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기(2): 삼행시 콜라주 & 번호글

에세이

by 희원이

[목차: 나는 무엇을 쓰고 있나]

◑ 저술 목록의 흐름

♬ 발화점: 맹아기

♬ 이론편

♬ 실천편

♬ 침체기

♬ 에필로그: 지향점

♬ 후일담


[소개글]
- 놀이글의 스타일을 적용한 저술 자기소개서입니다.
- 그림은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하나의 스타일로 선택과 집중을 하려고 했던 건 출판물 형식이길 바랐기 때문이죠. 하지만 브런치북 형식에서 제가 '대안출판과 정보유통'의 관점에서 막연하게 생각했던 (몇몇의) 장점이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직접 실천해보았죠. 뭐든 매체의 문법이 조금 달라지면, 그만큼 많은 것이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굳이 선택과 집중을 해서 하나의 스타일을 고민하기보다는 그동안의 파생적 성과를 충분히 활용하자는 쪽으로 선회하였다고 할까요. 이 글은 그렇게 다시 생각하기 바로 전의 자소서라고 할 수 있어요.
- "긴 호흡으로 쓰더라도 300~400매에 단행본 분량이 나오더군요. 더 압축해서 의미 있는 말에만 집중하면 시민들도 하나쯤은 유의미한 걸 쓸 수 있을 형식이 아닐까 싶었죠."
- "2023년 초에, 뜻밖에 놀이글이 다시 살아 돌아왔죠. 스스로도 끝내는 포기한 형식으로 남을 것에 착잡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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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행시 콜라주로 짧게 번호글을 치면서 삼행시편 선정의 기준을 명확히 하려던 것이었는데, 애초에 삼행시를 새롭게 쓰려던 게 아니라, 이미 써놓은 것을 활용하자는 취지였죠. 그래야 그동안 연예인 덕질로 여러 글쓰기 형식을 고민하던 노력이 시간 낭비가 아닐 것이라고 믿었죠.

그런데 역시 직접 해보면 안 보이던 게 바로 보이죠. 삼행시 콜라주에선 거친 이음매가 보이면서, 번호글이 그 삼행시편에서 점점 멀어졌어요.


[나, 희원이]
“늘 있는 일이죠. 놀랄 것까진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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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번호글이 엄청나게 주객을 전도하는 상황을 맞죠. 결국 번호글이라 부르는 게 무방할 정도로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자기만의 방이 없는 죄로>라는 원고를 뽑았죠.

그리고 시동이 제대로 걸렸다고 해야 할까요?


단행본 분량으로 각각 1000매쯤 되는 <시민영성>, <천재론>을 단기간에 두 편 씀으로써, 오래 전에 죽어버린 감각이 되살아난 거였어요. 삼행시 콜라주로 쓰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주객이 전도되어서, 번호글, 사실상 논술 놀이처럼 주장의 스펙트럼을 인터뷰 형식으로 보여주는 산문이었어요. 그저 각 인물의 발언 때 번호를 매겨서 번호글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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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긴 글을 쓰고 보니, 갑자기 새로 쓰는 것, 긴 호흡으로 쓰는 게 하나도 안 귀찮아진 거였어요. 블로그에 썼던 삼행시나 놀이글을 재활용하지 말고 필요에 따라 해체하거나 원고에 딱 맞는 글로 쓰자는 식이 된 거죠.

그러면서 과거에 포기하고 재워 놓았던 소재를 다시 호출해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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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놓고 다시 삼행시콜라주, 거의 번호글 산문이 된 글 형식으로 다음 소재를 쓰려고 했는데, 갑자기 이물감이 들더군요.

일단 제가 재미 없고, 과연 이걸 따라할 수 있을까 싶었죠. 낮은 글쓰기도 아니고, 쉬운 글쓰기도 아니고, 심지어 짧은 글쓰기도 아니었으니까요.


“이걸 나보고 쓰라고? 그냥 소설을 쓰겠습니다.”





IMG_2742.PNG → 비판에 대해 착잡하게 수긍하는 나


그래서 다시 놀이글을 불러들였는데, 번호글로 한번 쑥대밭이 된 정신 세계로 바라보니, 그동안 고민했던 게 풀리더군요. 번호글의 장점을 놀이글에 끌어들이니, 고흐 이미지에 밀착하지 않는 게 그리 문제가 되지도 않고, 긴 호흡으로 쓰더라도 300~400매에 단행본 분량이 나오더군요.

더 압축해서 의미 있는 말에만 집중하면 시민들도 하나쯤은 유의미한 걸 쓸 수 있을 형식이 아닐까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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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글로선 약간 타협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빠보이지 않았어요. 시간이 흐르고 보니까요.

명화는 고흐 것으로만 쓰기로 결심했고요. 나중에 조카가 크면 어렸을 적 사진을 허락 받아, 팀으로 활용할 예정이지만, 기본적으로는 고흐를 통해서 놀이글 작업을 하고 싶었죠.

명화 화가의 아우라를 고려하면 한 사람의 작품으로만 죽 가주는 편이 차라리 낫겠더라고요. 그만한 작품의 권위에 어울릴 글을 써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감상자의 예의 정도로는 보이게요.


"나는 내 인생을 걸고 견뎠소. 당신은 무엇을 견디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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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흐냐 하면 렘브란트, 쿠르베, 김홍도 등도 검토했지만, 아무래도 고흐가 제일 좋았어요. 그의 이야기도 그렇지만, 그의 그림에는 인상주의 화풍답게 사람과 풍경이 많았어요.

또 후기 인상주의 선두주자답게 주관적 감정적 시선이 주를 이루죠. 내면의 감정을 중시하는 건, 정보 수용자의 본질과도 가까웠거든요. 인상주의에서 순간적으로 현상을 잡아채려는 것은 객관적 시도일 텐데, 그걸 결국엔 주관적 정서로 녹여내니까요.


그런 면에서 고흐가 지녔던 시민적 특질이 마음에 와닿았어요. 그의 애처로운 사연 역시 평범한 사람의 특성으로 비칠 때가 있었고요.


2023년 초에, 뜻밖에 놀이글이 다시 살아 돌아왔죠. 스스로도 끝내는 포기한 형식으로 남을 것에 착잡했는데 말이죠. 거의 침잠하듯 잠정 중단했거든요. 삼행시 콜라주가 완벽한 해답처럼 보였던 2022년 중순부터는 그것에 골몰하고 있었죠. 제가 고민하던 모든 걸 해결해줄 형식처럼 보였어요.


하지만 늘 그럴 때마다 잊혔던 놀이글은 수시로 수면 위로 떠오르곤 했어요. 이번에는 정말 안 그럴 것 같았는데, 이번에도 그랬죠. 더구나 갑자기 많은 문제가 해결된 채로 놀이글이 내 앞에 떠올랐던 거죠. 삼행시와 삼행시 콜라주와 번호글로 돌아들어오니, 갑자기 그동안 마음에 걸렸던 게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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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돌아도 올 것은 오고.


그 놀이글 형식에 재워두었던 글밥을 중심으로 풀어놓으면서 이미지를 배치하니, 사실상 놀이글의 요소보다는 만화적 에세이, 몽상적 이야기, 그림 소설 등으로 부르는 게 적합하겠더라고요. 그냥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약간의 재미를 붙인 일반적인 산문이라 해도 무방했어요.

기존의 놀이글 맥락에서 파생하여 나왔다는 점에서 여전히 놀이글이라 부르지만요. 당장엔 비슷해보이지만 다른 맥락으로 파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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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또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모르지만, 삼행시조차 대개의 경우엔 ‘아이디어의 마중물’로 뒤로 물리고, 놀이글로 집결되는 느낌이 들죠.

제게 최적화된 글쓰기 형식이자, 시민의 참여하는 글쓰기에 알맞은 그릇으로 제가 제안하는 예시라고 해야겠죠.


감히,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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