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목차: 바깥의 글쓰기]
♬ 인용글 활용: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 탁월한 편집: '국화와 칼'과 교양서적
♬ 인용: 교양서 저술 때 유의 사항
♬ 재즈문화사: 교양서 주제 선택 때 유의 사항
♬ 목차 타이핑: 교양서 집필 때 유의 사항
♬ 인용 표기법: 교양서 집필 때 유의 사항
♬ 지식놀이: 편집인용과 그 사례
♬ 놀이글: 혼융인융과 코멘터리
♬ 르포 일기 수집: 교양서를 쓸 시간이 없다면
♬ 미디어비평: 코멘터리의 종류
♬ 트위터에서 보았던 기법 두 가지
♬ SF: 전자책과 링크 기법
♬ 직장인 창작: 미니픽션과 에피소드
♬ 미니픽션
♬ 에세이, 글쓰기의 멀티플레이어
♬ 상호텍스트성: 링크가 너무 많다는 건
♬ 1인칭 문학: 픽션에세이와 사소설
♬ 매드무비와 팬뮤직: 매쉬업과 리믹스
♬ 성경의 글쓰기 방식
♬ 재즈문화사: 교양서 주제 선택 때 유의 사항
처음에는 소설가 지망생이었다. 그런데 개인 사정으로 일단, 출판부터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 사정상 가족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를 위해 에세이라면 자기 신변잡기적 고백을 통해서 가벼운 접근이 가능했겠지만, 아무래도 그쪽으로 자신이 없어서 그랬는지, 또는 에세이라는 장르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랬는지, 또는 그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내 경험에 쓸 만한 내용이 없다고 여겼는지, 사실 젊은 나이에 남들에게 알려줄 만한 경험이 있을 리도 없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는지, 그러한 경험을 늘어놓는 것이 좀 멋쩍었다. 그런 성향이다 보니 소설을 쓰려고 했겠다.
어쨌든 당시에는, 잠시 소설을 뒤로 물리고 교양서를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뒤 관련 분야를 선택하려고 했는데, 사실 그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전부터 재즈를 열심히 들었고, 그러다 보니 언젠가 재즈 에세이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시에 재즈 역사 관련해 한국에서 출판된 책도 많지 않았다. 약 8~9년 동안 틈틈이 재즈 역사를 알고 싶어 틈틈이 관련 서적을 읽었고, 기 출판물 자체가 많지 않으니, 빠른 시간 내에 전체 윤곽을 섭렵할 수 있다고 여겼다. 실제로 자료 조사를 해보니, 정말 생각보다 기출판물 자체가 많지 않았다. 그만큼 안 팔리는 소재란 의미이기도 했다. 그나마 있던 재즈 책도 절판되는 경우가 많았고, 재즈를 출판했던 경험이 있는 출판사에서 다시 재즈 책을 내는 경우도 극히 드물었다. 논문도 반복적 내용이 겹치는 게 많았다. 애초에 외국 자료는 많이 볼 수 없었다. 그러니까 팔릴 만한 소재를 찾으려 했다면 안 좋은 선택이기는 했다. 재즈를 듣는 사람도 적은데, 그 사람들 중에서 책을 읽을 사람은 더 적을 것이니 그 확률에 기대는 상황이었다.
당시에는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그저 책을 내고 싶었을 뿐이고, 그런 경험을 얻고 싶었던 것뿐이다. 좋은 내용을 쓰면 책을 낼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만 있었다. 애초에 대단한 책을 쓰는 게 아니라, 1권의 교양서쯤이면 된다고 여겼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다. 재즈 관련 가벼운 정보서, 가벼운 단상을 곁들인 재즈 에세이를 염두에 두었다.
그렇게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중요한 책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런 뒤 초고를 ‘저질렀다.’ 말 그대로 저질렀다. 저지르듯 시작하다 보니, 시행착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에세이로 접근하려고 몇 매쯤 쓰다가 방향을 바꾸었다. 나같이 그냥 감상자의 입장으로 접근한다면 과연 출판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차피 쓰려면 한정된 자료를 바탕에 두되 거기서부터 최대한 내 역량을 발휘해 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약간 선회했다. 독자 생각은 일단, 안 하는 편이 오히려 감상자가 지닌 한계를 넘어서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오히려 공부하며 정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드하게’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적어도 이 책에서만큼은 그러한 선택이 적중한 셈이었다.
윤곽을 잡고, 초고를 끊는 데에는 6주쯤 걸렸다. 초고를 쓰는 기간보다 고치는 데에 시간이 한참 더 들었다. 여러 사정상 원고를 짧은 시간 내에 퇴고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할 수 있겠다. 묵히는 기간, 다시 톤을 재조정하는 기간 등등 1년쯤 걸렸다. 그 기간에 핵심 서적을 다시 읽고, 확인 차원에서, 기출판되었다가 절판된 책을 모아서 읽으며 점검했다. 이때 음악학적이지 않은 재즈 자료, 즉 음악사적인 재즈 관련 논문도 거의 다 읽어보았다. 이를 위해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마포도서관, 양천도서관, 정독도서관 등을 돌아다녔다. 절판 도서가 남아 있는 곳이라면 가야 했다.
일종의 기자다운 자세라고 해야 할까. 인터뷰이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하던 일 마다하고 달려가는 심정이었다. 그때 퇴고하면서 문장 하나하나마다 내가 모르고 하는 말은 없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어후, 내가 이걸 왜 쓰려고 했을까? 다시는 이 장르는 거들떠보지도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만큼 진이 다 빠지는 것처럼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 덕분에 많이 배우기도 했고, 역설적으로 내가 인문적 글쓰기에 잘 맞는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물론 음악학적으로 분석할 만한 귀가 없는 데다가, 칼럼니스트적인 접근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여겨서, 그 분야로 더 깊이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그때 고생했던 건 자산이 되었다고 믿는다. 다른 분야에서 이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저지르듯 쓰다 보니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 <재즈문화사>를 쓰면서 느꼈던 콤플렉스, 그 한계를 인식하다가 <시민지성>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재즈문화사>는 데뷔작으로서도 소중하지만, 그 뒤의 작업에서도 발화점이 되었다.
‘나라도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쓴 책을 진지하게 읽지는 않을 거야’라는 생각과 함께, ‘그래서 쓰면 안 되는 건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공존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그래도 쓰겠다면, 어떻게 쓸 때 유의미할까?’ 하는 생각이 바로 ‘재즈’로부터 출발했다.
아마도 물리학이었거나, 고고학이었거나, 역사학이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오래 엿보면서 그 분야의 흐름 정도는 알고 있었고, 다행히도(?) 국내 출판물이 적었던 상황이라, 성실함에 대한 가책 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 이왕 쓰는 거 제게 만족할 만한 책을 한번 써보고 싶다는 마음가짐으로 접근한 셈이다.
재즈학자 '요하임 E. 베렌트'와 비평가 '김현준'이라는 디딤돌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작업이었다. 재즈학의 관점에서 보면 그냥 그 디딤돌 위에 앉아서 풍경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거기로부터 약간의 문화사적 해석에서 제 지문을 묻혔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더 줄여도 되었겠지만, 당시에는 더 줄이면 내 것이라고 할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줄이지도 못했다. 줄이려고 내 것을 빼면 그냥 다른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고, 내 것만 넣으면 논의가 될까 싶었다. 물론 되기는 했겠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그때 재즈피플 편집장님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상찬을 받았을 때는 조금 기쁘기도 했다. 재즈 쪽이 워낙에 사람이 적다 보니, 그쪽에서 뭔가를 도모하려는 사람을 응원하는 마음이었겠지만, 그 덕분에 나로서는 뭔가 무거운 짐을 벗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재즈에 오래 머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만일 사회적으로 지면을 얻으려 했다면 이 분야에 머물기 위해 치열하게 승부하는 것이 좋았겠지만, 당시로써는 뭔가 ‘적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때문에 독자가 전혀 없는 이상한 주제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아마추어들의 글쓰기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터무니없어 보이기도 하는데, 그때는 약간의 자아도취도 있어서 저지를 수 있었다.
이쪽으로 걷지 않았더라면 그 때문에 더 후회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더는 돌아갈 수 없으니, 도대체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나, 내가 찾으려던 것이 무엇이었나 그것이 궁금해서 걸어갈 뿐이다. 어떤 가능성의 길도 가능성의 길일뿐이니,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걸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해야 할까?
시민 참여 글쓰기의 관점에서 보자면, 약간 방향을 튼 덕분에 <재즈문화사>로 나 역시 영감을 얻은 게 있었다고 해두자. 용어는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내 식대로라면, 시민기자적인 글쓰기라고 할 수 있고, ‘탁월한 편집’이라는 개념을 생각하는 계기로 작용하는 책이었다.
표절에 대한 끊임없는 강박이 이 책으로부터 태어났고, 모든 문장에 인용 출처를 달고자 하는 욕구는 그 때문이었다. 분명 그 학문적 역량의 기초는 내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알 수 없는 분야에서 시민적인 접근을 하려면 어디까지 인식하고 어디부터 질문하고 어디로 추론해 나가야 하는지 궁금해졌다. 어쩌면 이에 대해서 대중음악을 중심 사례로 해서 작업하는 때가 올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