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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Mar 08. 2024

인용 표기법: 교양서 집필 때 유의 사항 #2

칼럼

[목차: 바깥의 글쓰기]

♬ 인용글 활용: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 탁월한 편집: '국화와 칼'과 교양서적

♬ 인용: 교양서 저술 때 유의 사항

♬ 재즈문화사: 교양서 주제 선택 때 유의 사항

♬ 목차 타이핑: 교양서 집필 때 유의 사항

♬ 인용 표기법: 교양서 집필 때 유의 사항 ~#2

♬ 지식놀이: 편집인용과 그 사례

♬ 놀이글: 혼융인융과 코멘터리

♬ 르포 일기 수집: 교양서를 쓸 시간이 없다면

♬ 미디어비평: 코멘터리의 종류

♬ 트위터에서 보았던 기법 두 가지

♬ SF: 전자책과 링크 기법 

♬ 직장인 창작: 미니픽션과 에피소드

♬ 미니픽션

♬ 에세이, 글쓰기의 멀티플레이어

♬ 상호텍스트성: 링크가 너무 많다는 건

♬ 1인칭 문학: 픽션에세이와 사소설

♬ 매드무비와 팬뮤직: 매쉬업과 리믹스

♬ 성경의 글쓰기 방식 





반면 지금부터 말하려는 것에는 개인적 차원에서만 쓰는 표현도 있긴 하다. 일단, 변용은 통용된다. 지금부터 말하려는 용어들을 포괄하는 상위 개념이다. 무엇이든 원 목적과 다르게 쓰이는 경우라면 ‘변용’이라 할 만하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말할 개념을 다 제외하고도 변용의 역할을 할 때 ‘변용’이라 표기한다. 또한, 뭔가 여러 영역에 걸쳐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명확히 포섭되지 않을 때, 그러면서도 분명 원 목적과 다르게 쓰일 때, “변용”으로 포괄적 표현을 쓴다. 

그 하위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세분화했다.      


첫째, 편집인용이다. 편집인용의 경우 보통 한 작품, 기사 내에서 분량을 줄이든지 해서 좀 더 명확하게 그 내용을 드러내려는 등의 목적으로 활용한다. 그러다 보면 자칫, 원 저자의 의도를 훼손할 수 있기에, 그냥 요약하지 않고, 편집인용이라는 말을 쓰곤 한다. 또, 이러한 편집인용의 경우 단순한 요약을 넘어서서, 때로는 그러한 요약적 편집을 통해서 원 저자가 의도하지 않은 내용을 도드라지게 할 때도 있다. 편집된 문구를 그 본뜻에서 훼손되지 않게 하지만, 그것으로 예상치 못한 새로운 풍경을 제시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변용의 한 유형이다.

둘째, 혼합인용이 있다. 이건 물리적 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화학에서 물리적 합을 이룰 경우, 구성 요소 각각의 성질은 그대로 살아 있다. 어찌 보면 역사서와 같은 교양서들은 대개 혼합인용을 적용하는 셈이다. 여러 출처의 정보를 정교하게 편집 조합해서 명징하게 하나의 의견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때 각 정보의 원 목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편집자가 원하는 단일한 방향을 향한다.

셋째, 혼융인용이 있다. 이건 화학적 합을 연상하면 된다. 화학적으로 결합하면, 각 구성요소의 성질을 잃고 하나의 새로운 물질이 되는데, 이런 경우 여러 출처의 정보를 묶어서 편집하다가 좀 더 과감하게 그 정보의 본 취지를 없애고 전혀 새로운 양상의 단일체로 변화하도록 의도하는 것이다. 리믹스 기법이 이에 해당된다. 전혀 새로운 주제를 뒷받침하는 경우로 나아간다. 본 출처에서 쓰일 때와 충돌이 생기면서, 은연 중, 원 출처의 쓰임새를 비판하는 경우로도 쓰일 수 있겠다. 꼭 그런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르네 마그리트의 데페이즈망 기법이 이에 해당한다. 뒤샹의 <샘>처럼 있어야 할 자리인 미술관 전시대에 변기가 놓임으로써 생기는 전혀 다른 성질의 다른 역할을 통해 발생하는 효과도 여기에 해당된다. 여러 출처의 재료가 섞인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

넷째, 오용이 있다. 그냥 본 취지를 잘못 활용하여 크게 실수하는 경우인데, 이런 건 되도록 피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의식적인 오용은 부조리한 상황을 연출하여 원 출처에 쓰인 양상을 비판하는 것으로도 활용되겠지만, 의식하지 못한 오용은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흔히 아는 패러디는 어디에 속할까? 만일, 그냥 어떤 작품을 조금 재미있게 경쾌하게 단어를 바꾸어 패러디를 연출했다면, 변용 정도에 해당된다. 물론 편집인용, 혼합인용, 혼융인용, 오용 등을 적용한 패러디도 많다. 미국의 패러디 영화 <스크림>을 보면 다양한 원작이 있는 내용을 교묘하게 짜깁기하는 방식으로 당대의 모순을 풍자하는데, 이것과도 연결해 볼 수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저작권에 가장 정면으로 충돌하는 경우를 언급해 보자.

우선, 미상인용이 있다. 이건 그래도 양심적으로 노력했다는 방증이다. 뭔가 분명 내 의견도 아니고,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사용하자니 출처를 모를 때 사용한다. 빼는 것도 좋은데, 진행상 꼭 사용하고 싶다면 ‘미상인용’이라고 쓸 때도 있다.  

실제로 거의 쓰지 않았지만, 어떤 출판물의 사례를 소개하자면 사진을 미상인용하면서, 책날개에 이렇게 적어놓은 경우도 있었다. “저작자를 모르지만, 협의하고 싶으니, 게재 사진의 저작자라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현 저작권 관행으로 보면, 나름대로 노력한 것이면서도, 저작자가 여전히 불쾌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싣고 본 것이니까.

둘째, 도용이 있다. 이건 어떤 경우라도 허용하기 어렵다. 의도적으로 도용하는 것이라면, 인용 놀이로써 가능할 수도 있겠으나, 다 말장난이다. 어차피 밝히기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놀이였다면 진정한 도용은 아니겠다. 진정한 도용은 남의 작품을 자기 것인 양 쓰는 것이다. 이런 인용 방식은 매우 질이 나쁘다. 

셋째, 무단인용이 있다. 아주 간혹, 저작권절대주의에 항의하는 퍼포먼스에 활용된다면, 제한적으로 이런 인용을 활용할 수도 있다. 물론, 대개는 그리 권장받기 어렵다. 블로그처럼 상업적 용도가 아니라면 묵인받기는 하더라도, 원칙적으로는 권장될 수 없다.     


도용과 무단인용은 출판물에서는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 간혹, 출판물 진흥을 위해서 영세 업체에서 특정 자료를 활용할 때, 손익분기점을 넘길 때까지는 비용 부담을 면제해 주는 방식을 정부 차원에서 가이드라인을 잡아주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는 한다. 그러려면 어떤 자료에 관해 문화 향유 차원에서 허용이 가능한지 심사 기준을 마련해야 하고, 추후 공정한 가격 기준이 필요하다. 일단 원 저작자의 상업적 손실이 사실상 없어야 가능하겠다.

이런 경우라면 일단 기사가 떠오른다. 정보화 시대에 공공재 성격도 포함한다는 점에서 기사글 비평이 조금 더 활발해야 하지만, 기사에 대한 코멘터리를 위해 기사의 상당량을 인용하려면, 원칙적으로는 비용 지불을 해야 한다. 그러고 이럴 경우 사실상 본격적인 기사 비평이라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그런 책 자체가 팔리지 않는데다가, 제작 비용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때 블로그와 같은 대안출판 채널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는 있다. 이를 의식적으로 활용하고, 이러한 글쓰기에도 제도적인 차원에서 인증해주고 피드백 하는 대안출판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면, 유의미한 흐름이 가능해질 것이다. 다만, 이런 식으로 공적인 창구로 인정받는다면, 거기서 발생하는 수익 문제 등으로 어차피 파생 문제가 생길 개연성은 늘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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