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천재와 거장 사이

[2.2]동호 & 천재론

by 희원이

[목차: 천재론] 57편 중 8번 원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 목차 상세보기)


※ 「등장 인물의 관점 & 소개글」 보시려면 → 목차 상세보기





[2.2] 동호: 천재와 거장 사이

물론 천재가 거장이 되는 경우도 많겠죠. 모차르트가 대표적인 경우죠. 번득이는 재기로 어렸을 적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흐름을 수용해서 많은 작품을 만들며 고전주의 음악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매김했으니까요. 단기간에 요절해서 그 전체 흐름을 압축한 성과를 드러낼 정도는 아니지만, 그가 있었기에 그 뒤가 가능했다는 걸 온전히 인정해야만 하는 존재죠.

그들 중 어떤 이는 랭보나 에밀리 브론테처럼 당시엔 하찮게 보이지만, 어떤 이는 커트 코베인처럼 당대부터 비범해 보이는 천재로 자리매김하죠. 그런가하면 오스카 와일드의 혁명성은 비범해 보이는 천재 유형으로 분류되기는 하는데 다소 위험해 보여서 세간의 비난을 받고 소송도 당하죠. 주나 반스도 동성애적 흔적 때문에 엘리엇의 격찬을 받았음에도 일정 부분 편집을 감수해야 했어요. 루소는 종교계와 마찰이 생기는 바람에 소송을 당하면서 스위스로 도피하여 쓸쓸한 말년을 보냈죠. 천재는 하찮아 보일 정도로 앞서 있지 않더라도, 독보적인 존재로 이해받지 못할 가능성은 늘 있죠.

천재는 거장이나 명인과 달리 우리의 생각을 전면적으로 뒤집는 발칙한 면이 강하니까요. 그들이 거장이 되기까지 시간을 견뎌내며 오랫동안 증명하지 않으면, 쉽사리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단 한 작품만으로도 인정받은 비범해 보이는 천재라면 대중이 이해할 만한 운이 좋은 수준, 주파수가 맞는 범위 안에서 천재일 가능성이 높죠. 애매하게 어긋나면 대중의 기대와 방향이 달라져서, 하찮아 보이게 되죠. 운이 닿는다면 오래 견뎌서 거장으로 성장한 유형으로 분류되겠지만, 운이 나쁘면 그렇게 잊힌 존재가 되어서 하찮아 보이는 채로 온 삶을 채워야 할 수도 있지요. 사후라면 스스로 서러울 수도 없으니 그나마 다행일까요? 렘브란트가 그랬죠.


렘브란트는 전기 때는 집단초상화 화가로 명성도 대단했고 돈도 많이 벌었다고 알아요. 그러다 <야경>에서 집단초상화에 실험적인 시도를 하다가 명성이 추락하죠. 거금을 주고 그를 고용한 사람 중 어떤 이는 근엄하게 그려주었지만, 어떤 이는 좀 천박하거나 여하튼 인간적인 표정으로 그려주었거든요. 당시 집단초상화는 마치 신격화된 이미지를 끌어와서는 시민 계급인 부르주아의 이미지를 근엄하게 보여주는 데에 활용했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비열하거나 추악할 수도 있을 흔적을 덧대어 평범한 인간으로 묘사를 하면서 문제가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천박한 집단초상화라는 비난을 받고 나니, 그 위대한 작품을 그린 렘브란트는 자신의 밥줄이었던 집단초상화를 혁신하려던 시도 때문에 명성이 추락했죠.

그 뒤로도 그 명성을 회복할 기회를 붙잡지 못했지만, 후기에도 초상화 등 개인적으로는 훌륭한 명작을 많이 그렸죠. 초기부터 천재이자 거장으로 대접받았지만, 모두가 아는 천재가 퇴물이 되면서 사라진 거죠. 그렇게 렘브란트는 잊혔고 그 뒤로도 비평가들이 렘브란트의 시민적 시도를 저평가하면서 1세기 가량 철저하게 묻혔다고 하죠. 우여곡절에 롤러코스터 타듯 널 뛰는 파란만장한 삶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뒤로 그의 가족들이 남았다면 죽기 전까지 렘브란트의 명성이 복원되는 것을 보지 못했을 거고, 체념했겠죠. 그가 시민사회의 중요한 순간을 표현한 유럽의 위대한 거장 중 하나가 된다는 걸 예측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그저 비범할 뻔하다가 위험한 짓거리를 해서 나락으로 추락한 하찮은 천재로 생각했겠죠. 그러고 보니 하찮아 보였다면 그런 사람에게 천재라는 말도 붙이지도 않았겠네요. 당시에는요.

렘브란트는 실패한 화가였어요. 살다 보면,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좌우하기도 하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비범해 보이는 천재, 하찮아 보이는 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