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동호 & 천재론
[목차: 천재론] 57편 중 6번 원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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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 인물의 관점 & 소개글」 보시려면 → 목차 상세보기
[2.0] 동호: 비범해 보이는 천재, (위험해 보이는 천재,) 하찮아 보이는 천재
장르마다 특성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에 따라 천재의 양상도 천편일률적으로 드러나는 건 아닌 것 같고요. 그래도 공통점이라는 게 있지 않을까요? 제가 좀 강하게 불멸의 천재, 이해받지 못한 불우한 천재, 그들을 바라보는 어리석은 대중을 언급했는데, 사실 그런 천재만 있는 것도 아니고, 대중이 어리석다는 것은 과거의 과장된 묘사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식으로 접근할 때 천재가 매력적으로 포장되니까 그랬던 게 아닐까 싶죠.
하지만 제가 선호하던 가엾은 천재라면 저조차 당대에 살았다면 알아보기 어려울 거라고 했죠. 어쩌면 지금도 하찮게 보았던 어떤 인물이 사실은 대단한 천재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고 다시 살펴도 솔직히 제가 하찮게 여기던 사람을 갑자기 대단한 것처럼 대접하자니, 마음속에선 의심이 싹트죠. 어쩔 수 없어요. 어떤 가치, 평가 체계가 전면적으로 전환된 상태가 아니기에 저 같은 사람은 그저 지금의 가치를 고수할 수밖에 없거든요. 어떤 식으로 바뀔지 지금 시점에선 알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것에 사활을 걸 만큼 해당 분야에 관심도 없죠. 모두가 그럴 거예요. 그러니 해당 분야에서 그의 악전고투를 온전히 이해할 여력도, 능력도 없죠.
제가 실수할 것이란 걸 알아요. 확률적으로 저 자신이 특별히 대단할 것도 없으니, 남들만큼 실수하겠죠. 그렇게 천재들을 몰라볼 것 같아요. 그들도 알아봐달라고 하지 않는데 제가 꼭 알아봐야 할 이유도 없고요.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조심하게 되죠. 하찮아보인다고 함부로 평가절하하지는 말자고요. 언제든지 섣부른 판단을 한 것을 후회할 수 있으니까요.
네, 저는 천재는 놀라운 능력을 지닌 존재라고 예찬했지만, 그런 존재일수록 하찮아보인다고 봐요. 물론 비범해 보이는 천재도 있죠. 오히려 더 많을 것이란 말에도 동의해요. 하지만 하찮아 보이는 길을 걷는 천재가 더 모험을 하고 있다고 봐서, 심정적으로 응원하고 싶은 거죠. 그 중간쯤에 위험해 보이는 천재도 있는데, 분명 비범하다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데 하찮다기보다는 좀 위험한 경계선에 있는 것 정도로는 감지가 되는 존재들이겠죠. 그들은 대개 대중을 불쾌하게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끝내 그들을 하찮아 보이는 존재로 분류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전 그냥 둘로 나누죠. 하찮아보이는 천재와 비범해보이는 천재로요.
예술사를 보면 당대에 즉각적으로 인정받거나 늦어도 노년에 가서 인정받는, 이를테면 비범해 보이는 천재가 많아요. 대다수가 아닐까 싶어요. 그들은 대중이 기대하거나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뛰어난 것이라 사회에서 비교적 수월하게 수용될 수 있죠. 비범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면 적어도 그들을 고평가할 만한 수용 범위 내에 있다는 방증이죠.
그걸 벗어나버리면, 마치 가청 범위 바깥의 소리처럼 그 천재들의 가치가 누락되죠. 낯선 것에 대한 판단 경험이 없으니까요. 때로는 정말 수준 미달인 경우도 있으니 더더욱 헷갈릴 거고요. 때로는 정말 형편없는 작품과 굉장히 엇비슷해보여서 전문가조차 쉽사리 하찮다고 판단해버리고요.
결국 그들을 알려면 기존 판단 체계에서 이름표를 다 떼고 새로운 이름표를 하나씩 새로 붙여나가야 하죠. 그래야 그들이 비로소 보이죠. 그때 진짜 하찮았던 흔적과 하찮은 줄 알았는데 전혀 새로운 방향을 가리키던 흔적을 구별할 수 있어요. 그들은 운이 나쁘면 죽을 때까지 천재로 인정받지 못할 거예요. 비범한 천재로 수정되지 못한 채 죽고도 당장 재평가 받지 못할 수도 있죠. 또 영영 그가 천재였다는 걸 모르게 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자면, 아직 역사 속 여성 예술가들은 제대로 발굴되지도 못하거나 충분히 조명 받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그들은 늘 예술계에서 뒷전이었잖아요. 그렇게 이름 없는 천재들은 그들을 대신한 어떤 천재의 이름으로 섞여 들어간 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채로 잠들어 있을 수도 있겠죠. 운 좋으면 1세기 뒤에라도 발굴되기도 하지만요.
하지만 이들을 평가하려고 공력을 들이는 것보다 비범해 보이는 천재에게 열의를 보이는 게 효율적으로 보이죠. 아무래도 뜻밖에 벼락출세한 숨은 존재는 그리 많지도 않을 뿐더러, 설령 그들이 정말 진흙 속에 묻혀 있던 보석이라 하더라도, 역사적으로 보면 사실 비범해 보이는 천재가 더 위대할 순 있어요. 빈도수가 더 많다는 거죠. 하찮아 보이는 천재 중 고흐나 바흐처럼 나중에도 위대하게 평가받기도 하지만, 그런 존재 중에서 모두가 반드시 비범해 보이는 천재를 압도하는 것만도 아니잖아요. 그저 약간의 재평가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더 많다 보니, 굳이 하찮아보이는 천재들을 챙길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구심도 들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하찮아 보이는 천재를 더 높이 평가하는 가중치를 부여하는 것이 나아요. 그건 단순히 하나의 재능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우리 삶을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시스템에 관해 다시 생각하는 것이니까요. 그 너머의 가능성이요. 그 무모한 도전과 뜻하지 않은 폭주를 기려서 시스템으로부터 탈주하는 가능성을 되새기자는 거죠. 그건 바로 확고하게 굳어버린 각종 가치와 체계 바깥으로 나아가, 먼저 새로운 가능성을 탐험했던 이들을 존중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라고 보거든요. 그러한 시도를 했던 인물들을 발견해내는 것, 그것이 우리의 의무이자 예의 아닐까 싶죠. 또 무수한 실패를 기억하여 갈무리함으로써 우리가 이룩한 것에만 도취하지 말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려는 노력일 수도 있어요. 먼저 모험한 자들을 존중해주는 것 자체로도 말이죠.
고흐, 고갱, 카프카, 페소아, 멜빌, 포우, 랭보, 보들레르. 너무도 많은 천재들이요. 당시엔 그냥 하찮아 보였거나 위험해 보이기도 했던 사람들이죠. 하찮아 보였다면 카프카나 멜빌이나 포우나 고흐나 고갱처럼 무기력한 채 쓸쓸한 삶을 살았을 거고, 위험해 보였다면 랭보나 보들레르나 오스카 와일드처럼 오명의 이미지를 뒤집어쓰고 살았겠죠. 적당히 위험해 보였다면 비범해 보였을 텐데, 체제를 위협할 존재는 불편해지고, 그럼에도 자기 길을 걸어야 했던 경이로운 존재들이죠. 그때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하찮아 보이는 천재들이 있는 동네인 줄도 모르고 그 동네를 스쳐서 홀로 걸어갔을 거예요. 하찮아 보이는 천재들이 자기 집에서 고독에 질식하는 동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