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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Sep 16. 2023

슬픔을 그린다는 건 누군가의 삶이 되기도 하고

콩트

[소개글]
-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한 그림 콩트입니다. 
- 이미지는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대개 놀이글을 쓸 때는 전면적으로 연예인의 이미지를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초상권 문제를 고민하고, 약간이라도 보편적으로 다가가고 싶었을 때부터 덕후적인 키덜트의 이미지를 묽게 하고, 다른 이미지를 쓰려고 했죠. 그때 저작권 문제도 해결하면서 (명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할 걱정은 하지도 못했을 때여서) 놀이글을 유지하려고 했죠. 물론 놀이글의 특징 중 하나(상호반응성, 정확히는 그중에서 가상의 상호반응성)를 잃으면서 광적인 글쓰기 훈련을 할 동력이 약해지기도 했어요. 그렇게 몇 번을 헛돌면서 접점을 찾아들며 수렴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뭔가 헛돌던 그 지점에서 익숙해진 감도 있고요. 놀이글이란 꼬리표에 집착하다가, 그 표현 자체를 뒤로 물린 것도 큰 변화 중 하나인데, 사실 그건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죠. 브런치스토리로 들어올 때쯤 많은 것이 제 안에서도 급변했던 셈이에요.

- 단편적으로 여러 글을 쓰고 난 뒤 콜라주 방법으로 말을 모아 종합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버전을 쓸 수도 있는데, 그러한 빌드업 단계 자체를 중시하는데, 이 역시 과정의 글쓰기 중 하나입니다.
- 콜라주 조각들로는 "[놀이글]성공한 중년의 집요한 근성 / [놀이글]이상해서 이상할 수 있는 이상주의자 / [삼행시]그러니 거짓말을 하게 되죠 / [놀이글]석촌호수의 꿈꾸던 백조 이야기 / [놀이글]인생은 피라미드 / [삼행시]되바라진 슬픔으로라도 어쨌든 우는 자 / [삼행시]길가에 누운 단풍"이 있습니다. 이 중 '길가에 누운 단풍'은 브런치스토리에서도 발행했습니다. 
- 그리고 '슬픔을 그린다는 건 누군가의 삶이 되기도 하고'라는 제목을 운자로 삼아서, '슬쩍 너의 시간을 훔쳐서 잠깐'이란 삼행시를 썼습니다. 릴레이 창작 방식 중 하나입니다. 그렇게 여러 스타일로 여러 방법을 적용해서 여러 버전의 글을 강제로 창작하다 보면, 때로는 하나의 이야기가 예상치 못한 형태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멀리서 길을 잃는 건 아니야. 어디선가 맴돌 뿐.”


 그- 림을 

 러- 프하게 그려서 

 니- 말대로


 거- 기에 놓았다.

 짓- 이겨진 슬픔이 어디로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말- 미에서 소용돌이치는 곳.

 을- 타리를 넘지 못해


 하- 염없이 옆으로, 옆으로 막힌 자리 짚으며

 게- 들처럼 돌아들던 곳.


 되- 바라진 슬픔으로라도 어쨌든 버텨주었다면 

 죠- 으련만. 네가 보던 곳을 이제야 와서 바라본다. 






아빠는 저를 사랑하지만은, 제 모든 걸 자랑스러워 하지는 않았어요. 굉장히 열심히 억척스럽게 사신 분이니까요. 자신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죠. 저의 유약한 모습을 볼 때마다 혀를 차곤 하였답니다. 그래가지고 어디 이런 험한 세상을 살겠느냐며 말이죠.






“라떼는 말이야, 석촌호숫가를 걸으며 배고픈 것도 참으며 100조를 벌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 정말 아무것도 없었는데 호기 하나로만 보면 그 누구도 견줄 수 없었어. 자고로 이런 황당한 야심이 있어야 한다고. 이 험한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져준다는 건 없어. 그냥 지는 거지. 이긴 자만이 관용을 베풀 수 있단다.”





→ 서술자 평지후


그래요, 아버지는 정말 대단했어요. 누구에게도 져본 적이 없는 사람 같았죠. 유일하게 제게 진다고는 하지만, 글쎄요, 딱히 진 것은 없었어요. 결국 제가 아버지의 뜻을 스스로 허락해주는 모양새를 띠는 것뿐이었죠. 교묘한 설득의 제왕이라고 해야 할까요. 

성공한 중년의 남성이 지닐 만한 자부심과 강인함은 본받을 만했지만, 저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죠. 아버지가 대단하다는 것과는 별개로, 제가 아버지처럼 살 필욘 없는 거니까요.






물론 저 자신이 부끄러울 때도 있었어요. 친구들이 성공 가도를 달릴 때, 저 자신은 계속 헛돌고 있었거든요. 점점 이 사회의 생리를 외면하며, 아래로 파고들며 망가져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제가 무얼 좋아하는 건지도 어느 날 보니 별 대수롭지 않았고요. 

그냥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그냥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건 부질없는 말이었죠. 그림을 그려서 어떻게 성공하고 싶은가 그런 게 중요하다고 본 거죠. 아버지는. 






“내가 언제 그림을 그리지 말라고 했니? 그냥 그림만 그리면서 살라고도 하지 않았니? 다만 현실도 보면서 하란 말이지. 팔릴 그림을 그리든지, 정말로 취미로 그리든지.”





→ 서술자 평지후


솔직히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전 어느 날부턴가 진심을 말하기보다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말을 하기로 했죠. 그것과 주파수가 맞는 말로, 저 자신을 바라보는 거죠. 그래야 견실한 사람 같아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제 안에선 여전히 엉뚱한 피가 끓고 있었어요. 가끔은 방안에만 있었답니다. 다른 것이 다 귀찮아질 때면요. 세상의 이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로 자책하다가도, 놀라운 기쁨으로 에너지가 넘치기도 하면서요. 






“이상적인 꿈은 현실을 기반에 두지 않으면 무너지게 되어 있다. 이상을 꿈꾸다가 정말 이상해지는 거야. 소설가 이상은 그래도 직업도 있고, 폐병도 걸렸지. 너 폐병이라도 걸리고 싶은 게냐? 아, 말하고 보니, 내 말이 지금 이상하구나.”






알면서도 못하는 것이 있었어요. 때로는 어떤 유약함이 어떤 강인함의 성과 덕분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자책하기도 했고요. 만일 극한으로 내몰렸던 상황이라면 이런 이상을 몽상할 수나 있었을까요?

그럼에도 거의 언제나 사람들은 현실적 선택을 하기 마련이기에, 저 자신이 독특하다는 것도 알아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 우리네 양지은.”






그런 생각으로 복잡할 즈음이었어요. 성수대교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로 찾아간 적이 있었죠. 친하게 지내고 싶은 언니도 그곳에 있었다고 하더군요.

세상에는 상상하기도 싫은 어처구니 없는 일도 생기기 마련이지요. 


<→ 벌새>에 쏘인 느낌이었죠. 나중에 알고 보니 벌에게 쏘인 느낌이라 해야 했는데 말이죠. 벌새라 해서 그냥 벌을 연상한 것이었죠. 그런 때였어요. 아직은 모든 게 관념적이고 모호한 시절이었죠. 그래도 기쁘고 슬픈 것은, 그래서 웃는 것과 우는 것은 정직했지요.

그날 해가 뜨던 아침에 거기서 많이 울었답니다. 

→ 이유가 너무 많아서 이유를 정리하지 못한 채 우는 때도 있어요.






[나, 평지후]
“그냥 그림을 그리기로 했지요. 언젠가 그 언니와 말했던, 저 자신의 삶을 따라가는 그림을요. 경솔함과 부족함과 불확신에도 묘한 그리움이 부여되는 순간이었다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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