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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에선 저주받은 걸작이 묻혀 있기 어렵다

[1.4]희정 & 천재론

by 희원이

[목차: 천재론] 57편 중 5번 원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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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 인물의 관점 & 소개글」 보시려면 → 목차 상세보기





[1.4] 희정: 재즈에선 저주받은 걸작이 묻혀 있기 어렵다

스포츠 천재들만큼 극명하지는 않더라도 재즈의 협연 분야에서도 천재는 당시에 즉각적으로 두각을 나타내야만 하죠. 고갱이나 고흐, 슈베르트, 카프카처럼 철저하게 묻혀 있다가 나중에 발굴되는 천재형 예술가가 있기 매우 어렵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즉흥 협연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연주가 중심의 음악이라 당대에 과소평가를 받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 평가받아야 하니까요.

물론 협연이 아니라 독주라면 또 다르겠죠. 혼자만 잘하면 될 테니까요. 또 협연인데 협연자들이 너무 실력이 뒤쳐져 합이 제대로 안 맞아 엉망이더라도 즉흥연주 차례 때 자기만의 실력을 돋보이게 보여줄 수도 있겠죠. 드물지만 혼자서만 돋보이더라도 워낙 혁신적인 기법이라, 후대의 연주가들이 그 기법으로부터 새로운 음악적 아이디어를 찾아낸다면, 협연의 수준이 낮더라도 감안하고 듣겠죠. 이 경우에도 전체의 연주로선 제대로 성취된 상태라 하기는 어렵고, 보통은 전체 흐름이 안 좋으면 개인의 연주도 묻히기 마련이죠.

이럴 때는 샘플링 기법으로 전자음악 방식으로 1인 작업을 하는 것도 괜찮죠. 또 21세기에는 1인 밴드로 활동하면서 자기가 구상한 악기를 모두 자기가 연주해서는 녹음해서 작품을 창작하잖아요. 요즘 록 음악가들 중에서 언더그라운드에서 활약하는 밴드 중 1인 밴드가 제법 있죠. 기타, 드럼, 베이스까지 모두 자신이 연주하고 라이브 때만 세션을 고용하는 거죠. 이런 경우라면 분명 자기가 구상한 방식을 실현할 수도 있을 거예요. 작곡 중심의 음악이기 때문에 연주자들이 이미 짜인 방식대로 잘 연주하면 되니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천재적 작곡 능력으로 후세를 기약하는 경우가 생기는 거죠. 또 그 연주의 수준이 재즈나 클래식만큼 복잡하지 않을 때도 많아서 웬만한 수준급 연주자를 섭외해 질 높게 연출할 여지도 있어요.


그런 것에 비해서 재즈 협연에서는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죠. 클래식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있으면서 혼자만 돋보이기 어렵듯이요. 아! 오케스트라와도 또 다른 면이 있네요. 재즈는 작곡 중심의 장르에서 좋은 작품을 열심히 연습해서 재현할 때보다 더 많은 변수를 감당해야 하니까요. 재즈는 그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악보보다는 연주 중심이니까요. 대개 작곡된 재즈 작품은 연주가의 방식에 따라 아예 형체를 모르게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잖아요. 작곡자의 작품은 그 연주를 해나가는 중요한 길라잡이면서 참고 대상일 뿐이니, 클래식 분야에서 보여주는 엄청난 권위는 없는 셈이죠. 그것이 재즈다운 전통과 연결되기에 작품 자체로 압도하는 천재성을 보이고 ‘저주받은 걸작’이란 표현이 어울리려면 애초에 연주 중심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가능할 듯해요.

만일 현 패러다임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최근 현대재즈의 흐름을 반영하듯, 즉흥의 요소를 줄이고 작곡가나 프로듀서의 역량을 높인 작품이라면 집중적인 연습으로 어느 정도 전체의 향상이 가능해요. 클래식 오케스트라처럼요. 이 경우에도 ‘저주받은 걸작’이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지만요. 작곡자이자 리더였던 플레처 헨더슨처럼 당대엔 과소평가 받았지만 그 안에서는 일급음악가인 루이나 콜맨 호킨즈 등을 단원으로 관리했던 수준의 위상쯤은 되어야 숨겨진 천재의 신화가 가능하니까요. 분명 고흐나 카프카의 작품처럼 저주 받았다고까지 하기는 어렵죠. 물론 재즈 역시 재즈작곡가 중심의 장르로 재편되어 연주가의 협연보다는 작곡가의 빛나는 아이디어가 더 중요하다면 운이 나쁘게 철저하게 묻힌 천재형도 가능할 거예요.


그런데 기존대로 재즈다운 협연에 방점을 찍을 경우, 라이브 당시의 개인 기량들이 기대야 할 부분이 꽤 있으니까요. 그런 부분이 살아날 수 없다면 전체 흐름이 최상으로 올라오긴 어려울 테니, 협연자까지 출중하지 않는 이상에는 아무래도 저주받은 걸작이 탄생하기 어렵겠죠. 명연은 천재와 그를 받치는 일급 음악가들이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하니까요. 불가능하다는 의미까지는 아니에요. 그만큼 확률이 낮아지고 제가 생각할 수 있는 많은 분야 중 가장 확률이 낮아 보인다는 것이죠. 희박한 확률로 네 명의 숨은 강자들이 모여서 주목받지 못한 채 회사 다니면서 취미로 창고에서 연주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들 모두가 동시에 묻혀있기란 불가능에 가깝죠. 4부리그팀을 이끌고 메시가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MVP를 거머쥐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나중에 알고 보았더니 메시뿐 아니라 이니에스타, 티에리 앙리, 음바페, 네이마르가 모두 저평가된 채 묻혀 있다는 소리죠. 불가능에 가깝죠.

그래서 당대에 인정받을 만한 실력, 오해받아 저평가 받지 않을 실력이어야 한다는 게 중요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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