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 고흐
음악은 미술과 달라서 현대에 이르기 전에는 음을 온전히 남길 수 없었습니다. 20세기 초반에나 유의미한 녹음이 가능했죠. 그것은 음반산업의 발전을 의미했고
음악의 폭넓은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위대한 유산은 악보로만 남았죠.
악보로 남지 않은 음악이란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문헌상으로 그 묘사를 들어야 하지만, 악보로 남기지 못할 만큼 위상이 낮은 음악은 사실상 잊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거의 민속음악 중에는 그런 음악이 많았을 겁니다. 심지어 파가니니같은 위대한 클래식 연주가 역시 묘사로만 그 연주법을 상상할 수 있죠.
그가 있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도무지
그의 음악을 상상할 순 없었죠. 그러니 그런 위치에 올라서 기록으로 언급된 적이 없는 수많은 음악가라면 아무리 뛰어나도 그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바깥에 있습니다.
그들도 지금의 예술가들처럼 꿈과 야심이 있었을 것이지만,
그건 그들의 가슴속에만 남았습니다. 그들로부터 이어지는 어떤 유산이 있더라도 거기에 그들의 흔적이 어떻게 얼마나 묻어있는지 가늠하기 어렵죠.
그들의 작품은 위치조차 알 수 없을 어떤 어렴풋한 유령같은 느낌으로만 남았습니다. 그건 우리네
삶의 흔적과도 같습니다. 그래도
그 수많은 바람들이 먼지처럼 사라진 건 아니어서 이름 모를 별빛처럼 우리가 즐기는 예술에 스며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지나 그 언어와 풍습, 열망의 실패와 성공의 기쁨이 남는 것처럼.
재즈에도 그런 인물들이 있습니다. 루이 암스트롱이 재즈의 시작으로 아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전설적인 연주자로 불리는 버디 볼든은 19세기 후반부터 활약하였습니다. 그의 연주가 어떤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도 주변에 있는 연주자들의 증언에 따라 그의 연주 테크닉은 이미 재즈에 근접해 있었고, 재즈의 유의미한 시초자로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벙크 존슨 등이 버디 볼든의 완벽한 기술을 재현하려고 했다지만 그게 어느 정도 버디 존슨과 닮아있는지는 정확히 모릅니다. 그래도 버디 볼든은 전설의 존재로 남아 있어 다행이죠. 사실 그가 완숙했다는 건, 그에 이르기 전에 돈을 벌기 위해 악기를 붙잡고 악보도 볼 줄 모른 채로 서툰 솜씨로 연주하던 생계 유지형 흑인 연주자들이 훨씬 많았다는 걸 의미하죠. 인정받을 분야가 있었다는 것이니까요. 버디 볼든이 전설로 불릴 수 있었다는 것은요.
버디 볼든 이전의 연주자들은 그렇게 증언되지 못한 채로 남아있지만, 그들의 열망은
재즈 연주자들을 비추어주는 별빛으로 남았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