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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Mar 29. 2024

1인칭 문학: 픽션에세이와 사소설

칼럼

[목차: 바깥의 글쓰기]

♬ 인용글 활용: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 탁월한 편집: '국화와 칼'과 교양서적

♬ 인용: 교양서 저술 때 유의 사항

♬ 재즈문화사: 교양서 주제 선택 때 유의 사항

♬ 목차 타이핑: 교양서 집필 때 유의 사항

♬ 인용 표기법: 교양서 집필 때 유의 사항

♬ 지식놀이: 편집인용과 그 사례

♬ 놀이글: 혼융인융과 코멘터리

♬ 르포 일기 수집: 교양서를 쓸 시간이 없다면

♬ 미디어비평: 코멘터리의 종류

♬ 트위터에서 보았던 기법 두 가지

♬ SF: 전자책과 링크 기법

♬ 직장인 창작: 미니픽션과 에피소드

♬ 미니픽션

♬ 에세이, 글쓰기의 멀티플레이어

♬ 상호텍스트성: 링크가 너무 많다는 건

♬ 1인칭 문학: 픽션에세이와 사소설

♬ 매드무비와 팬뮤직: 매쉬업과 리믹스

♬ 성경의 글쓰기 방식





♬ 1인칭 문학: 픽션에세이와 사소설

잠깐의 이벤트라고 할 수 있고, 몇몇의 표현이긴 했지만, 작가들 중 소수가 픽션에세이란 표현을 쓰면서 관심을 지닌 적이 있다. 유명인 중에서는 ‘페이크 에세이’란 표현도 쓴다. 이런 장르가 있다기보다는 에세이의 형식을 적용하면서 사소설적인 허구를 도입하는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이라는 형식이 굉장히 폭넓다 할 때 픽션에세이를 굳이 에세이란 표현으로 혼동을 줄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을 것이고, 또한 현대의 반소설(누보로망)처럼 소설 경계가 무너지면서, “에세이문학”이라 칭할 수도 있을 흐름이 보이면서, 어쩌면 소설이 그 정교한 서사성을 버리면 곧 에세이요, 에세이가 사실성(?)을 버리면 곧 소설인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여담이지만 영화에서는 페이크 다큐, 파운드 푸티지, 모큐멘터리와 같은 표현이 있다. 책에서 일상적인 느낌을 주는 에세이보다 더 확장해서, 시사 고발이나 교양 프로그램을 가장한 방식으로 지식 놀이 형태로 활발하게 이러한 형식이 적용된다. 놀랍게도 제작비가 꽤 들어가는 시리즈물에서 이런 방식으로 제작되는 경우도 있으니, 이에 대한 수요가 생각보다 있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러한 페이크 시도는 개념 장난이 될 수 있을 텐데, 에세이란 형식의 특성을 중심에 두고 흔들어본다는 점에서 흥미롭기는 하였다. 픽션에세이와 사소설을 다르게 놓는다면, 그건 반대 방향에서 서로를 향해 치고 들어와서는 교집합을 이루는 것으로 보고 있어요. 픽션에세이와 사소설의 경계 사이에서 예민하게 그 영역을 설정하고는, 에세이가 지니는 솔직함의 미덕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그 솔직함의 허위의식을 짚어내려고 했다면, 에세이에 ‘픽션’이라는 표현을 덧붙이는 형용모순을 전략적으로 매력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 픽션에세이는 형식적 요소에 구애받지 않고 픽션이라는 설정을 통해서 개인의 목소리를 담대하게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쉬운 형식 속 모노드라마처럼 그 안에서 1인극의 형식으로 자신의 모습을 감춘다.

사소설에서도 그런 면이 있지만, 사소설은 애초에 픽션이라는 합의 속에서 여러 장치를 설정하더라도, 그것에서 드러나는 인물들과 사건에 적당한 사실을 겹쳐서 설계할 수 있다. 즉 허구 속에서 사실의 요소를 찾게 된다.

그런데 픽션에세이에서는 사실일 것으로 전제된 설정 속에서 허구를 찾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모든 것에 조심스러워지고, 1인극으로 확실하게 국한된 존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작가가 허구로 커튼을 치면서까지 하고자 했던 말, 쉬운 형식 속에서 그렇게라도 하고자 했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만일 픽션에세이가 설 자리가 있다면, 그리고 사소설과 나눌 만한 이유가 있다면, 그걸 전제에 두고 생각할 때, 둘의 차이를 마치 영화감독(사소설 작가)과 영화배우(픽션에세이 작가)의 관계로 놓는다. 사소설의 작가는 전체를 구상하는 영화감독 같다면, 픽션에세이의 발화자는 그 영화 자체의 설정을 고민하지 않고 그 안에 푹 빠져버린 영화배우 같다.

픽션에세이에서는 작가가 그저 1인칭 발화자인 인물을 좇는다. 마치 가상 게임의 유저라고 해야 할까? 무형식의 형식을 빌려오면서, 에세이의 형식 속에서 허구적 조건 설정이 가능해지고, 조금 더 편안하게 인물과 그 인물에게 해당되는 사건에 대한 주관적 해석에 몰입할 수 있다. 소설적 서사 구축, 사건의 정교한 설계 등등 부가적인 것을 설계하는 데에 힘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가능하다. 분명, 아마추어들에게서도 상대적으로 접근이 용이한 면이 있다. 사소설보다는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의미다.

분명 1인칭을 설정하는 것부터 다른 서사 형식을 적용할 떄보다는 창작에 수월한 데가 있다. 극으로 확장하면 모노드라마 등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1인칭 문학이라는 표현에도 관심을 둔다. 1인칭문학, 뭔가 1인칭에 집중하는 문학 장르라고 할까? 사실이든 허구이든. 소설과 에세이로도 나눌 수 있지만, 1인칭 문학과 비1인칭 문학으로 나눌 수도 있다. 1인칭 문학에서는 허구를 도입하든 사실로만 승부하든 그 범위와 인식 방식이 유사하다. 그걸 통해서 세계를 대면한다. 이렇게 나눌 경우, 에세이의 거의 모든 경우가 포함된다. 에세이문학이라는 임의적 장르 용어도 포함될 텐데, 대개 1인칭을 활용하는 누보로망 계열 반소설 역시 이 형식에 포함되지 않을까 싶다. 형식적으로 보면, 아마추어들에게서도 비1인칭보다는 상대적으로 접근이 용이한 면이 있다. 물론, 1인칭 문학에서도 엄청 복잡하게 꼬아서 골격을 설계할 수도 있겠다. 모더니즘 문학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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