 입을 걱정도 할 필요 없다. 과연 그러한 말을 어떻게 받아야 들여야 할까?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의 비평은 무책임한 것일까? 그러한 비평이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을 것이라 보고 그 무력함을 질책해야 할까? 반대로 그렇게라도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보면 뭔가 긍정적인 결론을 도출해내지는 않을까? 명쾌한 답은 없을 것이다. (참조인용: 허버트 L. 드레퓌스, 『인터넷상에서』, 동문선, 2003, 초판1쇄, 101~108쪽)

다만 이 현상을 부정적으로 본다면, 사실 우리가 집안에 앉아서 아무리 글을 써댄다고 해서 현실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가난한 자가 처한 현실, 그 밖의 많은 부조리는 해결된 것이 없다. (참조인용: 허버트 L. 드레퓌스, 『인터넷상에서』, 동문선, 2003, 초판1쇄, 101~108쪽)

그런데 우리는 간편하게 도덕적 부채감을 해소한다. 나름 인간적이라 위안하면서 기실 위험에 처한 자를 돕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이는 연대를 가장하여 우리도 바람직한 시민이라고 위선적으로 말‘만’ 하고 있을 뿐이다. 이 얼마나 값싼 윤리 의식인가! 그렇다. 이것은 진정한 연대가 아닐 것이다.

(주2) 인터넷 관계에 대해 “알면서도 모르고, 모르면서 아는”이라 했던 블로거 김윤희의 말을 빌려 쓴다.

(주3) 뉴시스,「인터넷·휴대폰, 사회관계 더욱 확대 시켜…인간고립 속설 부정」, 2009-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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