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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의 범위(1)

보고서

by 희원이

[목차: 놀이글: ‘놀이의 형식과 비평 방식’에서 파생한 응용 사례]

Ⅰ. 서론

Ⅱ. 본론

Ⅱ-1. 이론적 배경(a) : 놀이란 무엇인가

1) 놀이의 범위

☞ 놀이와 비놀이로 구성된 일상

☞ 놀이와 비놀이에서 파생한 일

☞ 놀이와 게임(스포츠)의 친연성

☞ 놀이와 게임(스포츠)의 차이

2) 놀이의 종류

☞ 무언가의 대비인 놀이

☞ 무언가의 교집합인 놀이

☞ 무언가의 수단인 놀이

☞ 일상과 산업 논리로 본 놀이

☞ 전통 민속놀이와 현대의 놀이

☞ 참여자 숫자를 기준으로 본 놀이

☞ 참여자의 나이를 기준으로 본 놀이

☞ 놀이의 대립적 성격과 화합적 성격

Ⅱ-2. 이론적 배경(b) : 놀이의 비평

Ⅱ-3. 응용 사례 : 놀이글

Ⅲ. 결론

참고문헌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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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본론

Ⅱ-1. 이론적 배경(a) : 놀이란 무엇인가

1) 놀이의 범위

요즘 놀이의 중요성을 환기하곤 한다. 업무를 너무 경직된 방식으로 하지 말고, 즐겁게 하도록 강조하면서 놀이의 자유로운 성질이 환기된 것인데, 사실 이러한 면을 회사 업무에 도입하는 경우도 있다(주1). 일을 하면서 놀기는 어렵지만 일의 요소에도 놀이의 특성이 스며있을 만큼 놀이는 광범위하다. 물론 그런 놀이의 특성이 이미 일의 영역에 포함되어 분리해내기 어렵지만, 순수하게 놀이라는 행위만 따져도 여전히 우리는 일상의 의미 있는 순간을 놀이로 보내곤 한다.

이러한 놀이에 대해 두산백과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신체적·정신적 활동 중에서 식사·수면·호흡·배설 등 직접 생존에 관계되는 활동을 제외하고 ‘일’과 대립하는 개념을 가진 활동(주2).”

놀이에 관한 정의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일상에서 일이 차지하는 만큼 놀이의 비중도 제법 높다. 놀이는 언제나 일상처럼, 공기처럼 있다. 일상에서 사소해 보이는 많은 행동들이 놀이와 관련을 맺는다. 그러면서 어떤 것이 놀이라고 딱히 말하기 어려울 만큼 놀이의 흔적은 예술품이나 일의 성과처럼 남지 않는다. 마치 재즈의 즉흥 연주처럼 공중으로 흩어진다. 그래서 놀이의 압도적인 비중을 쉽게 간과하고 만다.

즉 놀이를 이해하려면, 우선 일상을 구성하는 다른 요소로부터 놀이를 온전히 구별하여 파악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놀이의 잠재력을 제대로 평가하고, 놀이가 지닌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주3).


☞ 놀이와 비놀이로 구성된 일상

대체로 놀이란 일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설정된다. 대개는 사회적으로 직업이라 불릴 만한 어떤 일을 하면서 그것에 대비되는 여가 생활을 거론할 때 놀이를 말한다. 요즘엔 일하는 것도 놀이처럼 하자는 말도 나오지만 여전히 구호에 지나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여전히 놀이는 일의 외곽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자연히 놀이라는 개념은 일이나 창조활동과 대비되어 주변적인 것으로 분류되곤 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놀이는 여전히 일상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만큼이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직업적 업무 중에서도 놀이에서 변화 혹은 진화한 것이 많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놀이를 중심에 두고 생각해보기로 하자. 의외로 관계를 역전하면서 의미 있는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놀이에 대비되는 것은 단순히 일만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일을 중심에 두게 되면 놀이만이 대비되어 떠오르지만 놀이를 중심에 두게 되면 약간은 다른 각도에서 놀이와 일의 관계를 보게 된다.

그래서 놀이의 대립되는 개념으로는 비놀이를 들기로 한다. 놀이의 영역을 제외한 모든 영역을 통칭하는 것이다. 잠자다가 깨는 것, 밥을 짓는 것, 운동을 하는 것 등등 일상적이지만 놀이의 요소를 포함하지 않고 그냥 하는 것이라면 비놀이라고 할 만하다.

물론 일 역시 비놀이에 해당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다만 일(일반적인 일, 예술, 학문)에는 ‘놀이에서 변화한 일’과 ‘비놀이에서 변화한 일’이 있다. 즉 비놀이가 반드시 일이라기보다는 비놀이에는 ‘일반적으로 일이라고 칭할만한’ 비놀이 행위와 ‘일이 아닌’ 비놀이 행위가 있다.

놀이와 비놀이를 합친 영역이 바로 일상이다.


☞ 놀이와 비놀이에서 파생한 일

일은 비놀이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다. 직장에서 사무를 보거나 철저하게 고된 노동을 하는 일도 있지만, 놀이에서 파생한 일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프로 게이머나 운동 선수를 생각해보면 분명해진다. 심지어 호이징하는 예술과 학문의 토대에 놀이적 성격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주4). 여전히 놀이적인 성격을 띤 예술도 있으며, 학문의 도전적인 정신은 의외로 자유로운 놀이의 정신을 닮아있기도 하다. 다만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우리가 흔히 일이라고 할 만한 노동을 하고 있다. 또한 예술가와 학자 역시 직함을 지닐 때 흔히 사회적으로 일하는 것이다. 사실 ‘프로페셔널하게’ 어떤 분야에 종사할 경우 그 일이 놀이였든 아니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예술가, 학자, 직장인, 사업가 등등 일상적으로 사회화된 정체성을 내세우면서, 흔히 놀이를 할 때는 필요가 없는 직함의 유무로 놀이와 구별 짓게 된다. 자연스럽게 일반적인 일과 예술과 학문이 서로 친연성을 지닌 것처럼 보이게 된다. 결국 일반적인 일과 예술과 학문 분야에 직업이라는 개념을 접목하면 대개는 공통적으로 놀이에 배치되는 면모를 띠게 된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일, 예술, 학문 등으로 나눌 필요 없이 그냥 ‘일’로 통칭해도 되나, 관점에 따라 예술과 학문은 일반적인 일과는 대립되는 성격을 띠기 때문에 협의의 의미로 일반적인 일과 예술, 학문 등으로 나누기로 한다.

사실 같은 일이지만 일반적인 일을 사람들에게 자본주의 시대에 경제적으로 충분히 돈을 벌지 못하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일은 부업이거나 취미 정도로 치부되기도 한다. 직업란에 시인이라고 쓰자니 연봉란이 애매해서 망설이게 되는 경우가 있듯, 생계를 꾸리는 일의 개념으로 고려해볼 때 많은 예술가의 일은 사실 놀이와 일의 어정쩡한 경계선에 놓이기도 한다.

또한 보통 대학원을 가는 사람에게 ‘학교에 남으려고 그러느냐’는 질문을 하곤 한다. 이는 취직해서 월급쟁이로 살든 창업해서 사장을 하든 공부하는 학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학자 역시 그들의 일을 하는 것이지만, 학문 연구 역시 일반적인 일과는 달리 열정적 관심을 지니고 몰입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일과는 그 결이 다르다. 여기서는 일반적인 일과 학문을 구별했다.





(주1) 현대인은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잘 모를 만큼 팍팍한 일상을 보낸다. 놀이를 중시하면서도, 놀이 역시 일로써 효용이 있을 때만 중시되는 셈이다. 결국 놀이를 강조하면서 업무에 적용하더라도 그 순간 노는 것을 업무처럼 하게 되고, 진정한 의미에서 놀기는 어렵게 된다.

(주2) 두산백과, 〈놀이〉, NAVER지식백과

(주3) 한국처럼 보수적이고 어른 문화 위주의 사회에서, 철들지 못했다는 것과 어린이의 놀이와 연결되는 감도 없지 않다. 사실 놀이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일과 효용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그 효용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놀이란 저평가되기 마련이다. 때로는 예술이나 일과는 달리 쓸모없는 시간낭비의 행위로 놀이를 낮잡아 보기도 한다. 그저 놀이라고 하면 가족의 여가 생활 정도로서 기분 전환을 하는 수준에서 머무는 것으로, 결국 일을 더 잘하기 위한 것, 예술 창작의 동력이 되는 정도로서만 부가적으로 존재 가치를 겨우 인정받곤 한다. 자연히 놀이 자체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부질없는 것처럼 보인다.

(주4) 요한 호이징하, 《호모 루덴스》, 187·201·216·219·230·239·249·250·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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