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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Sep 07. 2023

눈동자(3)

소설

[목차: 눈동자]

겨울

여름

가을

겨울





여름

장마로 붉덩물이 며칠째 빠지지 않고 휘몰아쳤다. 현수는 많이 아팠다. 외숙부와 외숙모가 도시에 있는 큰 병원으로 현수를 데리고 갔다. 산장엔 할머니와 아이만이 남았다. 밤마다 세찬 비가 창문을 두드렸고 거친 바람이 마당에 몰아쳤다. 현관조명이 흔들렸다. 그때 2층 현수방을 스치듯 지나간 물체에 가려 빛이 꺼졌다, 켜졌다. 방 안에 스미던 빛의 변화에 아이는 비 쏟아지는 밖을 살폈다. 짙푸른 녹색으로 익지 못한 활엽이 보였다, 검은 빛이 나무에 붙어 잎처럼 흔들렸다. 사람 윤곽을 하고 온 몸을 발작하듯 떨었다. 바람에 쓸려가지 않기 위해 나뭇가지를 힘겹게 붙잡고 있었다. 아이가 보기에 그것은 그림자 같았다.

“나는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아.”

그림자는 속삭였다. 바람을 뚫고 여리게 퍼져 창문 틈 비집고 들어온 속삭임이 물결의 파장처럼 겹쳐서 커졌다, 작아졌다. “나는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아.” 아이를 향해 웃는 듯했다. 아이가 느끼기에, 형상을 지니지 않은 검은 물체였지만 분명 아이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웃었다. 아이는, 무서웠다. 살려달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 필사의 말마저 나오지 않을 만큼 숨이 막혔다. 비명을 지르며 1층으로 내려갔다. 할머니만이 지키는 1층이 텅 빈 듯 조용했다. 할머니는 비명소리를 들었는지 방문을 열고 나와 아이를 감싸 안았다.

“이상한 걸 봤어요! 이상한 걸 봤어요!”

아이는 그제야 울음을 터뜨렸다.

“아가야, 아가야. 이 할미가 항상 네 옆에 있을 거야. 이젠 걱정 하지 마라.”

할머니는 아이를 꼭 안아 주었다. 둘이었다.

현수는 보름 후 죽었다. 아이는 죽은 그의 눈에 눈동자가 없는 걸 떠올리곤 자꾸 소름이 끼쳤다. 긁었다, 돋아난 돌기가 톡톡 터지며 작은 핏방울 생겼다. 흰 밥알 같은 벌레와 눈동자 없는 흰자가 끔찍했다. 그래서 할머니와 외숙모가 장례문제를 두고 다툴 때 속으로 할머니를 응원했다. 현수가 하얀 재 되어 산에 흩뿌려질 때, 아이는 차라리 잘 되었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외숙부가 직접, 현수를 산의 바람에 태워 보냈다. 할머니는 아이를 껴안고 흐느꼈다. 하지만 현수를 보내는 자리에 외숙모는 나타나지 않았다.

외숙모는 현수의 물건을 치우지 않았다. 방 안에 가득 쌓인 그의 동화책들. 대부분의 책에는 ‘김현수’라는 이름이 삐뚤삐뚤하게 적혀있었지만, 현수보다 아이가 주로 읽었던 책들이다. 하지만 현수가 죽은 이후로 아이가 동화책을 뒤적이면 외숙모는 책을 낚아채곤 했다.

“이건 형 거란다.”

그녀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아이의 양 팔을 꽉 잡았다. 그러다가 숨을 고르고 조용히 타일렀다. 그때 아이는 보았다. 외숙모의 눈동자는 무섭도록 번쩍이는 달빛을 뿜었다. 아주 잠깐 심한 격랑이 일었다, 어미들개와 새끼들개가 피투성이인 몸으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달그림자 걸린 바다에 메밀꽃 일었다. 어미는 포효했다. 붉은 울음이 예리하게 날아가 달에 꽂혔다, 꺾였다. 꺾인 울음이 들개모자 우뚝 선 칼벼랑을 멀리 둔 채 추락했다. 놀란 달이 날카로운 빛으로 들개의 온 몸을 꿰뚫으려 했다. 절벽의 비좁은 공간에 달빛이 떨어졌다. 들개모자는 벼랑턱을 빠져 나와 도망쳤다. 긴 줄기의 달빛이 새끼의 목덜미를 관통했다. 새끼들개가 외마디 비명에 붉은 울음을 간단히 꺾고 달빛에 실려 올라갔다, 달에 먹혔다. 도망치는 어미의 온 몸에서 붉은 울음이 쏟아졌다. 홀로 들판에 남겨진 어미 들개는 붉게 뒤덮인 몸뚱어리로 맹렬히 달빛을 뚫어내려 했다. 붉은 울음이 분수처럼 쏟아지다 울음에 울음이 쌓였다, 꽃이 되었다. 신음소리 땅 위로 바람처럼 흘렀고, 밤바람을 탄 몸뚱어리 모래처럼 날렸다. 몸뚱어리 잃었다. 그럼에도 들개는, 들개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림자는 외숙모의 눈동자 한구석에 마련된 여백을 용케도 찾았다. 다리를 절룩거리는 어미들개의 그림자는, 간신히 외숙모의 눈동자에 숨었다. 눈물이 흘러내릴 구멍을 들개의 그림자가 채웠다. 어미는 몸에 꽂힌 채 꺾여버린 붉은 장미를 힘겹게 핥았다.

들개의 그림자를 발견한 후부터 아이에겐 눈동자를 유심히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눈동자의 색깔은 저마다 조금씩 달랐다. 백인의 눈동자와 흑인의 눈동자가 달랐고, 외숙부의 눈동자와 외숙모의 눈동자가 달랐다. 한 사람의 눈동자라도 매 순간 조금씩 변했다. 아이는 할머니의 눈동자 색깔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가장 깊은 밤이었다. 맑은 흑빛 거울처럼 잡티 하나 없어서 아이는 그녀의 눈동자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는 걸 즐겼다. 아이는 할머니 방을 예전보다 더 자주 찾았고 할머니는 뻥과자를 내어주었다. 엉덩이를 두드리며, ‘내 아기, 내 아기.’ 노래 부르던 그녀의 눈동자에서 아이는 방긋 웃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현수 생각에 가끔 눈물지었다.

그즈음 외숙모는 인부들을 시켜 무덤을 만들었다. 아이 하나 들어갈 만한 작은 무덤 위에 십자가 하나 꽂았다. 그 뒤로 외숙부와 외숙모의 말다툼이 잦았다. “당신 때문이에요. 당신이 현수를 버렸어요!” 원망하는 듯한 그녀의 소리는 앙칼졌다. 외숙모는 할머니와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가끔 할머니가 끼어들면 1층은 아주 시끄러웠고 아이는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자야 했다. 이러면 다시 태어날 수 없다고 했다. 천당으로 가지 못한다고도 했다. 누가 어느 말을 했는지 아이는 혼란스러웠다.

어쨌든 무덤에는 아무 것도 채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무덤은 그래도 무덤처럼 있었다. 무덤은 현수방을 향했다. 보름이 산의 곡선에 접할 듯 커다랗게 밤하늘을 채울 때면, 십자가의 끝이 달에 꽂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빈 무덤에 꽂힌 십자가가 달빛을 반사하고 반딧불처럼 빛났다.

할머니는 그 무덤을 싫어했다. 그믐이 무더위에 지친 땅을 훑으며 요염하게 이글거릴 때 할머니는 외숙모의 십자가와 성경을 끄집어내 마당에 내동댕이쳤다. 십자가가 달빛에 타, 재 될 것만 같았다. 할머니의 눈에서 그믐달이 이글거렸고, 외숙모의 항변이 짐승의 울음처럼 들렸다. 하지만 할머니의 눈빛과 외숙모의 항변은 분명 사람의 것이었다. 외숙부는 둘을 떼어놓으려고 노력했다. 현수방 창가에서 이를 몰래 지켜보던 아이는 조용히 귀를 막았다. 할머니의 울부짖음이 다른 세계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아련히 들렸다. 내놓으란 말이야, 내놓아! 비명 같은 소리가 현관문 열리는 소리로 이어지고 2층으로 통하는 복도계단에서 뭔가 우당탕 떨어지는 소리로 이어졌다. 아이는 놀라 계단 쪽으로 뛰다시피 가 아래를 살폈다. 할머니가 1층 마루에 쓰러져 피를 흘렸다. 모두가 혼비백산해서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외숙모는 성경과 십자가를 꼭 쥔 채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할머니의 엄지 발톱이 거의 드러나 있었다. 그녀의 긴 발톱이 계단에 걸린 채 발을 헛디딘 모양이었다. 살점에 꼭 붙어있어야 할 발톱이 90도로 들려 천정을 향했다. 피는 쉴 새 없이 나왔다. 마루에 들러붙어 자리 잡은 얼룩진 피. 아무리 닦아도 끈질기게 남은 피자국은 마치 들개모양 같았다.

한동안 할머니는 다리를 절었다. 현수에 대한 기억도, 절었다. 눈망울에서 빛을 잃었다. 그녀는 외숙부가 사다 주는 뻥과자를 혼자서만 먹기 시작했다. 눈빛을 잃은 후론 가끔 아이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녀는 점점 어린 애처럼 굴었다. 아이를 현수로 착각하기도 하였다. 아이는 그녀의 눈망울에서 더는 웃지 못했다. 그녀는 서서히 홀로 지냈고 밖에서 자주 길을 잃었다. 외숙부가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서재보다 1층 거실에서 글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몰래 밖으로 나갔고 가끔은 손과 발이 흙으로 범벅이 된 채 돌아왔다. 한번은 무덤을 파다가 외숙부에게 업혀서 들어오기도 했다. 그때 그녀는 외숙부의 등을 때리며 살고 싶다고 살려달라고 외쳤다. 그러던 그녀가 이틀 동안 실종된 후, 계곡에서 발견되었다. 외숙부에게 업혀온 그녀는 일주일 동안 앓았다. 의사가 분주히 다녀갔지만 그녀는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아이는 밤낮으로 기도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을 정성껏 기도하면 이루어져.”

외숙부가 말했다. 설령 그런 말을 듣지 못했더라도 아이는 본능적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이는 할머니마저 현수처럼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할 때 그림자를 발견했다. 그것은 곡예 하듯 나무를 타고 다녔다. 색깔이, 장마가 내리던 밤에 보았던 그림자의 것이었다.

‘난 이 곳을 떠나고 싶지 않아.’

그림자가 했던 말이 아이의 마음에서 울렸다.

‘현수형…….’ 눈물이 핑 돌았다. 닦았다.

낯설지 않으니 무섭지 않았다. 두려움이 사라지니 더 많은 그림자들이 보였다. 색깔의 농도가 조금씩 다른 그림자들이 밤에 숨어있었다. 놀란 아이는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그들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고, 자신이 무엇을 간절히 바랐는지조차 잠깐 잊었다.

다음날 할머니가 눈을 떴다. 기력이 쇠해 보이는 그녀를 보고 아이는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눈동자는 가장 깊은 밤이었다. 맑은 흑빛 거울처럼 잡티 하나 없어서 한동안 아이를 알아보지 못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는 웃으며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었고, 상체를 일으켜 아이를 가볍게 안아주었다.

“아가야, 아가야. 이 할미가 항상 네 옆에 있을 거야. 이젠 걱정 하지 마라.”

분명, 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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