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소개글]
- 놀이글 스타일입니다. 놀이글 스타일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주로 선호하던 방식은 즉흥적으로 이미지를 따와서, 의도치 않은 이미지 콜라주로 이야기를 뽑아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연예인의 이미지를 즉흥적으로 실시간으로 따와서 그것으로 예정에도 없던 이야기를 만드는 놀이이자 일종의 덕질이었습니다. 그러다 과정의 미덕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에 몰입했죠.
- 이미지를 즉흥적으로 수집하다 보니, 놀이의 목적이 컸고, 저작권이나 초상권 문제가 걸릴 수 있어서, 저작권 만료 이미지(고흐)를 활용하거나, 직접 사진을 찍는 방식을 쓰거나, 사진작가나 일러스트레이터와 협업을 하는 방식으로 대안적 선택을 구상하기도 했습니다.
- 더 나아가서 마치 록밴드처럼 글 작가, 이미지 아티스트, 사운드 아티스트, 성우, 동영상 편집가 등등이 모여 유튜브 크리에이티브 팀을 만들어 각자 작업하고 그것으로 2차적 교감을 하는 몽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 이중 고흐 등 일정 수의 제한된 이미지를 활용하여 반복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뽑아내는 방식도 구상하였는데, 이를 콜라주 기법 중 바텀업 방식이라고 편의상 부르고 있습니다. 나중에 <글쓰기 외전: 스타일 편>과 <글쓰기 외전: 과정과 놀이 편>으로 정리할 예정입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예정일 뿐입니다.
- 아, 과정의 관점을 확장하지 않고 보면, 그냥 엉뚱한 해석을 뽑아내는 B급 포토 에세이랑 유사하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예전과 달리, 놀이글이란 표현을 굳이 고집하지 않고, 그냥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한 에세이로 부릅니다.
- 놀이글에 관해서는 가급적 (저작권 만료된) 고흐 이미지 등으로 제한하려고 합니다. 즉, 브런치스토리에서는 되도록 정통(?) 놀이글은 올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재즈에선 고갱이나 고흐, 슈베르트, 카프카처럼 철저하게 묻혀 있다가 나중에 발굴되는
천재형 예술가가 있기 매우 어렵습니다.
"좀만 더 일찍 말하지. 지금은 팬미팅을 할 수가 없잖아."
"오래 전 소리와 춤은 기록될 수 없었지요. 그때는 최고의 반열에 있어도 글로만 묘사되었답니다. 하물며 범부의 솜씨란 글로도 묘사될 수 없었죠."
왜냐하면 즉흥 협연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연주가 중심의 음악이라 당대에 과소평가를 받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평가받아야 하니까요.
"나는 시인. 그대는 가야금니스트. 우리의 삶이 곧 예술의 역사지요."
"레코딩으로 기록을 남길 수 있더라도, 협연자 수준에 따라 그 공연 수준이 결정되곤 하지요."
음악은 혼자 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죠. 특히 재즈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독주거나 전혀 다른 방식, 예를 들어 샘플링 기법이나 테크노 창작 기법을 도입하여
나는야, 독고다이.
"골방 스튜디오에서 혼자 하지 뭐."
즉흥의 요소를 줄이고 작곡가나 프로듀서적인 역량을 높인 작품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재즈다운 균형에 방점을 찍는다면, 아무래도 협연의 성취를 무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같이 할 수는 없네. 흑. 나도 밴드 만들고 싶어."
K-재즈의 미래!
그렇기에 당대에 인정받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만일 인정받지 못하면 애초에 일급 반주자와 협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어려우니까요.
"흑. 나도 마일즈랑 연주해보고 싶어."
연주란 전체의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즉 명연은 천재와 그를 받치는 일급 음악가들이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합니다. 대중음악에서라면 연주의 완성도보다 인기 있는 음악 작품 자체가 성공에 더 결정적인 요인일 수 있는데, 아무래도 재즈는 연주의 완성도와 해석에 주목하고 그러다 보면 연주자의 기량 자체가 고난도까지 올라와 있어야 수준작이 가능하니까요.
"우리가 오버그라운드에 없지, 가오가 없나?"
아주 희박하게나마 네 명의 숨은 강자들이 모여서
쓸쓸하게 주목받지 못한 채 회사를 다니면서 취미로 창고에서 연주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들 모두가 동시에 묻혀있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천하의 아귀가 왜 이리 말이 많아? 나 같은 불우한 천재가 3명이나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쪽보다는,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쪽에 내 손모가지 건다."
재즈 작곡가 중심으로 명반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반문도 있겠지만,
재즈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악보보다는 연주 중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콩나물 대가리가 별로 없어, 이걸로 평가하기가 참 어렵네그려. 연주를 들어봐야..."
자연히 플레처 헨더슨처럼 당대엔 과소평가 받았더라도, 나름대로 일급음악가인 루이나 콜맨 호킨즈 등을 단원으로 관리했던 수준의 위상쯤은 되어야, 숨겨진 천재의 신화가 가능해집니다. 헨더슨이 불행했다고 해도 카프카나 고흐나 페소아처럼 더럽게 운 없는 무명은 아니었던 셈이죠.
"허허허, 나보다 불운한 놈들이 있었네그려. 미안하이. 카프카, 고흐, 페소아 씨."
아무래도 헨더슨은 고흐나 카프카만큼의 불우한 천재형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죠.
록의 경우엔 대중음악의 이치와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작곡 중심의 음악이니까요.
"징기징 장기징 지기장가징! 롸크놀!" / "땡땡땡! NG! 다시 소리 입혀!"
작품 중심으로 연주자들이 이미 짜인 방식대로 잘 연주하면 되니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천재적 작곡 능력으로 후세를 기약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또 그 연주의 수준이라는 것도 재즈나 클래식만큼 복잡하지 않기에 웬만한 수준급 연주자를 섭외해
질 높게 연출할 여지도 있습니다.
소리 질러! 롸크놀!
재즈 역시 재즈작곡가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재편되어 연주가의 협연보다는, 작곡가의 빛나는 아이디어가 더 중요하다면
운이 나쁘게 철저하게 묻힌 천재형도 가능하겠죠.
"이거 원본일세. 작품번호 몇 번인가? 지금 시대라면 마일즈 작곡 실력은 똥손일지도 몰라. 암, 길 에반스가 최고지."
또한 지금처럼 재즈 연주가 중심의 시절에도 혁신적인 작곡 기법으로 연주가를 매혹시킬 수 있다면 훗날 발굴되는 불우한 천재형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다만 대개 작곡된 재즈 작품은 연주가의 방식에 따라 아예 형체를 모르게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죠. 그만큼 재즈는 연주가 중심의 장르입니다.
"나는 남들과 다르게 해골처럼 보이게끔 전투적으로 연주하지. 내가 연주하면 원작이 없어지네. 그냥 내가 되지."
작곡자의 작품은 그 연주를 해나가는 중요한 길라잡이면서 참고 대상일 뿐이었죠.
"분명히 낭만적이고 차분한 밤이었는데, 당신을 만나니"
"마음을 걷잡을 수 없소. 이런 밤은 낭만이 아니라 정열이 걸맞을 듯하오."
클래식 분야에서 보여주는 엄청난 권위는 없는 셈입니다.
"내가 작곡했는데 내 이름이 제일 안 보이오. 클래식 작곡가들이 그저 부럽소. 억울하면 연주를 해야겠지. 재즈에선."
이처럼 재즈의 혁신과 무게중심이 줄곧 연주가의 것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의 재즈 전통 아래에서는 고흐형 천재가 탄생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재즈 분야만 낭만적 신화의 관점에서 야박한 것은 아닙니다.
운동선수의 경우에도 당대에 즉각적으로 두각을 나타내지 않으면 애초에 수준급 경기에 투입될 수 없죠. 운동의 성격상 그 과정의 기록 자체가 천재를 증명하는 것이기에, 운동선수 역시 묻혀 있다가 후대에 발굴되는 천재의 신화는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재즈보다도 더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중 3회전 언제 할 거니? 벌써 5년째 촉망받는 꿈나무.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어. 정신 바짝 차려."
그래서 운동선수 중 불우한 천재로 조명받는 경우는 대개 그걸 성과로는 입증하지 못한 하나의 가능성(아쉬움)만을 언급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예술에서와 같이 '저주 받은 걸작' 같은 게 있을 리 없죠.
- 고흐와 김홍도의 이미지를 활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