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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Jan 04. 2024

아무도 알지 않으려는 죽음, 들

산문 & 코멘터리

『최근 100일 동안 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 강북의 영구임대아파트단지. 영구임대아파트는 임대아파트 가운데서도 최저빈곤층의 주거공간으로, 사회 전반의 차별이 집중된다. 전국엔 영구임대아파트가 20만가구가량, 국민임대 아파트가 37만가구 있다. (하지만) 영구임대아파트에서의 죽음을 따로 연구한 정부나 학계의 보고서도 없다.』(편집인용 : 임인택, ☞「100일간 6명이…어느 영구임대아파트의 자살 행렬」, 한겨레, 2012-08-27)

 




잘 만들어진 공포영화는 그 시대가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을 교묘히 드러낸다. 100일 동안 6명이나, 그것도 이미 힘없는 사람들의 죽음, 그것도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죽음은 그 자체로 공포다.

우리에게 공포의 장소는 이미 공동묘지에서 아파트 등의 집단주거공간으로 옮겨왔고, 이제 공포영화에서 아파트는 익숙한 장소다. 현실의 무게에 억눌린 히스테리한 면을 공포영화의 판타지 문법으로 풀어내면 아파트와 같은 익숙한 공간도 낯선 공간이 되곤 한다.

그런데 이 기사를 보면 그냥 현실 속에서 어떠한 공포영화적인 변환기를 거치지 않고도 공포극영화 같은 다큐도 있다는 것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문득 거대한 죽음들이 차곡차곡 예약되어 있는 첨단형 납골당 같은 느낌이 들고 만다. 사건 속 자살자들의 “죽음을 따로 연구한 정부나 학계의 보고서도 없”는 지금, 누가 그들의 속삭임을 들어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복지제도가 열악한 우리 사회에서 단순히 이것은 구경꾼들이 구경하는 먼 곳의 공포가 아니다. 서서히 진행되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는 현존하는 공포다.

영구(영원)를 임대하려는 자들은 결국 그 기간이 끝나면 영원을 신에게 반납해야 한다. 다만 빼앗기듯 반납해야 하니, 아파서 눈물이 흐른다. ‘아파T’다.





손승연_너를 되뇌다(골든타임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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