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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Feb 26. 2024

탁월한 편집: '국화와 칼'과 교양서적

칼럼

[목차: 바깥의 글쓰기]

♬ 인용글 활용: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 탁월한 편집: '국화와 칼'과 교양서적

♬ 인용: 교양서 저술 때 유의 사항

♬ 재즈문화사: 교양서 주제 선택 때 유의 사항

♬ 목차 타이핑: 교양서 집필 때 유의 사항

♬ 인용 표기법: 교양서 집필 때 유의 사항

♬ 지식놀이: 편집인용과 그 사례

♬ 놀이글: 혼융인융과 코멘터리

♬ 르포 일기 수집: 교양서를 쓸 시간이 없다면

♬ 미디어비평: 코멘터리의 종류

♬ 트위터에서 보았던 기법 두 가지

♬ SF: 전자책과 링크 기법

♬ 직장인 창작: 미니픽션과 에피소드

♬ 미니픽션

♬ 에세이, 글쓰기의 멀티플레이어

♬ 상호텍스트성: 링크가 너무 많다는 건

♬ 1인칭 문학: 픽션에세이와 사소설

♬ 매드무비와 팬뮤직: 매쉬업과 리믹스

♬ 성경의 글쓰기 방식     





♬ 탁월한 편집: '국화와 칼'과 교양서적     

교양서, 교양적 글쓰기의 귀감이 될 만한 사례는 아주 많다. 매주 좋은 책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출판계에서 몇몇 장르를 제외하고는 지속해서 안정적으로 책을 팔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나마 일부 대형출판사에서는 빠듯하게 이익을 내는 구조라면, 영세 출판사에서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과거에는 교양서적 자체를 학계에서는 조금 하대하는 경향도 있었다고 한다. 단편 문학을 높이 쳐주던 그 시절에는 교양서 역시 돈을 벌거나 사람들을 가르친다는 2차적인 목적이 강했다. 학자로서 학술적 야심을 지녔다면 아무래도 논문에 더 치중하기 마련이었다. 지금은 모르겠다. 시절은 바뀌어서 좀 나아졌을까.

그런 면에서 보면, <국화와 칼>은 어찌 보면 교양서적답고, 어찌 보면 좋은 학술서 같다. 그 중간 경계에서 글쓰기에 여러 영감을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이 작픔은 미국 정부의 의뢰를 받아, 문화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가 일본 문화의 원형을 탐구하려는 목적에서 착상되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1944년 6월, 저자는 미국 국무부의 위촉을 받고 평균적인 일본인의 행동과 사고의 패턴을 연구하는 데 주력한다. 문화인류학적 방법론을 통한 것이었다. 어쩐지 고고학적으로 착각해서는 일본을 옆집처럼 방문해서 각종 문화재를 발굴하고, 사람들을 관찰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고, 이런 기념비적인 저작을 써냈다고 한다.

일본인이 쓰지 않았고, 단 한 번도 일본을 방문하지 않고도, 일본을 가장 객관적으로 해부한 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하니, 그 평가가 과대평가일 수도 있고, 어떤 대상의 본질에 가닿기 위해서 꼭 그 대상에 속해있지 않아도 된다는 본보기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오히려 멀리 떨어져서 보는 게 더 유리한 요소일 수도 있다.

그는 일본에 관한 기존 연구서와 2차 문헌을 폭넓게 독파하고, 소설과 같은 문학적 자료들과 전시 선전용 영화까지 섭렵해 인류학적 데이터를 추출했다고 한다. 이런 저술 방법에서 두 가지 유의미한 면을 추출할 수 있다. 우선, 루스 베네딕트가 활용한 방법은 수많은 자료를 섭렵하여 탁월하게 편집하는 방법이었다. 각종 자료를 인용하지 않고는 애초에 불가능한 작업이었고, 모든 시작에는 루스 베네딕트가 도출한 정보가 아니라, 누군가 도출했던 1차 자료에 근거했다. 결국 얼마나 엄밀하고 효과적으로 인용하는가 하는 싸움이 루스 베네딕트 저술의 핵심이었다. 기자다운 수집력과 통찰이 매우 중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탄탄한 수집력에 저자의 통찰력이 더해지면서, 교양서적 이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교양서적으로도 좋은 작품이겠지만, 일본 연구에서도 유의미한 위상을 차지한 작품이 되었다. 즉, 여러 정보들이 쌓여서 정교하게 직조되어 좋은 교양서가 될 조짐이 있었겠지만, 실력 있는 저자의 날카로운 재구성과 추론 덕분에 반발자국 더 나아간 작품이 된 것이다.

사실 이런 작품은 아주 많다. 이 경우엔 잘 만들면 정통의 범위 내에서도 손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다만,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학계의 보수성이 강한 편이라, 그에 걸맞은 아카데믹한 학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애초에 읽히지도 못하거나 진지한 비평 대상이 되지는 못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면을 고려한다면 관심 분야에 접근하기 위해서 다른 경력도 갖추는 것을 고려해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혹은 직장인으로서 개별 관심사에 도전하고 싶다면, 여러 분야에 접근하지 말고, 오로지 한 분야에 대해서 묵직하게 오래 파려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아무리 한국의 지식계 풍토가 보수적이더라도, 10년 이상 한 곳에서 꾸준히 노력한다면, 작은 채널 하나쯤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가능하다면 자기가 걸어왔던 길의 범위 내에 있는 분야, 혹은 아마추어가 접근해도 좋을 만큼 아직 보수적인 견고성이 미확립된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다.단, 너무 이질적인 분야를 선택한다면 독자 자체가 없을 수 있으니, 충분한 검토와 숙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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