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동호 & 천재론3
[목차: 천재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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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동호: 연령대 의무가 촘촘히 들어 찬,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
민규 씨 인터뷰 영상에서 회생 가능성이란 표현을 들으니 제가 교육에 대해 몽상하던 게 겹쳤어요. 회생이 불가능하니 하나의 선택을 할 때 안전지향적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더구나 실패했을 때 공동체에서 그가 연령대별 의무를 위반했다고 느꼈을 때 싸늘해질 시선까지 생각한다면요. 아빠로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가정 부양의 의무를 다하여야 하는데, 달갑지 않은 모험을 하면서 실패할 꿈을 좇는다면, 엉뚱한 짓을 벌이다가 망했다고 여기겠죠. 그리고 점점 가세는 기울 거고요. 그걸 회복하고 낭비된 시간을 상쇄하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여기겠죠. 엄마가 전업주부라면 애 다 키우고, 정 하고 싶으면 그때 가서 글이나 쓰라는 식으로 말하죠. 무엇이든 우리가 부여받은 의무 다음으로 취급받기에 함부로 사회에서 덜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에 매진할 수 없어요. 명분이 필요하죠. 유명해져서 큰돈을 버는 일에 가깝고 확률이 높을수록 받아들여진다고 해야 할까요.
그건 사람이 사는 데에 당연한 것 같지만, 한국 사회처럼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빡빡한 곳에서 더 그런 것 같아요. ‘다운그레이드’의 각오, 회생이 어려운 구조에서도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면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이미 상당히 마음이 무거운 상태일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듯 삶을 수행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소화했다고 해야 할까요? 어쨌든 중간에 삐끗하면 애매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공부를 잘하는 시점도 고3 때가 좋잖아요. 다른 때에 회복하려고 하기보다 그냥 요구되는 시점에 바짝 잘해서 서울대를 간다면 그다음부턴 아무래도 유리한 지점을 선점하니까요. 학력 콤플렉스를 극복하려고 줄기차게 노력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죠. 예전보다 학력 차별이 줄었다고 해도, 서울대 출신이라는 건 여전히 장점이면 장점이지 단점은 아니니까요. 그게 고등학교 시절의 성적만으로 결정된 뒤 수십 년의 꼬리표로 따라붙죠. 그러니 28세에 뒤늦게 깨닫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보단 17세에서 19세 때 열심히 공부하는 게 효율적인 사회에요.
그게 너무 답답하게 느껴지죠. 고등학교 시절에는 3년 내내 내신 관리를 하면서 수능도 잘 보고, 학종 점수를 관리하려면 스펙도 쌓아야 해요. 비교과 활동이요. 처음엔 분명 학생부종합, 학생부교과, 수시논술, 특례전형, 정시 등등 다양한 방식으로 입시 전략을 짤 수 있게 해놓았는데, 모든 전형의 정원은 줄어들다 보니 학생들 입장에서도 일말의 가능성을 붙잡기 위해 모든 전형을 챙겨야 하는 골치 아픈 상황이 되어 버렸죠. 이게 참 대학을 안 가도 되는 분위기라면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선택해 노력해도 될 테고 그러면 심리적으로 쫓기지 않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반드시 대학에 가야 한다는 획일적인 분위기, 모두가 서울대를 가고 싶어 하는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든 확률을 높이려고 몸부림칠 수밖에 없죠.
서울대를 안 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있다고요? (웃음) 그냥 성적이 안 되어서 마음속에서 생각을 접은 게 맞지 않을까요? 만일 서울대를 그냥 들어갈 수 있으니 선택하라고 하면 마다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서울대를 들어가는 순간 죽을 운명을 타고 난 게 아니라면요. (웃음)
한국의 학생들이라면 어떤 대학이라도 걸치려는 게 일반적이죠. 서열을 없애려고 그렇게 노력했지만 명문대학의 서열은 여전히 분명하죠. 그나마 중위권 대학부터 조금 서열이 애매해진 게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입시제도 덕분이라고 해야 하니, 좀 씁쓸하긴 해요. 도무지 알 수 없을 지나치게 다양한 입시 전형 탓에 어느 대학이 더 나은지 못 알아채는 것뿐이니까요. 예전에 입학 점수 커트라인으로 모든 게 서열화한 것에 비해 나아졌지만, 그렇게 큰 소모전을 펼쳐서 얻은 성과로는 조금 초라한 거죠. 서열화는 여전하니까요.
그 정도로 사람들이 대학에 가야 한다는 열망은 확고하죠. 그 덕분에 압도적으로 큰 비중의 학생들이 대학을 거치는 수준이라서, 대학이 의무교육이 아닐까 싶게 되었어요. 고학력 인플레이션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만큼 수준도 높아졌다고 할 수 있죠. 비판하는 쪽에서는 무늬만 대학생인 채 지성의 수준이 낙후되었다고 한탄하는 경우도 있다지만요. 왜 대학을 가야 하는지 모른 채로 기능적인 공부에만 매진하다 보니, 그런 비판을 듣는 것이겠죠. 천재는 고사하고 수재를 키우는 데에 과연 적절한 방식으로 교육 프로그램이 이루어진 것인지 고민하기도 해요.
물론 양적으로 압도적으로 들이밀고 나면 비율은 떨어지겠지만 그중 수재가 나오기는 나올 거예요. 효과가 아주 없다는 건 아니에요. 더 나은 방식이 있을 것 같다는 것뿐이죠.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올 거라는 예상까지 고려하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죠.
하지만 여전히 사회는 완고해요. 이미 정해진 틀을 바꾸려면 중대한 변화의 압박이 있어야 하는데, 웬만해선 사회도 관성이 있죠. 개인의 입장에선 이런 대세를 거스를 수 없어요. 서태지처럼 고등학교를 자퇴하는 건 여전히 특단의 선택이죠. 요즘 특목고를 다니며 내신 때문에 전략적으로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본 뒤 서울대를 노리는 것과는 분명 결이 다른 선택이에요. 우리 사회에선 과감했다가 낭패를 보기 십상이에요. 서태지는 결과론적으로 성공을 했으니 망정이지, 실패를 했다면 그 미담 자체가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로만 묻혔겠죠. 실패한 미담은 별 매력이 없거든요. 우리나라에선 적어도 그렇죠.
어쩌면 한국 사회에선 대학 입학 때에 상당히 많은 부분이 정해지고, 대학 졸업과 첫 직장을 잡는 시기에 거의 모든 게 정해진다고 봐야죠. 그리고 돈을 많이 벌어서 회복하려는 반등을 시도하려고 해도, 결혼과 함께 위험부담이 많은 부분은 포기하게 돼요. 자녀들이 생기면 이제 안정적으로 지금 상황을 굳히기라도 해야죠. 안 그러면 후퇴하기에, 후퇴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인 삶을 산다고 해야 할까요? 좋아하는 것을 찾는 삶이라기보다는 남들이 기본이라고 여기는 삶을 유지하는 데에 급급하죠. 원하는 삶이란 알고 보니 욕심이요, 사치인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