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목차: 바깥의 글쓰기]
♬ 인용글 활용: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 탁월한 편집: '국화와 칼'과 교양서적
♬ 인용: 교양서 저술 때 유의 사항
♬ 재즈문화사: 교양서 주제 선택 때 유의 사항
♬ 목차 타이핑: 교양서 집필 때 유의 사항
♬ 인용 표기법: 교양서 집필 때 유의 사항
♬ 지식놀이: 편집인용과 그 사례
♬ 놀이글: 혼융인융과 코멘터리
♬ 르포 일기 수집: 교양서를 쓸 시간이 없다면
♬ 미디어비평: 코멘터리의 종류
♬ 트위터에서 보았던 기법 두 가지
♬ SF: 전자책과 링크 기법
♬ 직장인 창작: 미니픽션과 에피소드
♬ 미니픽션
♬ 에세이, 글쓰기의 멀티플레이어
♬ 상호텍스트성: 링크가 너무 많다는 건
♬ 1인칭 문학: 픽션에세이와 사소설
♬ 매드무비와 팬뮤직: 매쉬업과 리믹스
♬ 성경의 글쓰기 방식
♬ 상호텍스트성: 링크가 너무 많다는 건
링크가 너무 많다는 건 때로는 안개를 뜻한다. 물론, 언뜻 보면 링크 쪽으로 숨김으로써 표면 텍스트는 단정하게 보인다. 그러한 선명함을 위하여, 편의성을 위하여 링크를 배치하겠지만, 그 선명함과 편의성은 사실 불투명함과 불편함을 품고 있다. 링크를 누르고 연결된 출처로 들어갈수록 그 링크에 담신 내용을 통해 본 텍스트의 핵심을 계속 뒤틀면서 본 의미를 지워나갈 수도 있다. 한마디로 이 복합 텍스트는 읽을수록 오리무중에 빠진다.
링크를 통하여 편리하게 이해의 편의를 도울 수도 있지만, 동시에 사유의 흐름을 방해할 수도 있다. 노력을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그러한 부지런한 독서를 통해서 더 알 수 없는 상황에 빠지는 것, 어쩌면 진짜 진리를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진리란 꼭 그렇다. 상대성 이론으로 열광했는데, 그것과 정반대를 가리키는 양자역학 이론이 모두 확신을 뒤흔들어버린다. 그러고 나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만다. 링크로도 표현해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