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의 천재라도 보편적 주류로 편입되지 못한 경우가

[2.7]민규 & 천재론

by 희원이

[목차: 천재론] 57편 중 13번 원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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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민규(사회학 전공): 과학계의 천재라도 보편적 주류로 편입되지 못한 경우가 있다

과연 과학은 보편적 주류에만 속해야 하는 건가요? 실제로 코페르니쿠스가 당대에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나요? 지동설에 관해선 우리나라의 실학자도 주장했지만, 당대에는 주류에 속하지 못했잖아요. 과학에서도 중요한 사실을 뒤집는 혁명적인 발상이 열렬하게 환영받지는 못했죠.
그런데 과학의 경우 사실에 부합하는가 하는 것에 따라 대격변이 발생하기도 했어요. 진실이라고 철썩 같이 믿었던 것들이 틀렸다는 것이 밝혀지면 그동안 믿었던 체계가 전복되죠. 예술에선 이런 식의 전복이나 전격적인 교체가 있기 어려운데, 과학에서는 그게 가능하죠. 아주 엄격한 현대과학에서 웬만큼 진리를 파악했다고 자부하더라도, 과거의 과학처럼 어느 순간 완전히 진리가 뒤집힐 수도 있어요. 패러다임의 변화는 전면적으로 전체 가치 체계가 교체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변화의 징후가 있을 때조차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지 당대 사람들이 못 알아차리곤 하죠.


다시 말하자면, 패러다임이 전환될 때는 애초에 그 바뀌는 전환의 순간을 사회인은 눈치 채지 못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영영 변하지 않을 것처럼 느끼지만, 그 변화의 사건이 발생하면, 그때부턴 180도로 모든 게 바뀔 수도 있어요. 완전한 교체라면 애초에 이질적이기에 그러한 균열을 처음 대면했을 때는 터무니없게 느껴질 수도 있고요. 천동설을 믿던 사람들이 지동설을 들었을 때는 허무맹랑한 판타지처럼 들렸을지도 몰라요. 그러면 새로운 학설은 주류가 되기 전까지는 부당하게 저평가 받곤 하죠. 지동설이 대표적이에요.

이미 진리에 근접했다고 여겨질 만한 현대과학에서는 그런 일이 없을까요? 전 언제든 지금 믿는 것들이 허물어지는 순간이 온다고 믿죠. 물론 수용하는 사회와 학계의 품이 넓어지고 깊어져서 괴델의 불확정성의 원리라든지 양자역학의 충격도 다 빠른 시일 내에 흡수했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말할 것도 없고요.


하지만 여전히 현대과학에서조차 보편적 주류에서 벗어나 당대에 불운했던 천재들도 있었어요. 실제로 현대수학자였던 집합론의 권위자 칸토어도 그 엄격한 학문에서 자신의 이론을 널리 인정받지 못하고 말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는 불행한 삶을 살았죠. 다세계해석이란 개념을 주장한 휴 에버렛은 또 어떤가요? 다세계해석으로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하여 독특한 다중우주적 이론을 펼쳤다가 비웃음을 당했죠. 끝내 불행한 삶을 자살로 마감했죠. 아직 다중우주의 다양한 개념은 실험적으로 증명되지 못한 채 수식으로만 어떤 흔적이 남아있어요. 그것을 주류 과학의 중심에 놓기는 위험하지만 많은 과학자들이 다중우주론에 대한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하죠. 어쩌면 우주에 관한 시각이 완전히 흔들리면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뤄진다면 휴 에버렛이 엄청난 위상을 얻게 될지도 모르죠. 이미 과학사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고도 보이지만요.

또 이 지점에서도 튜링처럼 다른 보편적 주류의 요소 탓에 그 엉킴으로 피해를 본 천재가 있죠. 그는 암호학에서 이미 보편적 주류에 속했지만, 그의 첨단적 구상은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단초가 되기에 당시엔 아직 보편적 주류라 확정하지 못한 상태였죠. 그는 스스로 학문적 결실을 확정짓지 못하고 죽고 말죠. 동성애자라는 판정으로 화학적 거세를 당하는 과정에서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한입 베어 물고는 자살했다고 하죠. 최근에야 영국 정부가 그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고는 하지만, 돌이켜보면 안타까운 일이죠. 때로는 여러 이유로 여전히 천재는 보편적 주류에서 벗어난 영역에서 등장하기도 하죠.


지금은 너무도 확고해 보이는 존재들이라, 당시의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천재를 못 알아본 것으로 쉽게 오인하는데 사실 우리야말로 그 시대로 가면 그들에게 돌을 던질 사람일 수도 있어요. 당대에 천재를 과소평가한 이들은 대개 저명한 전문가들이었으니까요. 제가 그들보다 못하면 못했지 더 잘할 것 같지는 않거든요. 갑자기 2000년 전의 예수가 떠오르네요. 예수님을 못 알아보았던 이들은 당대에 존경받던 신학자들이었잖아요. 그만큼 천재를 알아보는 건 쉽지 않다는 거죠.

그건 어쩌면 패러다임 안에 사는 우리로선 당연한 결과일지 몰라요. 패러다임 바깥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거든요. 우리우주 바깥을 상상하는 게 여의치 않듯이요. 패러다임이 어떻게 바뀔지 사회의 기저에서 조용하게 움직이는 순간을 탐지해낼 만큼 기민한 사람은 드물어요. 그래서 그것을 민감하게 알아챈 천재들이 오해 받죠. 그들 중 새로운 패러다임의 가치와 내용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존재, 그 패러다임의 절대적 혁신의 공로자로서 패러다임의 천재로 부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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