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천재의 유형, 패러다임 천재

[3.0]민규 & 천재론

by 희원이

[목차: 천재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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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민규: 첫 번째 천재의 유형, 패러다임 천재

사실 천재가 어느 영역에 있냐는 질문은 무의미한 것 같아요. 어떤 분은 보편적 체계 바깥에서 세상을 타격하는 게 천재라고도 볼 거고, 또 어떤 분은 사실상 세상의 주요한 천재는 시스템 안에서 당대에 활약한다는 주장을 하겠죠.

그런데 일일이 따져 보면 그 어느 쪽이든 다 가능해요. 사람에 따라서 역사에 기여도가 달라지는 것이지 그 포지션이 어디에 속했는가에 따라 경중을 명확하게 나눠지는 것 같지는 않아요. 천재는 아무 데서나 태어난다고 생각하니, 저는 천재가 어떤 유형으로 나눠지는지 그것을 유형화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어요. 천재의 기여도와 고정된 이미지를 묘사하는 걸 떠나서, 우리가 천재를 어떤 유형과 특성 때문에 천재로 인지하는지 그것을 나름대로 세 가지로 나눠서 분류하는 편이죠.


우선 전에도 언급했던 것 같은데, 패러다임의 천재가 있어요. 대개 이 경우의 천재들이 역사적으로 거장으로 이름을 남기죠. 정도의 차이가 있을 텐데, 아주 큰 패러다임이 교체되는 시기에 등장하는 천재도 있고, 비교적 소소한 패러다임이 교체되는 것을 보여주는 천재도 있어요. 어느 쪽이든 사회와 문화의 변화에 주요한 혁신을 이룰 때 등장하는 천재 유형이에요. 남들의 이해를 받지 못하는 성향으로 고정관념처럼 그려지는 천재 유형이고요.

고흐는 후기 인상파의 도래를 알리지만 처음엔 이상하게 그림을 그리는 존재였어요. 당시 훈련된 화가들 중에선 그의 기본기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하기도 하니까요. 그건 인상파 화가들도 마찬가지였고, 마네의 경우엔 감상자들을 격분케 했었죠. 실력적으로 의심 받기 딱 좋아요. 이들은 반드시 우리가 보기에 뛰어난 기량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서, 자칫 하찮아 보일 수도 있어요. 에드가 앨런 포우, 폴 고갱, 허먼 멜빌, 아르튀르 랭보, 프란츠 카프카, 페르난도 페소아, 에밀리 디킨슨 등등 많은 유명한 거장들이 여기에 속하죠.

당시에 그들을 대변하는 패러다임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땐 그들을 제대로 평가할 가치 체계가 부족했어요. 기존의 체계로 들이대면 수준 미달처럼 보이기도 했고요. 시기에 맞지 않게 너무 빨리 와서 불운한 경우였죠.

제가 처음에 바스키아의 그림을 접했을 때라든지 리히텐슈타인의 만화 같은 그림, 마를린 먼로를 모델로 한 앤디 워홀의 작품을 보고도 이게 그림 맞나, 잘 그리는 건가 싶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저야 이론적 배경지식이 많지 않고, 감상의 폭이 좁아서 벌어진 오해라지만, 당시엔 전문가들도 그랬겠죠. 특히 뒤샹의 <샘>이란 오브제는 당혹스러울 정도였죠. 화장실 변기를 뒤엎어놓고 작품이라니요? 하기야 존 케이지의 <4분 33초>만 할까요? 처음엔 어이없어 웃음만 나왔죠. 에릭 사티가 <벡사시옹>에서 미니멀한 악구를 844번인가 연주한 것도 객기 같았죠. 이걸 절대로 즐길 수 없을 것이라 여겼고, 절대로 즐길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죠. 그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또 나라도 이건 하겠다 싶게 할 만큼 장난처럼 느껴졌어요. 너무 머리만 앞선 결과 예술이 자생적으로 수용자를 설득하기 위해 감성적인 면을 결핍했다는 의심도 지울 수 없었고요. 어쨌든 그건 패러다임을 뒤흔든 발상의 전환이 제대로 먹힌 경우였어요. 그다음 역사를 보면 이들을 지울 순 없겠죠.


과학계에서는 상대성 이론의 아인슈타인, 양자역학의 석학들, 과거 당시의 뉴튼, 지동설의 코페르니쿠스 등등 패러다임의 대대적인 교체로 비교적 눈에 잘 띄죠. 대개 현대로 올수록 난해해지는 경향이 있네요. 처음엔 거부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바로 수용되는 경우도 있어요. 아인슈타인과 양자역학의 이론물리학자들은 비교적 당시에 적극 수용된 경우니까요. 사례별로 다 제각각이니 그걸 스테레오타입화하긴 어려워요. 그보단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순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천재들이 있다는 정도로 말할 수 있죠. 그들은 반드시 기량 면에서 뛰어나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요. 때로는 기량 면에서 뒤진다기보다는 구식이라는 혐의에 묶인 경우도 있었어요. 그게 바흐, 렘브란트의 경우일 거예요. 그래서 유행이 지난 구식의 예술가 취급을 받으며 저평가당하다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환기될 때 그들을 재평가할 새로운 잣대를 비로소 찾게 된 것이죠. 바흐는 바로크 쇠퇴기에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기에 퇴물 장르의 예술가일 뿐이었다가 위대한 클래식 역사의 선봉장으로 재등장했고, 렘브란트 역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유럽의 2대 거장으로까지 고평가 받죠. 시민사회가 일반적인 개념이 되면서, 이것이 빨리 도래했던 17세기 네덜란드의 시민사회적 비전을 대표했던 렘브란트의 기법과 예술관은 비로소 정당한 평가를 받은 것이죠.


패러다임의 천재를 알아보려면 그의 예술관과 이론적 배경이 얼마나 독특하게 위치하는지 파악해봐야 하는데, 사실 그게 기존 관점에선 의심할 여지없이 하찮은 위치에 겹쳐져 있을 때도 많아요. 그래서 그 비범한 개성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죠. 마네의 경우처럼 여신의 상징을 지닌 위치에 윤락녀를 암시하는 존재가 같은 자세로 있다면, 당시 사회에선 아무리 받아들이려 해도 그건 정말 치욕스럽고 하찮은 발상으로 여겼겠죠. 그러한 새로운 접근에 익숙해진다면, 폭넓게 수용할 여력이 생기는 거죠. 어쩌면 패러다임의 천재란 뒤늦게 결과적으로 깨닫고 발견되는 존재들일 수도 있어요. 그들의 생전에 알맞게 새로운 패러다임이 사회적인 사건처럼 출현해준다면 그러한 천재들은 행운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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