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민규 & 천재론
[목차: 천재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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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민규: 세 번째 유형, 보편성의 천재
세 번째 유형은 보편성의 천재예요. 혁명성과 종합성으로 천재를 나눈다면 포착되기 어려운 유형이죠. 혁명성의 천재인 경우엔 패러다임의 천재로 볼 수 있겠어요. 종합성의 천재란 새로운 패러다임이 교체되고 안정되는 시점에 그동안 쏟아져 나왔던 여러 기술적 결과물을 능숙하게 종합하는 존재일 거예요. 패러다임의 성공적 교체를 완수하고 테크닉의 성과를 증명해주는 완숙한 정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주죠. 역시 초창기의 천재, 즉 패러다임의 천재가 이 역할을 병행하기도 하지만, 무수한 테크니컬 천재 중에서 누군가 대표성을 띠게 되면서 명장을 넘어 거장으로 불리고요. 때로는 테크니컬 천재로 불렸다가 지지부진하게 활동하고는 평이한 작품을 남기게 되는 경우도 많지만, 분명 테크니컬 천재는 그 분야의 주역이 될 가능성이 있죠. 고전주의 시대에 베토벤이 그렇죠. 그는 단순히 고전주의를 상징하는 것을 넘어서 낭만주의를 예비하는 천재였고, 동시에 낭만주의적 천재의 전형을 보여주는 교차로와 같은 인물이죠. 말이 길어졌는데 여하튼 보편성의 천재는 이런 요소에서 비껴나 있을 수 있어요. 당대에 인기가 많은 피아니스트였다는 점에서 베토벤도 속할 순 있지만요.
인기가 중요한 요소예요. 그래서 종종 보편성의 천재는 저평가당하죠. 예술이 고매한 이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상찬될 때, 대중적 예술을 할 경우 질 낮은 예술을 한다는 편견이 있을 때에는 더더욱 그랬죠. 이처럼 언뜻 하찮아 보이는 천재로 폄하되더라도, 분명 그건 돈을 버는 건 예술이 아니라는 반발심 때문에 생긴 것이지, 엄청난 인기를 끄는 경우가 많으니 하찮아 보이는 천재로 연결 짓기도 어려운 유형이죠. 보편적 주류에 속했는데, 학계의 기술적 수준을 고난도로 끌어올린 것에 초점을 맞춘 건 아니고, 정서적으로 우리를 확 잡아끄는 매력을 뜻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달리 보면 누군가에게 정서적으로 감동을 준다는 것도 또 다른 의미로는 고도의 테크닉적인 면일 수도 있어요. 다만 여기서는 정서적인 부분을 강조한다는 차원에서 보편성의 천재로 분류한 것이죠.
이게 대중음악이 주류가 된 현 시점에서는 무시할 수 없을 유형이죠. 예술의 고매한 천재를 우상시하는 경우라면 어쩐지 인기 가수나 대중음악 작곡가의 무게를 가볍게 보기도 하겠지만, 많은 사람에게 큰 감동을 주고 오랫동안 읊조리게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대단한 천재들도 너무 고난도의 차원에서 몇몇만이 알아들을 소리만 하죠. 문학에서도 고전문학은 아무도 읽어본 적이 없는 추천 도서란 우스갯소리가 있잖아요.
보편성의 천재는 그런 면에서 확실히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을 기준으로 둘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 세계적인 팝스타 비틀즈를 떠올려볼게요. 이미 60년대에 오빠부대를 이끌고 다니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죠. 판매량과 빌보드 차트 순위, 공연 관객 동원 능력 등으로 이미 객관적인 숫자로 그들의 인기는 증명되었어요. 그것만으로도 이미 보편성의 천재라 할 만해요.
그런데 비틀즈만큼은 아니더라도 각국에서 인기 있는 보편성의 천재도 있을 테고, 비틀즈 말고 비록 그들의 절반도 안 되는 인기를 누린다고 해서 그들이 보편성의 천재가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죠. 객관적인 판매량만 가지고 누가 더 보편적인가를 따지자니 너무 산술적이고 투박하단 생각도 들거든요. 오래 전 국민가요라서 어르신의 마음속에 깊이 담긴 곡이지만, 지금은 인기가 없는 곡이라면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그 기준은 유동적일 것 같아요.
다만 정서적인 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오랫동안 지속적이었다면 더 대단하겠죠. 비틀즈는 그런 면에 부합하고요. 보편성이 지속적이라는 건 두 가지 현상으로 드러나는데, 하나는 투박하고 간접 증거라고 해야겠지만 그래도 판매량의 지속으로 보는 편이 합리적이죠. 또 지속적인 보편성이 비틀즈처럼 자기 범위에서만 머물지 않고 후대에 영향을 주어서 비틀즈적인 선율이 수많은 밴드를 통해서 우리의 기억에 스며들었다고 한다면, 정서적 혁신에서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이건 좀 모호하지만 이걸 합의할 정도라면 그들은 패러다임의 천재 영역에도 속하게 되죠.
고난도 테크닉과는 다른 관점에서 적정한 테크닉을 적용할 줄 아는 천재 유형이 우리 시대의 팝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죠. 실제로 대중음악사에서 명반을 고를 때 예술적 실험을 따지기도 하지만, 알앤비 음악처럼 후대에 정서적으로 영향을 끼친 장르도 중요하게 다루니까요. 아, 이쯤 되면 보편성에 대한 논의에 적정한 테크닉의 적용 능력뿐 아니라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정서적 혁신에도 기여하는 거죠. 보편성의 천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