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민규 & 천재론3.1
[목차: 천재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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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민규: 창의성 교육이란 시민 의식을 고양하는 협동 교육
네, 저는 교육을 이원화해야 한다고 봐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창의성 활동이라고 해야 할까요? 동시에 협동 교육을 해야 한다고 봐요. 핀란드 교육을 떠올리게 돼요. 그러다가 대학교에 와서는 고난도의 테크닉 공부에 집중하는 게 좋다고 봐요. 사회의 축적된 역량을 자기 전공에서 확실하게 연마할 때 그것을 통하여 다시금 창의성을 꾀하는 게 가능해지니까요. 다만 고등학교 때의 창의성이란 사실 시민으로서 필요한 사회적 감수성을 기르는 것과 유사해요.
창의성 공부란 사실 사회를 알아가는 교육, 협동 교육, 연대 교육, 통찰력 교육이라고 하는 편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가 경쟁하지 않고도 공존하며 더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가는 공동체 교육이었으면 하죠. 그걸 위한 창의성일 때 더 의미 있는 거고요. 창의성이 타인에게 세심하고 배려심 있게 뻗을 때 비로소 가치가 있는 거니까요. 그렇게 믿어요.
삭막해 보이는 사회에서도 희망적인 미래를 발견해내는 교육이길 바라요. 가급적 단일한 평가를 피하는 교육이면 좋겠고요. 순위를 서열화하지 않는 교육이었으면 하죠. 희한한 생각을 인정하는 교육이었으면 해요. 반사회적으로 희한하면 안 되겠지만, 어떤 게 반사회적인지도 물을 수 있는 교육일 수 있겠죠. 어느 선에서는요. 그렇게 사회의 어두운 면을 넘어서 밝은 면까지도 깊이 있게 이해하게 하는 교육이요. 그래야 사회의 틈새가 보일 테니까요. 거기서 창의성이 아름답게 샘솟는 거니까요.
그런 면에서 고등학교 때까지의 창의성 교육이란 대개는 시민 의식을 고양하는 교육이라고 해야 할까요? 창의성의 방향은 어느 정도 정해주되 그 내용에는 재량을 허용하고 상상력을 기대하는 교육이랄까요? 자신이 속한 사회를 이해하고 그 사회에 속한 자신의 할 일을 이해하는 교육이니까요. 그래야 그 틈에서 질문이 생기고, 틈새에서 의미 있는 아이디어를 찾을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그것이 치열해지면 결국 시민 의식과 민주주의의 발전에 필요한 틈새를 발견할 수도 있고, 비로소 발전적인 창의성이 발현된다고 보죠. 우리에게 필요한 창의성이란 반사회성은 아닐 테고, 그런 건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하겠죠. 우리가 공교육을 실시한다면 그 창의성의 뿌리는 시민의 올바른 가치 실현과 관련이 있어야 할 거예요. 그걸 토대로 해도 충분히 다양하게 도발적으로 뻗어나가서 사회에서 미처 포착하지 못한 미개발 지점을 찾아내서는 그 영역에서 뿌리를 내리는 모험가들도 생길 거고요. 그들 중 누군가는, 사회에서 그 영역을 공식적으로 사회의 수면 위로 드러내려 할 때 천재로 호출될 수도 있겠죠.
네? 아, 이해해요. 언뜻 협동과 연대 교육이 천재 탄생과 관련이 있을까 싶지만, 저는 협동과 연대 교육이 천재 탄생에 필요하다고 봐요. 교육 체계가 더 잘 갖춰져서 사회가 요구하는 천재가 무엇인지, 어떤 고민을 했을 때 세계적인 흐름보다 앞서는 것인지 아이들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보죠. 외국에선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있다면 뭔가 애매하죠. 남성작가들이 오래 전 예술가의 자기 연민과 과도한 자부심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대던 걸 지금 시절에도 하고 있다면 세계인의 감성을 주도하기란 어렵겠죠.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경쟁 교육이 강박적이고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서 경쟁자를 이기면 된다는 거잖아요. 그중에서 돋보이는 사람이 천재라면 그중에 반사회적이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왜곡된 능력주의자들이 양산될 수도 있겠죠. 천재는 그 정점을 찍는 괴물일 수도 있어요. 세상을 앞서갈 사람이라면 더더욱 윤리 의식, 연대와 협동의 미덕을 깨달아야 해요. 대부분의 천재가 괴팍해보여도 사이코패스는 아니었어요. 대인 관계에 미숙했을 뿐이죠. 사이코패스가 일으키는 변화라는 게 있더라도 그게 과연 인간중심주의적일까요? 그런 천재들에게 우린 천재란 상찬을 하진 않죠. 괴물이라고 부르긴 해도요.
더구나 어차피 천재란 사회가 호출하는 존재죠. 필요한 지점에서 사회가 원하는 존재여야 한다고 믿어요. 사회는 독불장군의 이기심보다는 협동과 연대를 선호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죠. 어차피 천재를 특정 짓는 것도 사회의 힘이고 역량일 거예요. 천재란 사회하기 나름인 거죠. 그러니 사회적 인간이 되는 게 우선이에요. 사회적이라고 해서 굴종하는 것만 사회가 원하는 건 아니니까요. 사회가 생리적으로 잘 굴러가려면 반드시 타격하는 존재도 필요한 거니까요. 천재는 이러한 사회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긍정적인 진보를 믿을 때 거기서 유의미한 균열 지점을 발견해내죠. 수많은 천재 후보들 중 일부가 치열하게 버텨낸 뒤, 사회의 호출을 받고 영예롭게 호명되는 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