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원이 Apr 04. 2024

성경의 글쓰기 방식

칼럼

[목차: 바깥의 글쓰기]

♬ 인용글 활용: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 탁월한 편집: '국화와 칼'과 교양서적

♬ 인용: 교양서 저술 때 유의 사항

♬ 재즈문화사: 교양서 주제 선택 때 유의 사항

♬ 목차 타이핑: 교양서 집필 때 유의 사항

♬ 인용 표기법: 교양서 집필 때 유의 사항

♬ 지식놀이: 편집인용과 그 사례

♬ 놀이글: 혼융인용과 코멘터리

♬ 르포 일기 수집: 교양서를 쓸 시간이 없다면

♬ 미디어비평: 코멘터리의 종류

♬ 트위터에서 보았던 기법 두 가지

♬ SF: 전자책과 링크 기법

♬ 직장인 창작: 미니픽션과 에피소드

♬ 미니픽션

♬ 에세이, 글쓰기의 멀티플레이어

♬ 상호텍스트성: 링크가 너무 많다는 건

♬ 1인칭 문학: 픽션에세이와 사소설

♬ 매드무비와 팬뮤직: 매쉬업과 리믹스

♬ 성경의 글쓰기 방식



 


♬ 성경의 글쓰기 방식

성경은 독특한 책으로,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서 여러 사람이 쓴 책 66권을 모아놓은 모음집 형태였다. 제각각 신앙의 방식이 달랐다. 기본적인 원칙이 있었지만, 세부적으로는 각자 정반대라 할 수 있을 방식으로 신실한 삶을 살기도 했고, 그마저도 실패한 경우도 있다. 일종의 콜라주였다. 어긋나거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삶들이 묘하게 어우러져 ‘아무렇게나 또는 의도한 듯이’ 놓여 있는 듯했다. 하나님의 뜻을 향하는 여러 기록을 긴 시기를 걸쳐 작성하고 그 중 선별된 내용을 한데 묶은 것이니 그럴 만하다. 엄밀히 말하면 책이 아닌 것도 있다. 신약의 편지 묶음처럼. 또한, 대필로 쓴 것도 많다. 저자도 불확실한 경우가 있다. 저자가 있어도 이름만 빌려준 것은 아닌가 싶은 것도 있다. 한 책에서도 시편처럼 저자가 뒤섞여서 정확히 누가 어디부터 썼는지 불명확한 것도 있다.     


이러한 성경의 글쓰기를 볼 때는 우선 짜깁기나 베껴쓰기의 관점을 검토해볼 수 있다. 물론 성경을 신앙적으로 바라볼 때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를테면 성령님이 오셔서 성령님이 사람의 육체를 통해 글을 쓰신 셈이다. 그러니 성경은 오류가 있을 리 없다. 성경무오설이다. 그런가 하면 대개는 그러한 성경무오설의 일부만 수용하여, 성령님의 주관에 따른 성령에 감동으로 지어진 책으로 본다.

그러한 점에서도 짜깁기와 베껴쓰기는 유효하다. 일단 신약의 중요한 책들이 마가복음을 기준에 두고 지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에서부터 이야기를 재구성하다 보니, 겹치는 부분이 많아졌다고 한다. 심지어 신정통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당시, 창세기 등등을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베껴쓰기에는 이러한 책을 베껴쓰는 과정도 포함한다. 편지를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는 것도 이에 포함된다. 그러다 보면 필체 등이 달랐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 등은 자신이 쓴 글이라는 것을 마치 서명, 혹은 영화 속 까메오 출연으로 낙관을 찍듯, 그렇게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이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사도 나 바울은”이라는 식이다. 그걸 보고, 설령 다른 필체더라도 바울이 주관하여 쓴 편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편지를 쓰다 보면, 모든 부분에서 그 사람이 쓰지는 못할 수도 있다. 전체적 방향을 만들어놓으면, 대필자가 글처럼 만듦새를 높여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바울의 경우, 일일이 그 문장에 관여했다고 아는데, 예레미야의 경우에도 대필자로 제자가 있었다는 해석이 있다.  예레미야의 경우, 조금 대필자의 역할을 컸던 것 같다. 설교 사역, 대필 사역 등 각각의 사역이 다르다고 여겼고, 하나님 앞에서 결백하면 된다고 여겼던 것이겠다. 더구나 예레미야서 자체가 예레미야가 썼는지, 아예 상관 없는 사람이 써놓고 그 이름의 권위를 빌려온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적도 있다. 예레미야라 하면 시련의 도래를 대언한 선지자니, 그와 같은 내용을 써놓고 상징적인 이름을 달았다는 의미겠다. 물론, 예레미야에 대해서 적었기 때문에 예레미야서라고 붙였을 것으로도 보인다. 진짜 기록자가 자신의 이름을 뒤로 물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가리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을까? 혹은 수많은 신학자들이 모아놓은 것을 대필자 여럿을 고용하여 적었을 수도 있다.

구전 기록 방식도 적용되고 있다. 모세에 대한 이야기가 다른 성경 파트에 쓰였을 때는 모세에 대한 기록보다는 구전을 통한 것이었다. 또 그 외에 다양한 구전 기록이 있었겠다. 때로는 다니엘서의 경우엔 시기상으로 다니엘이 아니라, 훗날 무명의 기록자가 다니엘의 이야기를 구전으로 듣고, 기록으로 옮겼다고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매드무비와 팬뮤직: 매쉬업과 리믹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