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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Oct 21. 2023

하늘의 구멍과 달콤한 꿈

원피스 & 콩트




하늘에 구멍이 뚫리면 어떤 일이 생길지 상상한 적이 있습니다. 하늘에서는 엄청난 물 폭탄이 지금껏 상상하지 못했던 폭포수를 쏟아져 내릴 수도 있습니다. 거대한 마천루들은 장난감처럼 부러져서는 엄청난 물줄기에 휩쓸리고, 그렇게 기나긴 시간 동안 내린 비는 바다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우주의 법칙이었습니다. 우리의 지구도 그러한 생성과 쇠락의 법칙 안에 있고, 지구라고 다를 것은 없습니다. 그나마 아직 인류가 살아 있다면, 우리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볼 여지는 있었습니다. 그 가능성은 희박하고 결국 우주를 떠도는 미아의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물이 떨어졌던 하늘의 거대한 구멍을 향해 갔습니다. 때때로 바다의 아름다운 경치에 놀라 하늘을 보다가 바다 너머의 수평선을 보기를 반복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차 있던 광장은 모래알처럼 무너졌고 그곳에 찍힌 발자국만이 사람들이 그곳에 결집해 있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이미 사람들은 바다 쪽으로 달려갔던 터라 이것을 지켜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직 인류의 역사를 기록하는 소수의 기록자 손에 그 광경이 담겼을 뿐입니다. 그 발자국 역시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고, 모래알로 흩어질 찰나의 흔적이었습니다. 그곳에 잠시나마 창조주를 기다렸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될 것입니다. 거리두기를 하려던 사람들은 이미 하늘의 구멍 쪽으로 달려갔고, 하늘의 구멍에서는 엄청난 속도로 빛이 들어찼습니다. 터널 같았습니다. 아주 머나먼 어떤 곳으로부터 밀려들어오는 무한대의 빛.

그곳에서 무언가가 빛을 밀어내고 있는 것일까요? 그게 혹시 창조주의 의지는 아니었을까요? 발자국을 남겼던 사람들이라도 있으면 그들 나름대로의 해석이라도 들어볼 수 있을 텐데,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오랜 만에 바다를 즐겼고, 어떤 사람은 거대한 구멍의 빛을 보며 물줄기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저 빛이 쏟아질 때 우리는 어떻게 될까?”

두려워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저 빛이 쏟아질 때 그 빛에 증발될 거야.”

구체적으로 인류의 멸종을 말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때 사람들로부터 멀어진 채로 허무한 발자국의 어지러운 뒤섞임을 사진으로 찍고 있던 남자가 찬찬히 바다 쪽으로 다가가서는 지나가는 말을 내뱉었습니다.

“저 빛이 우리의 창조주가 오고 있는 징표라면 정말 좋겠네요.”

“아, 그 예전에 있던 종교의 메시아를 말하시는 거군요.”

어디선가 말이 날아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흔적도 없이 타버리는 건가요? 아니면 저 빛의 한 요소가 되기 위해 증발되는 건가요?”

대답을 들으려고 했던 혼잣말은 아니었기에, 남자는 잠자코 있었습니다. 약간의 답례성 미소를 보이긴 하였습니다. 남들에겐 멋쩍은 웃음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 빛도 우주의 물리적 법칙에 갇혔다면, 얼마나 먼 곳에서 오는 것인가에 따라, 저 빛을 보낸 존재의 현재 상황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 것 같은데요. 지금 계시기는 할까요? 그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이미 다 소멸하고 없는데 말이죠.”

바이러스로 기억되는 사람들이 그를 기다렸는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 유의 믿음 자체가 전승되는 전설로만 남은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그때를 ‘달콤한 꿈의 시절’이라고 불렀고 또 누군가는 ‘어처구니없는 신의 놀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때 이후로도 구원은 없고 인류의 숫자는 급속도로 줄었습니다. 인류는 인류가 놓은 덫에 걸려 스스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 역시 세상의 법칙일 수도 있었습니다. 우주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는 태생적 운명에 따른 법칙 말입니다.

만일 그가 정말로 온다면, 대체 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는 것인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인류의 시절에서 제법 이른 때에 자취를 감췄기 때문입니다. 그를 기다리는 소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가까스로 버티는 소수, 지구 전체로 보아도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소수로 남아버린 인류 모두가 아무런 해법이라도 들고 있는 그 어떤 존재를 기다린다고 해야 했습니다.

그때 구멍을 가득 채웠던 빛줄기가 한 줄기씩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았지만, 날카롭게 뻗어나가는 빛줄기가 오늘의 것이 아니라면, 아주 오래 전의 달콤한 꿈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신호들이 사람들의 눈물 속에서 간절함으로 녹아들길 바라였습니다. 빛으로부터 시작된 빛으로의 증발이 슬퍼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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