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민규 & 천재론3.2
[목차: 천재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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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민규: 전체를 파악하는 조망자이자, 자신의 비전을 포장할 줄 아는 탁월한 기획자
천재의 덕목이요? 사회의 역할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보니, 천재의 덕목이라는 게 딱히 있을까 싶어요. 그래도 이참에 정리를 하다 보니 사회 주도적인 입장에서도 천재에게 요구하는 덕목이 있기는 하더라고요. 저야 뭐 사회에 모든 흐름이 내재되어 있고, 그것을 기득권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에 천재가 당장 발견되지 않을 뿐이라고 했잖아요. 반대로 사회에서 필요해지면, 그러한 지점을 잘 드러내줄 천재가 호출되어, 호명되는 것이라고요. 이름 붙이기 나름이죠. 단지 여기선 천재란 호칭만을 언급했을 뿐이지 명인·명장·달인·거장 등등 이름은 많죠. 그중에서도 신생의 흐름이라면 아무래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남들이 파악하지 못한 비범한 존재로 포장하는 게 좋기는 할 거예요. 테크니컬 천재라면 이미 합의된 분야에서 등장할 때 잘 먹히니 쉽게 천재라는 호칭을 주며 경이로운 능력에 감탄할 수 있고, 이들은 딱히 자신을 설명할 필요가 없죠. 문학으로 예를 들면 유명 문예지에서 상을 받으면서 순수문학가로 출발한다면, 기존의 체계 내에서 비평의 지원사격 등을 받으면서 독자들이 기대한 교양을 약간만 흔들면서 활동하면 되죠. 이들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누구나 인정해줄 바탕이 형성되어 있어요. 그곳에 그들이 유입된 것이죠.
그런 곳에 초기에 진입한 장르소설가라면 자신이 일일이 자신을 변호해야 하죠. 그나마 낯설지 않은 장르라면 외국에서 그러한 전례를 찾을 수 있지만, 추리소설의 창시자라 할 수 있을 애드가 앨런 포우는 그럴 형편이 못 되었죠. 결국 그는 스스로를 자기의 문학론으로 변호해야 했어요. 그냥 넋 놓고 폼을 잡고 있으면 철저하게 외부의 시선으로 평가받아야만 하는데, 좋게 평가받을 수준까지 오른다면 말년의 마네처럼 간신히 기존 체계에 유입될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그냥 외부자로 탈락하고 마는 것이었어요. 패러다임의 천재 유형이라면 이러한 위험이 커지니, 더더욱 자기 이론이 절실해지죠.
그런 면에서 이미 사회에서 기득권이나 대중을 중심으로 충분히 알려진 경우가 아니라면, 새로운 사회적 흐름을 알리고 그 당위성이나 배경 이론을 기득권자에게 설명해야 할 때가 생겨요. 그러려면 사회의 전후 흐름을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겠죠. 감각적으로든, 논리적으로든요. 거기서 자신의 작업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하고요. 이를테면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서 사회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창출해내는 능력이라고 할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전략 및 비전이 마음속에 있어야 하죠. 그것을 상대에게 설득하는 능력까지 갖추면 더더욱 좋고요. 앤디 워홀이나 백남준을 떠올릴 수 있죠. 뒤샹은 또 어떤가요? 만일 변기를 거꾸로 뒤집어서 미술관에 전시하는 것을 동네 아이가 했다면 그건 미술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요? 그런 행위는 똑같이 흉내 낼 수는 있으니까요. 상상도 못할 일을 해서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사실 보고 나면 누구나 생각해볼 만한 것도 있거든요.
또 실제로 반드시 최초여야만 하는 것도 아니죠. 그러지 않고도 최초의 성공처럼 평가받는 사례가 역사를 살펴보면 많이 있어요. 워크맨도 거의 흡사한 제품이 있었다고도 하고, 휴대폰도 상용화 실패를 겪은 뒤에 모토롤라와 노키아가 떴죠. 그런 제품 중에선 최초의 시도가 항상 찬탄의 대상이 되지는 않거든요.
천재란 역할도 사실은 사회적인 파급력까지 고려한 것으로 볼 수 있잖아요. 그 흐름이 아주 명확해져서 그 역사를 더 튼튼히 만들려 할 때, 아무도 모를 때 골방에서 구상하던 실패한 선구자를 호출해서 다시금 천재로 각색해내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런 일이 생기는 건 아니죠. 그런 천재는 운이 있어야 하고요. 누군가 그런 역할을 부여해줄 때에만, 그런 반열에 오르는 것이니까요.
사회에서 호출하도록 만들려면 사회가 지닌 내용을 깨닫게 해주는 기획자의 면모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부지런해야 하죠. 끈기와 확신과 투쟁심이 필요하고요. 인정받을 때까지 노력하고, 만일 자신의 영역을 창출하기에 역부족이라면 기존의 관습 아래로 진입하여서 암중모색을 하는 우회로를 택할 줄도 알아야 하죠. 기존의 콘테스트에 참가할 수 있다면 그래야 해요. 자신을 알릴 기회를 붙잡아야 하죠. 자신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줄 관습적인 권위를 어느 정도 획득해도 좋아요. 그것 때문에 자신의 감각을 잃게 된다는 우려도 할 만한데 그런 배부른 소리를 하기엔 세상은 만만치 않으니까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상황을 타개하려면 방법이 그리 많지 않아요.
팀원들을 설득하고 투자자를 붙잡아야 하는, 영화감독이나 경영자에게 필요한 능력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게 천재들에게도 필요하죠. 개인의 창작자가 사회를 설득하는 것이니까요. 더 힘들겠죠. 없다고 착각한 지점을 수면 위로 들어 올리는 설득 작업이니까요.
이럴 때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행운이 생긴다면 수월해지겠죠.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가 록을 대중음악사의 수면 위로 들어올린 것처럼요. 그들과 함께 록의 역사를 들어 올린 수많은 아티스트가 있지만, 촉발의 주인공을 담당한 것으로 평가 받죠. 그다음부터 그 많은 록 뮤지션들 덕분에 돌이 저절로 굴러갔죠. 인기가 겹쳐 오래도록 대중음악의 핵심 장르로 자리 잡고 있고요.
이런 능력이 부족하다면 사회의 선택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그럴수록 운의 영역으로 진입하죠. 천재로 숭상 받다가 다시금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도 있고요. 그 일정 수준 이상으로 분야가 흥성하여 자동적으로 굴러가는 순간까지는 아무도 미래를 알 수 없어요. 사회의 흐름을 누가 정확하게 예언할 수 있겠어요. 점쟁이도 아닌데 말이죠. 그냥 실력을 갈고 닦으면서 기회를 기다려야 할 거예요. 그때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어야겠죠. 무르익은 상황에서 사회가 호출한 여러 천재 후보 중 치고 나와서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사회의 이해관계가 합치가 될 때 그는 천재로 호명되는 거예요. 설령 그런 비슷한 존재가 있더라도 대개는 그냥 조용히 사라지기 마련이죠. 우리가 아는 존재는 빙산의 일각으로 많은 이들은 사회에 타격을 주지 못하고 사라졌으므로, 천재들이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의 압도적인 역할이 더 중요해요.
어쩌면 이것을 기획하는 큐레이팅의 승리라고 해야 할까요. 더 많은 방대한 부문을 관리하는 능력이 사회 기득권층에게 생긴 때부터 자연발생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지역적 성과의 의미가 축소된 거죠. 마찬가지로 전면적인 광기의 낭만주의적 천재란 있기 어렵고, 그조차 사회의 필요에 따라 과장되는 면이 있죠. 대중이 그런 천재를 원한다면, 자본주의의 특성상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 가치를 끌어올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