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토양이 창의성 친화적으로 개선하려면

[2.1]민규 & 천재론3.1

by 희원이

[목차: 천재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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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 인물의 관점 & 소개글」 보시려면 → 목차 상세보기





[2.1] 민규: 문화적 토양이 창의성 친화적으로 개선하려면

물론 제도적인 투자에 대한 상상은 제 한계가 반영되었을 거예요. 그것밖에 떠오르는 게 없더라고요. 동호 씨의 인터뷰 영상을 보니, 제가 언급했던 회생 가능성을 인용했던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와 함께 애초에 적극적으로 발굴하려는 노력을 선행해야 한다고 보죠. 어차피 천재란 신화에 붙들려 그들이 어떤 대단한 위용을 지니고 우리가 범접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등장한다고 보지 않거든요. 그들도 어차피 사회인이니까요. 조금 더 민감하게 사회에서 수요가 있을 만한 요소, 변화의 틈새를 빨리 알아채는 것뿐이에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사회의 어느 지점이 들썩이고 있지만, 기득권이 못 알아챈 것이라 할 수도 있고요. 심지어 이미 모두가 합의한 변화일 수도 있겠죠. 어느 시점일지 정확히 확신만 못했는데 천재의 등장을 기점으로 시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겠죠.


경제적인 요건에 관해서는 외부적인 한계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해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세계를 주도할 수도 있다지만, 그것에도 한계가 있어요. 군사 분야처럼 애초에 선점하는 미국과의 신경전이 있을 테니까요. 건드리지 못할 부분이 있다는 거죠.

을의 입장으로서 조금 더 유리한 고지를 얻으려는 것일 테니, 시도를 안 하는 것보단 낫지만, 이러한 한계를 인지한다면 결국 내수시장을 키우는 노력이 근본적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그게 우리로선 만만치 않죠. 영토 등의 여러 사항을 고려할 때 분명한 한계점이 있어요. 그 안에서 다양하게 산업이 분화해서 충분한 수요를 확보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렵죠. 설령 그런 식으로 진행한다고 해도, 곧 몇몇의 가치로 집중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속 성장을 하던 걸 감안하면 고부가가치 산업에 필요한 가치를 의미하겠죠. 그만큼 천재라는 사람들의 유형이 또 정해지고 말겠죠.


하지만 문화적 토양이 창의성 친화적이라면 조금 더 외진 영역에서 이질적인 가치로 기득권에 신선한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거예요. 오래도록 사회에 내재된 채 발언자를 기다리던 질문이죠. 그것을 찾아내서 의미 있게 들어 올린 자겠죠. 천재란.

물론 사회는 마음 내키는 대로 다른 사람을 천재로 호명할 수도 있겠지만, 대개는 도전적인 질문을 던져서 사회를 환기하는 자들을 불러 세워서는 변화의 주역으로 삼아요. 인물은 사람들에게 변화의 사건을 인지하는 데에 효과적인 상징물이니까요.


문화적 토양을 개선하려면 일단 그 방향성을 되짚어보면서, 개방적이고 단기성과에 집착하지 않는 게 좋겠죠. 자본주의 사회이자 다문화에 인색한 우리 사회는 아직 선진국으로서 부족한 점이 많아요. 요즘 문화상품이 나가면서 해외에 우리 사정이 노출만 많이 되잖아요. 특히 인종차별의 낡은 시선을 지적받곤 하죠.

게다가 지나치게 유행에 민감하고 참을성이 적어서 휩쓸리는 문화이기도 하죠. 조금은 여유로웠으면 해요. 큰 안목을 지닌 사회라면 좋을 거고요. 백년지대계란 말이 무색하죠. 1년도 기다리기 어려운 속도로 흐르잖아요.

이런 문화적 토양을 바꾸는 건 쉽지 않겠죠. 갑자기 바꾸자고 한다고 딱 바뀌는 것도 아니고요. 제도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 우선적일 거고 앞서도 언급했다시피, 더 많은 제도로 천재의 가능성을 공인해준다면 아무래도 사람들은 틀에 영향을 받으니 창의적인 인재들이 활동하면서 자신이 천재라는 걸 증명하는 것에 도움은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더 본질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교육을 통해서 점진적인 개선이 필요하겠죠. 나이대별로 공동체에서 부여한 의무나 역할이 있다는 것, 이런 것을 쉽사리 바꾸긴 어렵죠. 어디서부터 바꾸어야 할까요? 그래서 제도적으로 회생이 언제든 가능해지는, 동호 씨의 표현대로라면 패자부활전이 많다면, 도전에 관대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도 유교로 뿌리내린 공동체주의, 즉 개개인에게 부여되는 역할과 관련 의무에 관한 인식이 쉽사리 씻겨나가진 않을 거예요.

그래서 사상가들은 새삼 대단해요. 그것이 옳든 그르든 일단 채택이 되면 1000년 이상을 일상에 깊이 영향을 끼치기도 하니까요. 천재가 되고 싶다는 엉뚱한 욕망에 사로잡혔다면 예술을 할 게 아니라 사상가에 도전하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요. (웃음)

하기야 천재에 도전하는 것만큼 승산 적고 비효율적인 도전도 없죠. 자기가 뭔가를 어쩔 수 없이 붙들면, 혹은 붙들었다고 착각하면, 그도 아니면 신에게 계시라도 들었을 때, 그런 비합리적인 모험을 시작하는 걸까요? 모를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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