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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천재병, 무병으로서의 글병

[1.1]동호 & 천재론3.2

by 희원이

[목차: 천재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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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동호: 오만한 천재병, 무병으로서의 글병

천재병이라고 아시죠? 예술을 하려는 사람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성향인 건가? 남들보다 잘생긴 줄 아는 사람을 왕자병이라 하고, 누구나 자기를 좋아한다고 하면 도끼병이라고 하잖아요. 그것처럼 자기가 똑똑한 줄 착각하면 천재병이라고 했어요.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요. 여기서 천재는 좀 남들보다 놀면서도 문제를 잘 맞혀서 성적이 좋을 때 그런 식으로 불렀는데, 그러다 보니 허세를 자랑하고 싶은 애들은 밖에서는 공부 안 하는 척하고 집에 가서 새벽까지 공부한다는 우스개소리도 있었죠. 실제로 그런 애들이 있었는지는 몰라요. 피곤해서 그럴 수 있을까요? (웃음) 설령 있더라도 수업 시간에 졸면 오히려 손해일 테니까요. 하기야 어쩌다 한두 번 그런 이벤트를 벌일 수는 있겠지만요.

그러다가 부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으로 옮겨간다고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그 사이에 사실 천재병의 변종이랄까요? 고흐병에도 걸릴 수 있어요. 글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카프카병이라고 부르나요? 그냥 글병으로 부를 수도 있고, 예술병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예술병은 예술가랍시고 엄청 별난 짓을 하고 다녀도 용인될 줄 알아서 오만방자하게 군다는 뜻도 있는 듯해요. 예전에 시인도 그렇고 화가도 그렇고 안하무인격으로 굴면서 왕처럼 군림하려던 웃지 못할 일화들이 지망생 사이에 있잖아요. 그것과는 좀 다른 거죠.


아무래도 지망생 사이에서 글병이라고 하면 무병 같은 거죠. 현실이 허락하지 않아도 글을 쓰지 않으면 아파서 사회 생활을 잘 못하는 그런 거요. 카프카병에 가깝죠. 미술에선 고흐병이라고 이름을 붙여봤죠. 그냥 테크니컬하게 똑똑한 걸로 착각하는 천재병과 달리, 이건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할 때 자신의 운명처럼 예술을 수용하는 과정이니까요. 내가 못함에도 예술을 할 수밖에 없다는, 그래서 예술신을 받아야 하는 운명에 처해버린 일종의 무병인데, 그러면서도 내심 아무도 자기의 진가를 몰라주는 것일 수도 있다는 일말의 미련이 남아있기도 하죠. 그래서 고흐병이라고 저는 불렀어요. 고흐가 테오에게 보냈던 편지가 떠올라서 그랬죠.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고흐는 자신을 남들이 평가하는 표현을 인용하면서 사회의 열패자, 무능력자, 한심해보이는 사람 안에 어떤 게 들어있었는지 보여주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잖아요. 애잔하게 느껴졌는데, 당시 제가 어쩌면 그림으로 성공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자괴감에 빠져있어서 고흐 관련 책을 읽고 애틋하게 느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자신도 모르게 나의 천재성이 허물어지고 있다고 느꼈던 것일까요? 말하고 보니 화끈거리기도 해요. (웃음)


지금은 사실 제가 한 사람의 시민으로 운이 닿아서 그림을 계속 그리게 된다면 좋겠어요. 물론 그게 유명한 프로 작가가 되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것도 깨달아서 다른 직종을 염두에 두기도 하지만요. 마음 같아서는 미술 교사로 재직하면서 제 그림을 틈틈이 그릴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게 명작이 되지 못하더라도 제게는 가치가 있을 테니까요. 제 마음속에도 그게 대단치 않은 모습이더라도 저만의 세계가 있다고 믿거든요. 또 가끔은 몽상을 하기도 하죠. 그 세계의 모습은 알래스카와 같다고요. 그런 엉뚱한 몽상 탓에 요즘엔 추운 풍경을 자주 그리게 되요. 시간이 나면 러시아나 핀란드로 여행을 떠나서 한두 달 있다가 오기도 하고요.

아, 알래스카요? 19세기에 그 땅은 쓸모없는 땅 취급 받았잖아요. 원래 러시아 땅이었죠. 예카테리나 2세 때 미국에 헐값에 팔았다죠? 사실 그걸 헐값에 매입할 때 국민들의 반대가 심했다죠. 매입을 주도했던 국무장관 수어드는 그곳이 후손을 위해 엄청난 가치의 땅이 될 것이란 미래가치를 알아차렸지만, 대개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해서 헐값으로 사들이는 것조차 세금 낭비라고 여겼어요. 영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고려한다면 전혀 좋은 선택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해요. 1867년쯤에 알래스카를 매입했고 이때 캐나다는 여전히 영국령이었으니, 러시아로선 미국이란 완충 국가가 필요했을지도 몰라요. 반대로 미국민 입장에선 당시 최강대국인 영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요. 결과적으로 지금 와서는 수어드의 생각이 옳았죠. 수어드 덕분에 미국 국토에서 떨어져 있는 알래스카가 미국령이 된 것이죠. 대다수가 이 거래를 부정적으로 평가했지만요. 바로 그런 지점 때문이에요.


제가 하찮게 여기는 지점이 없는지 그걸 되짚고, 판단을 유보하면서 정말 실수하지는 않는지 고민하는 습관이 길러야겠죠. 그건 저 자신의 것에도 마찬가지에요. 처음부터 기가 죽어서 지레짐작해서 버릴 필욘 없어요. 정말로 사회적으로 악한 것이라든가 정말로 하찮다고 여기는 부분도 분명 있겠지만, 그런 것만 내면에 있는 건 아니잖아요. 분명하게 나쁜 가치만 아니라면, 하찮은 것조차 함부로 단정하여 버리지 않으려고 해요. 실수할 가능성에 대한 책임을 무한대로 두고, 실수를 인정해야 할 때가 오는 경우도 있겠지만요.

내가 배워온 것만을 무조건 찬양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내가 아는 너머의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는다면, 신중해지고 겸손해지지 않을까요. 저는 아직 제 안에 그런 가능성이 있다고 믿어보려고요. 천재들이 지닌 것처럼 대단한 것은 아니라서, 차마 현실 바깥으로 탈주하지는 못하더라도요. 전 아마 손가락만 빨면서 살라고 하면 그 전에 결단력 있게 포기할 거예요. 그럴 때는 결단력이 있는 편이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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