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의 존재이자 해방의 존재이며 위대한 안내자

[1.0]동호 & 천재론3.2

by 희원이

[목차: 천재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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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의 덕목

[1.0] 동호: 일탈의 존재이자 해방의 존재이며 위대한 안내자

이제 마지막 화제인가요? 벌써 그렇게 되었네요. 천재의 덕목이라고 하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긴 하지만요. 하기야 원래 인생이란 돌고 도는 거죠. (웃음)

그런데 저는 처음에 인터뷰할 때나 지금이나 단순하게 천재를 상상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흔하게 생각하던 낭만주의 시대의 전형적인 불굴의 천재말이에요. 예측 불가능성의 천재, 비범한 광기의 난해한 천재말이에요. 그러면서 아주 뛰어난 작품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존재이기도 하죠. 그게 당대에 이뤄진다면 더더욱 좋겠지만, 사실 저는 비범해보이는 천재보다는 위험해보이는 천재, 그보다 더 나아가 하찮아보이는 천재를 더 쳐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죠. 그들은 일탈의 존재이자 해방의 존재이며 위대한 안내자라고 생각하죠. 우리가 속해서 우리가 설계한 주류의 시스템조차 그 전체의 모양새를 보지 못하는데 그들은 그것을 증언해 주죠. 또 시스템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고 우리를 이끌어주니까요. 그 방향으로요. 너무 빨리 와서 우리가 미처 그들을 제대로 판단할 체계와 가치를 인지하지 못해서 그들을 하찮게 여기기도 하는데, 그러한 위험과 멸시를 감수하면서까지 멀리 떠났다가 돌아오는 존재를 우리는 좀 호들갑스럽게 대우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비범해보이는 천재들도 훌륭한 존재들이지만, 체제의 위험과 가능성을 더 깊이 있게 보여줄 가능성이 높은 존재들이 바로 하찮아보이는 천재들이라고 믿죠.

그래서 똑같이 대단한 존재면서도 하찮아보이는 천재들에게 가중치를 두는 거고요. 너무 멀리 나아가버려서 실패할 확률도 높고, 실제로 오랜 세월 묻혀 지내기도 하니까요. 물론 저는 이러한 천재들이 반드시 발굴될 것이라고 믿는 편이니, 좀 낭만적인 생각을 한다고 할까요? 실제로는 여전히 묻혀서 우리가 몰라보는 존재도 있지 않을까요? 또 어떤 이는 끝내 천재로 상찬 받지 못하고 영원히 무명의 존재로 안식하고 있을 거고요. 민규 씨의 말대로라면 패러다임의 천재로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드시 성공하는 건 아니겠죠. 이들은 다른 천재들의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름은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지나간 흔적이 끝내는 성공할 천재들의 자양분이 되어줄 것으로 믿죠. 보들레르가 포우를 보고 자신이 하려는 것을 이미 포우가 다 했다면서 그의 작품 번역에 열성을 쏟았듯이요.


이런 걸 보면 천재란 사실 광기의 존재만은 아니죠. ‘광기’란 수식어는 주류에 속한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 엉뚱하게 세상의 인정욕구에서 멀어지는 것 같은 이들을 보는 당혹스러움을 표현한 게 아닐까 싶어요.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면 어느 정도 주파수를 맞추고 있어야 하는데, 자기가 고집하는 것으로 인정을 받겠다면서 사실상 불가능의 영역으로 탈주해버린 존재 같거든요. 그러니 좀 돌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죠. 멍청하다고 보거나요. 실제로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서 자기만의 규칙을 자기만의 표현을 해대는 걸 보고, 인내심을 지니고 봐줄 사람은 적을 거예요.

그럼에도 하찮아보이는 천재 역시 굉장히 성실하다고 생각해요. 그 광기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어요. 어쩌면 어처구니없이 오만하다거나 싸움닭이거나 반사회적이거나 하다는 단편적인 이미지는 그들이 그들을 세상으로부터 지켜내는 과정에서 잘못 파생된 결과물 아니었을까요? 때로는 파가니니나 로버트 존슨처럼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식으로, 터무니없는 일화로 유통되며 마치 진실처럼 확증되기도 했겠죠. 실제로 광기에 빠진 것일 수도 있지만, 그냥 그들의 가치 체계가 달라서 생긴 불편한 긴장감이라 해야 할까요? 그들을 지극히 정상적인 정서를 지닌 사람으로 가정한다면, 사실 그들은 일반인도 본받을 만한 두 가지 미덕을 지닌 것 같아요.

우선 자기 개성으로 인정받겠다는 담대한 도전 정신을 들 수 있어요. 고립과 파멸도 마다하지 않는 무모함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요. 아마도 여기서 적당한 수준에서만 본받겠죠. 정말로 멀리까지 탈주해버리는 사람들은 없겠죠. 그건 곧 사회적인 고립을 의미하니까요.

둘째, 천재가 하찮아보일 만큼 확고하게 탈주하려면, 이것을 위해 선명한 통찰의 결과를 얻었을 거예요. 뜻밖에 사회의 현상을 명민하게 관찰하고 거기서 모순을 파악해내며 균열의 바깥을 보는 통찰력이 있었다는 거죠.

그들이라고 처음부터 자멸의 길인 걸 알고 탈주했을까요? 그러지는 않았을 거예요. 보편적인 사고를 하고 인정욕구를 지녔다면요. 그들은 어쩌면 당대에 성공할 현실 감각은 조금 부족했던 아닐까 싶어요. 너무 본질에 가닿으려는 데에 집중하다 보니, 그런 것과 상관없이 사람 간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영역도 있다는 것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아닐까요? 예를 들어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대인 관계에선 그것 말고도 다른 요소로 적절한 인재가 선발되기도 하잖아요. 혹은 그들도 어느 정도 현실적인 감각을 지녔는데 좀 오판한 것일 수도 있고요. 자신이 찾아낸 부분을 깊이 파악해내고 충분한 성과를 얻고 나면 그것으로 세상을 설득하는 건 쉽다고 오판한 것은 아닐까요? 그들은 때로는 자기보다 앞선 자들을 살피는 성실함도 있어요. 자신보다 앞서 갔다가 실패한 선구자들의 행보를 추적하는 성실함까지 갖추었다면, 자신이 택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곧 세상을 설득할 수 있다고 섣불리 낙관한 것은 아닐까요? 혹은 그마저 생각할 겨를 없이 그냥 우연히 자기의 경험 안에서 무언가를 했는데, 그냥 완성이 되어버려서 딱히 다른 고민을 하지도 못한, 고립된 특수 경험의 서식지, 이를테면 갈라파고스의 존재일 수도 있고요.

어쩐지 조금만 가면 더 큰 물고기를 잡을 것 같은 직감이 들었기에 발을 잘못 담갔다가, 나중에 고립되어서는 오도 가도 못하고 크게 후회하며 인생을 끝마쳤을 수도 있겠죠. 바로 비합리적인 대인 관계에서 생기는 텃세 같은 것을 고려치 못한 실수였죠. 이러한 오판을 사람들이 선호하지는 않겠지만, 사회에 대한 명민한 통찰력과 그것의 사회 수용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 그게 사람들이 일정 부분 본받고자 하는 것이겠죠. 이쯤 말하고 나니 그들의 저돌적 도전 정신도 천재들의 순진한 오판일 수는 있겠어요. (웃음)


그러한 오판 탓에 위험해보이거나 하찮아보이는 천재들은 고통을 겪죠. 그러다가 알코올이나 마약이란 사회적 병폐의 마수에 걸려든 것이겠죠. 원래부터 그런 유전 인자를 가졌다거나 본질적인 게 아니라는 의미죠. 고집불통으로 몰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가난을 겪거나 극도의 외로움을 겪다가, 건강을 돌보지 못할 어떤 상황으로 몰리죠. 그리고 그중에서 누군가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거죠.

그건 어쩌면 우리가 그들을 빨리 알아채지 못해도 되는 사회적 관성 탓에 생기는 한계일 거예요. 빨리 알아채야 한다고 하지만, 솔직히 저라도 그러기는 어렵다고 말씀드린 적 있을 거예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렵거나, 전혀 좋다고 생각하지 않은 전복적 가치를 들고 나온다면, 우리가 과연 그를 멸시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도 멸시한 이력도 있는데 말이죠. 당대의 사람들이란 그렇죠. 오히려 지식인이라면 자기 가치가 확고하고 그것으로 명성을 얻었으므로 더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럼에도 제때에 알아채려는 노력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건 어쩌면 천재를 위한 것이 아닐 거예요. 우리가 정말로 새로운 것을 진지하게 검토할 역량이 있는가 하는 것에 관한 문제니까요. 딱딱해진 사회의 기득권으로서 새로운 가능성에 성벽을 세우고, 시들고 말라비틀어진 진부한 가치를 붙들고, 천재가 없다고 일갈해봤자 그게 무슨 득이 있을까요? 천재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보단, 변화하고 싶지 않다는 감정적 반응일 수도 있죠. 또 때로는 무던하게 끝까지 무심하게 새로운 것들이 죽어나가길 기다리기도 하죠. 순진한 모든 시도를 비웃으면서요.

그게 당장의 이익 관계를 지키는 데에는 도움이 되겠죠. 일부가 마치 진리인 양, 사실은 그 대신 누군가가 만들어준 세계관을 당당하게 붙들고 절대 진리인 것처럼 행사하는 것이겠지만요. 사실 이러한 분위기를 누구도 쉽사리 거역하지 못해요. 그래서 천재라는 돌출적인 사람들이 매력적인 거겠죠. 사장 앞에서 사표를 빡, 얼굴에 던지는 사람이니까요. 사장으로선 어이없고 그가 하찮게 보여 헛웃음이 나겠지만요. 때론 직원들로선 속으로 찬탄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가 회사의 비리를 고발할까 봐 위험인자로 분류하고, 적당한 회유책을 준비하기도 할 거고요. 천재란 아주 피곤한 존재이기도 하죠.

전 천재가 무척 매력적인 존재라는 생각을 하지만, 어쩌면 제가 천재가 될 수 없기 때문일까요, 언제 올지 모를 그들을 기다린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는 생각해요. 그들을 낭만적인 모습으로 그리지만, 낭만은 현실을 점령할 순 없어요. 결국 우리 대부분은 천재가 아닌 채로 살아가죠. 그게 이 사회를 채우는 대부분의 내용이에요. 다만 천재라는 이들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가능성, 그 미래적 도전의 열기를 식히지만 않았으면 하는 것이죠. 천재는 미지의 영감을 주는 존재잖아요. 그건 곧 내가 살 미래의 모습이 될 수도 있는 거죠. 그들이 없더라도 사람들은 어떤 알 수 없을 방향을 상상하잖아요. 그걸 조금 더 명민하고 날카롭게 우리에게 알려줄 뿐이죠. 그들을 알아채는 건 우리의 숨은 열망을 알아채는 것일 수도 있다는 의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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