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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전형과 멀리 떨어진 대중

[1.2]동호 & 천재론

by 희원이

[목차: 천재론] 57편 중 3번 원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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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 인물의 관점 & 소개글」 보시려면 → 목차 상세보기





[1.2] 동호: 천재의 전형과 멀리 떨어진 대중

제가 생각하는 천재의 전형은 이상, 고흐, 고갱, 랭보, 카프카 같은 사람들이에요. 아, 실비아 플라스 같은 사람도요. 뭔가 강렬한 천재성으로 평범한 사람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어요. 또 대개는 우울기질을 지녔거나 광포한 야성이 있거나 놀라운 스캔들로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죠. 그들의 스캔들은 종종 일탈과 방황으로 점철되었죠. 현대 대중음악사를 보면 그러한 경우가 많고요. 록을 좋아하면서부터 제가 쉽게 떠올리는 천재의 유형이 록커에게서 쉽게 발견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요. 커트 코베인,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같은 사람 말이에요. 27살에 요절해야 할 것만 같다던 어느 선배의 자조 섞인 농담이 떠오르죠. 자기가 아무래도 천재가 아닌 이유는 27살에 죽지 못해서라나요. 지금은 잘 사시면서 미술 교사를 하고 계시죠. 그 시절의 불건전한 말 따위는 하지도 않는 건실한 교육인이 되셔서 말이죠.


어쩌면 대중이란 이제는 희미해진 어떤 타인의 과거를 구경하면서 감탄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천재를 만들어낸 어떤 배경이 이미 합의되고, 그것이 안정적으로 공인되는 시점이라면 오래 전 역사를 다루는 때일 테니까요. 멀리 떨어져 있기에 영화 같겠죠. 별에 가까이 다가서면 지옥불이지만, 멀리서 보면 아름답듯이요. 나와는 다른 존재니까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 것이란 막연한 짐작으로 그들을 액자 속에 가두어 두고 감상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고요.

마치 낭만주의 시절에 살다 간 불후의 천재들을 잊지 못한 감상자처럼요. 그들 중 사실 많은 이들은 건실한 사회인이었겠지만, 우리의 뇌리에 강렬히 박힌 요절한 천재라든지, 그들의 저주받은 걸작을 떠올리면서 왜 그때 그를 못 알아보았는지 안타까워하며 그들을 열망하죠. 그런 실수를 범하면 안 되겠다면서요. 마치 다시 올 예수님을 한 번에 알아봐야 한다는 듯이 다짐해보지만, 그런 상황이 다시 온다고 해도 또 거르고 말겠죠. 실수는 반복되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요절한 천재,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말이 여전히 힘 있게 드러나겠죠. 요절했다는 사건,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해서 묻혀있던 게 알고 보니 걸작이었다는 사실, 이런 게 비극적인 느낌을 주고요. 미안하죠.


당시에 바로 알아본다면 저주받은 걸작이란 말도 없었겠죠. 그렇다면 당시 전문가들이 모두 바보였을까요? 그러진 않았겠죠. 예수님의 시절만 보아도 예수님을 비판하던 이들은 모두 사회에서 저명한 신학자들이었어요. 마찬가지로 슈만이 ‘비평가로서 조심해야 할 것은 뛰어난 인재를 더 높이 평가하는 것보다 한 명의 천재를 못 알아보는 실수를 범하는 것’이라 했다잖아요. 그만큼 알아보기 어렵다는 의미겠죠.

그 당시로 우리가 간다고 해서 그들을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오히려 더 비웃고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까요? 문제를 풀 때도 정답을 보기 전에는 알 듯 모를 듯하다가, 정답을 보고 나서야 원래 알았는데 방심한 것처럼 착각하죠. 우리는 그렇게 무수한 사람을 못 알아보고 스치듯 보낸 뒤에야 뒤늦게 깨닫죠. 대단한 인물을 못 알아볼수록 안타까움이 더해지나 봐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그를 대단한 인물로 판단할 순 없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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