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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속설

[1.3]희정 & 천재론

by 희원이

[목차: 천재론] 57편 중 4번 원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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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 인물의 관점 & 소개글」 보시려면 → 목차 상세보기





[1.3] 희정(재즈 피아노 전공): 천재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속설

천재를 알아볼 수 없다는 말에 절반쯤은 동의해요. 분명 저주 받은 걸작도 있고, 요절한 천재도 있으니까요. 그게 과장된 면도 있을 순 있지만요. 그들을 못 알아보는 건, 그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들의 방식이나 추구하는 가치가 기존의 틀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죠. 만일 살짝만 방향을 틀어서 그들을 보았다면, 충분히 알아보았을 거예요. 하지만 사람들로서도 그럴 필요를 못 느꼈겠죠. 그래야 할 이유를 못 찾았는데, 자기 인생을 걸고 그 천재와 함께 모험을 할 필요는 없잖아요.

더구나 불우한 천재들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면, 천재라는 사람들이 요절할 일이 많이 줄었을지 몰라요. 본인이 통제하지 못할 문제 탓에 자살에 이른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 가난 때문에 병이 깊어지기도 하는 것이고요. 여러 모로 사회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요절이라는 현상에 끼어들죠. 어쩌면 요절이란 말도 그게 비범한 예술가의 이른 죽음이었기 때문이지, 당시엔 많은 청년들이 큰 병을 얻으면 일찍 죽을 수밖에 없었겠죠. 가난에 몰린 자들이라면요. 지금처럼 사회보장이 되어 있지 않았으니까요.


심지어 모든 천재들을 못 알아볼 거라는 생각도 과장되었죠. 실제로 대중들은 많은 천재들을 미리 알아보고 어떻게든 평가해주죠. 그들의 인생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더라도 어쨌든 노년에라도 알아보는 경우가 많죠. 저주 받은 걸작만 즐비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 있지만, 그런 사례는 드물죠. 물론 지금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묻혀 있을 걸작들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말할 수 없겠죠. 이런 사례까지 고려해야 한다면 지금 아무것도 말할 수 없을 테죠. 현실적으로 지금 보이는 것으로만 논의하자면, 천재를 못 알아본다는 속설은 거짓일 때가 많아요.

분명 불운한 천재도 있긴 했고 여전히 어딘가에 있겠지만, 특정 분야에서는 저주 받은 천재가 존재하기 어려워요. 대표적으로 스포츠와 재즈 협연 분야에서 그렇죠. ‘저주 받은 걸작’이란 표현, 재즈에서는 있기 어렵고, 특히 운동스포츠 분야에선 거의 불가능하죠. 전 재즈 피아노를 공부하고 있지만, 천재가 있다고 절실하게 느낀 분야는 스포츠였어요. 재즈에도 힘 빠지게 하는 압도적인 존재들이 있지만, 그래도 흉내라도 내기 때문에 아득하게 느껴지진 않았어요. 재즈를 공부할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드니, 재즈 분야의 천재들에게 더 경이로움을 느껴야 맞을 것 같은데, 그래도 감성의 예술 분야라서 그럴까요? 반드시 경이로움을 느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을 독자적인 지점에 자리 잡고 제 마음을 파고 들 수 있죠.

반면 스포츠의 천재들은 정말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았거든요. 스포츠는 정말 냉혹하잖아요. 개인적으로 뛰어난 기량임에도 꼴찌 팀이라 우승을 못했다면 아쉬운 면이 남을 수 있지만, 하나의 가능성에 안타까워하는 것일 뿐이지 실제로 작품처럼 확증 가능한 어떤 결과물은 없으니까요. 우승을 못한 메시라면, 그냥 우승을 할 수도 있을 메시일 뿐이죠. 지금의 메시는 각종 기록을 갈아치운 ‘전설’이지만, 만일 지금도 여전히 우승할 기량을 갖춘 선수이기만 했다면 저주받은 걸작이란 표현이라든지, 저주받은 천재란 말이 어울릴까요? 저주받은 천재 정도는 가능할까요? 저주받은 걸작은 있을 수 없지만요.


그래요. 천재란 말도 그냥 기량이 뛰어나다는 정도라면 ‘저주받은 천재’란 표현도 가능하겠죠. 천재적인 재능을 보통 말할 때는 아직 확정된 결과물을 상정하지 않고 매우 출중한 실력을 의미하죠. 천재적인 능력을 갖춘 인재란 의미로 해도 충분히 천재란 말을 성적으로 증명하지 못한 젊은 천재 선수에게 붙일 수 있겠어요. 하지만 여전히 탐탁지 않아요. ‘저주받은 천재’가 제때에 즉각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 두각을 나타내지 않으면 애초에 수준급 경기에 투입되지 못하죠. 그만큼 검증될 수 없으며, 결국 ‘저주받은 천재’란 표현조차 무색해지죠. 스포츠에서 세계적인 대회에도 못 나가는 재능을 천재적인 재능이라고 이름 붙여주자니 좀 애매하잖아요. 그냥 가능성이나 작은 재능 정도였겠죠. 스포츠의 성격상 그 과정의 기록 자체가 천재를 증명하는 것이기에, 운동선수 역시 묻혀 있다가 후대에 발굴되는 천재의 신화는 불가능하죠.

하물며 그의 모든 선수 경력에 걸쳐 성적으로 증명한 천재적 결과에 부여되는 ‘저주받은 걸작’은 반드시 성적이 뒷받침되어야 하잖아요? 스포츠에서는 성적으로 증명되었다면 애초에 ‘저주 받았다’는 불운의 설정이 어려워지겠죠. 냉전 시대라면 가능했을까요? 드물지만 가능했겠죠. 이미 거대한 성취를 하고 스스로 기록을 경신해나가는데, 냉전 이데올로기에 걸려서 다음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고 선수 경력을 마감했다면, 더 경신되지 못한 그의 압도적인 기록은 저주받은 걸작이라 불릴 만하겠죠. 하지만 실제로 그 기록이 깨졌을지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지 실현된 건 아니라는 점에서 역시 예술 작품에서 의미하는 ‘저주 받은 걸작’이란 표현에 온전히 들어맞진 않아요.

가능성은 어디까지나 실현되지 않은 것에 대한 기대에 불과하니까요. 모두가 세계 신기록 보유자에게 기대할 때 이름 모를 신인이 그걸 압도적으로 눌러버린다면, 그 순간, 어떠한 미련 없이 그 신인에게 ‘천재의 탄생’이란 표현을 스스럼없이 하겠죠. 실제로 제겐 그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어요.


우사인 볼트와 김연아를 TV 너머로 보았을 때 제 상상을 훌쩍 넘어서는 존재를 인정해야 했다고 할까요? 우사인 볼트가 세계적인 선수들을 훌쩍 앞서 달리며 좌우로 고개를 돌릴 때, 그 모습이 경이로웠죠. 천재는 정말 있구나 싶었어요. 학교에서도 꼭 기막히게 공부 잘하면서도 잘 노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사람은 있다고 여겼는데, 그것과도 격이 달랐죠. 그와 경쟁하는 선수들이 누군가요? 모두가 그냥 잘하는 정도가 아니죠. 모두가 면도날만큼의 실력 차이로 순위를 가리는데, 거기서 우사인 볼트는 군계일학이 되니, 그 모든 선수에게 닭이라는 표현이 너무도 죄송스럽지만, 정말이지 볼트 홀로 고고한 학이었죠. 아무리 과학적으로 스포츠 역량을 끌어올렸다고는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반드시 드러나는 천재가 있는 게 아닐까 싶었죠.

김연아도 그랬어요. 뻣뻣한 동작 하나 없고, 호쾌했고, 무엇보다 관객을 사로잡을 예술을 보여주고 있었죠. 모르는 사람이 봐도 김연아는 남다르다는 게 느껴졌다니까요. 심지어 당시 한국은 세계무대에서 거의 촌구석이나 다름없었잖아요. 연아조차 지원을 제대로 못 받아서 각개전투하듯 버텼으니, 세계무대의 성적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천재적 결과라고밖에 설명하기 어려웠어요.

김연아가 아니었더라도, 노력하면 다 가능했을까요?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란 격언을 들이미는 경우도 있던데, 저로서도 천재를 변호하고 싶은 입장은 아니지만, 이건 그냥 주변에서 천재가 안 보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란 생각도 들어요. 압도적인 천재를 만나면 노력이고 뭐고, 의미가 없다는 무력감이 들 수 있어요. 그 천재가 노력을 한다면, 말할 나위 없고요. 무수한 천재가 스러졌다는 건 그냥 적당히 뛰어난 실력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천재가 그 재능을 세상에 설득할 정도로 현실화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죠. 천재가 노력해야 되는 거지, 일반인이 노력한다고 되는 건 아니죠. 일반인이 즐기면, 천재의 작품을 사주기 때문에 천재가 이기지 못할 수는 있겠죠. 자신의 팬이니까요.

스포츠는 냉혹하지만 아주 솔직하게 천재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분야죠. 우리가 피겨를 해서 노력하면 그 정도 경지에 이를까요? 그럴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천재를 믿지 않고, 이념적으로 모두가 노력하면 가능하다는 좋은 말을 경계하려고 할 때 스포츠의 천재들을 떠올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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