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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Mar 24. 2024

죽은 자리와 그 목격자들

산문

록커 일화를 소개해주는 한 트위터에서 본 메탈리카에 관한 일화 중 인상에 남는 것이 있다.

당시 메탈리카는 유럽투어를 하고 있었는데, 밴드 멤버끼리 카드 게임을 해서 이간 사람이 제일 편한 자리를 차지하자는 내기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클리프 버튼이 편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날 버스는 전복되었고 클리프 버튼은 죽고 만 것이다. 게임에 이긴 행운이 결과적으로 인생에서 가장 큰 불행,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불행이 되고 말았다. 인생사 새옹지마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클리프 버튼 대신 그 자리에 앉았을 수도 있는 게임의 참여자들이 클리프 버튼 대신 죽었을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두 다 알 수 없다. 만일 누군가 게임에 이겼는데 어떤 사정으로 예전의 빚을 갚기 위해 좋은 자리를 클리프 버튼에게 양보했다면 그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흔한 감정으로는 죄책감이 있겠다.

 

이런 경우도 있다.

어떤 조종사가 L국가행 비행기를 조종하게 되었는데, 그날 아침에 아내가 심하게 말렸다는 것이다. 아내는 그 전날 밤에 악몽을 꾸었는데 아무래도 불안하다면서 비행 일정을 바꾸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프다는 구실로 동료와 비행 일정을 맞바꾸었다.

그리고 L국가로 갔다고 돌아오는 항공편이 사고가 났고, (혹은 L국가로 착륙하던 비행기가 사고가 났고,) 동료는 죽고 말았다.

그런데 행운 덕분에 살아남은 조종사는 그것을 동료들에게 떠들고 다녔고, 구설수에 한동안 올랐다. 만일 그런 악몽 때문에 바꾸었다면 동료에게 못할 짓이었기 때문이다. 그 교환 덕분에 살아난 것에 미안함을 느껴야 할 사람이 살아서 다행이라고 솔직히 얘기하고 다녔으니 사람들의 눈총을 살 만했다.

미신이긴 하여 그것이 어찌 그의 탓이겠느냐마는, 또한 그 역시 믿지 않았지만 아내의 간곡한 부탁 때문에 바꾼 것이므로, 그가 정말로 미필적 고의로 동료와 바꾼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찜찜함이 남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죽음의 자리에 인물이 바뀌었고, 그것이 운명이 바뀐 것인지 원래 그렇게 될 운명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죄책감과 경솔함 사이에서 구설수가 생겼다.

 

내 경우에도 죽음의 자리에 관한 기억이 있다.

나와 친한 친구였다고 한다. 어렸을 적, 그러니까 여섯 살 혹은 일곱 살 즈음 춘천에서 살 때의 일이다. 그때 동네에서 한 친구와 친하게 지냈다고 하는데, 그는 우리집에 와서 나를 불러내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난 그에 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아무리 기억하려고 해도 그렇다.

그저 기억나는 선명한 순간은 있다.

그날 밤이었는데, 그 아이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 갔다가 결국 죽었다고 했다. 현장검증을 할 아이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도로 한복판에 섰던 것 같다. 플래시가 터지고, 현장에 어린아이 크기 만한 사람의 윤곽선이 도로 위에 흰색 마커로 그려졌다. 왜 거기 서 있는지 몰랐던 나는, 아니, 분명 들었음에도, 그와 키가 비슷하고 나이가 유사한 아이, 더구나 그와 친했던 아이를 세웠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그 현장의 순간이 기억난다. 여럿의 시선과 플래시가 내 얼굴로 사정없이 달려들고 있었다.

그가 죽은 자리에 내가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는 사실일까? 대놓고 거짓은 아닐 것이다. 다만 온전한 사실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그저 유명인과 주변인과 내 경험처럼 남은 채 명백한 사실이었던 것처럼 기억할 뿐이다.그나저나 요즘엔 어떤 죽은 자리와 그 목격자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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