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희정 & 천재론
[목차: 천재론] 57편 중 9번 원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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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희정: 불운한 천재는 길을 잘 못 들어선 벤처 사업가다
사실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불우한 천재는 그리 많지 않아요. 거장이 된 많은 천재 예술가들과 불우한 예술가의 비중을 볼 때 천재를 못 알아볼 가능성은 낮죠. 특히 산업적으로 천재라는 존재를 만들어내는 데에 혈안이 된 상황이에요. 상업적으로 매력적인 요인이니까요. 더구나 많은 분야에 아카데믹한 흐름이 촘촘히 들어선 상황에서 수많은 콩쿠르가 활성화되어 있죠. 천재라면 한두 번의 불운은 있을 수 있어도 영영 묻혀 있을 경우는 확률적으로 낮아요.
그렇다면 어째서 어떤 천재들은 사회에 발견되지 않았던 것일까요? 불운의 천재는 다른 성공한 천재 예술가와는 무엇이 달라서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죠. 고흐, 카프카, 페소아, 멜빌과 같이 생전에 불우하게 저평가당하거나 아예 세상에 이름조차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경우가 일반적이었다면, 이들의 삶이 그렇게 안타깝게 느껴질 리 없었겠죠. 그만큼 보통의 경우에 천재라고 하면 보편적인 추세에 잘 적응하면서 거기서 두각을 나타냈을 거예요.
그들은 분명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존재지만, 동시에 사회인이에요. 설령 탈주하려는 시도를 했다고 인정하더라도, 결국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어요. 그는 중요하지만 그를 다른 동료들이 알아야 해요. 결국 천재는 주로 두 가지 지점에서 동료들과 연결되죠. 우선 천재란 어떤 분야나 사조가 시작하는 지점에서 탄생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들이 문을 열어주어야 그 흐름이 인식되니까요. 둘째, 활화산처럼 확장되는 해당 분야의 틈새에서도 수시로 천재가 등장하여서 다양한 방향으로 해당 분야의 흐름이 확장되기도 하죠. 그 중심에 천재가 있죠. 그렇게 그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그것이 성공적이라면 바로 반응이 와서든, 시간차를 두든 결국 많은 이들이 그것을 따라하고요.
흐름의 문 안으로 들어가서 뛰어난 실력으로 내용을 채우는 이들이 수재형 명인이겠죠. 그렇게 무수한 확장된 내용이 축적되는데 이것을 종합하여 보여주는 최고의 사례로 누군가 명명되기 마련이고요. 베토벤이나 존 콜트레인처럼요. 이들을 통하여 존경 받을 어떤 압축형 상징이 탄생하는 것인데, 이들을 보통 그 바닥 최고의 거장으로 대접할 거예요. 물론 무수한 명인들도 거장으로 불리기도 해요. 거장도 결국 수많은 명인 중 몇몇을 대표적으로 선정한 것일 수 있으니까요. 더 그럴 듯한 존재가 되었을 뿐, 어떤 경우엔 명인 모두가 거장이라 해도 무방하죠.
천재가 명인이면서 거장이기도 하고요. 모차르트야말로 천재의 대명사이면서, 그것을 오롯이 거장의 행보로 증명하였죠. 피카소도 천재이면서, 비교적 쉽게 성공했고 엄청난 성취를 이루죠.
그럼에도 세상을 넘어서는 이야기로 끈질기게 세상과 불화하는 신화는 우리가 상당히 좋아하는 이야기 중 하나예요. 그런 생애를 견디기가 쉽지 않아서 그럴 것이고, 어쩌면 그들도 그런 생애를 살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아무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죠. 평범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거나 조금은 일반적인 교육 과정을 거쳐서 안정된 진로를 찾으려 했을 거예요.
물론 그 중 일부는 안정된 삶을 끝내 선택하지 않고, 도저히 자신의 것을 놓지 못한 채 운명을 감당하는 경우도 있겠지만요. 창의적인 것을 하려고 할 때, 아마 실패를 처음부터 예상하고 시작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약간만 고생하면 될 줄 알았는데, 뜻밖에 고난은 이어지고, 딱히 다른 일을 하고 싶지는 않고, 또는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아서, 이미 돌아서기는 너무 늦어서, 오기가 생겨서, 계속했겠죠. 혹은 그냥 습관적으로 별 생각 없이요. 그런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해요. 그런 건 영영 알 수 없을 테지만요.
이들을 몽상하고 있으면 어쩐지 주류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천재적인 거장들을 동경하거나 질투하는 모습이 그려져요. 씁쓸하지만요. 분명히 재능이 있지만 그걸 온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건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거겠죠. 분명 당대에 필요한 재능이 있을 텐데 당대의 관점에서 그 재능에만 초점을 맞추면 기술적 역량이 모자란 것일 수도 있죠. 그들이 보유한 다른 재능은 아직 제대로 평가받을 당위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니, 그런 점에선 불운을 겪는다고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