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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Dec 31. 2023

<삼포 가는 길>을 읽고

독후감

당신은 어느 길에 서 계십니까?


- 사람이란 곁에서 오랫동안 두고 보지 않으면 저절로 잊게 되는 법이오 -


<영달은 어디로 갈 것인가 궁리해 보면서 잠깐 서 있었다>라는 첫문장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그렇다. 독자는 이 문장으로 인해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 작가에게서 질문을 받는다.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작가의 예시답안에서는 그닥 명쾌한 목적지가 있질 않다. 물론 영달은 떠돌이 신세로 목적지를 애초에 정하질 않았고, 설령 정해지더라도 그것은 임시방편의 것이다. 정씨의 경우는, 삼포라는 자신의 고향을 명쾌하게 목적지라고 말하지만, 자신이 그리던 10년 전의 고향은 이미 없다, 고 소설의 끝에 드러난다. 백화는 스스로의 기질을 못 이겨 다시 떠나게 될 것이라고 영달이와 정씨는 담담히 예견한다. 그럼에도 소설 내내 그들은 자신의 목적지에 관해 고민하고, 꿈꾸며, 그 이후를 생각한다. 그리고 운명처럼 소설 끝에서부터 다시 시작되는, 드러나지 않는 길에 그들은 놓인다. 그들은 <어디에나 눈덮혀 잘 분간할 수 없는 길> 위에서 백화처럼 <길의 고랑에 빠져 발이라도 삐었는지 꼼짝 못하고 주저앉아 신음할지도> 모른다. 우연히 그런 그들을 본 다른 이들은 또한 그들만큼의 길의 무게를 지닌 채 서로를 보듬은 후 스칠지도 모른다. 또 다른 옥자에, 여덟 명의 군인에 그리고 고향의 향기에 취했던 순간을 생각하며, 그래도 감히 행복했노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람은 모든 방향으로 가지런히 난 길을 따라, 간다. 너나 할 것 없이 인연의 흔적을 따라 정처 없이, 간다. 정처를 만들고, 지우고, 다시 만들고, 다시 지우고 간다. 그러다 보면 인연의 헐벗은 고난이 <새벽의 겨울바람처럼 매섭게 불어올> 수도 있다. <밝아오는 아침 햇볕 아래 헐벗은 들판>으로 드러나거나, 사방으로 뻗은 길 위에 서있는 나를, 당신을, 나와 당신의 주변을 두른 모든 사람들을 스쳐 <창공을 베고 지나> 갈 수도 있다. 그러면 인연 하나가 나이만큼의 인연 위로 쌓인다. 이렇게 쉴 새 없이 내리는 인연이 사람들의 <모자나 머리카락, 눈썹에 내려앉아 금세 그들을 노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길 위에 끊임없이 놓이는 사람들은 길을 따라, 결국에는 태연(太緣)하지만, 산더미처럼 쌓이는 인연의 사실적인 무게를 이겨내지 못해, 결코 태연(泰然)할 수 없다. ‘돌아오기 위해 돌아갈 뿐’이라고, 길은 태연(泰然)하게 말하지만, 영길이는 백화를 무의식중에 생각하며 그녀가 며칠 안에 고향을 떠날 것이라고, 그래서 그들은 영영 만날 가능성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백화는 행여나 그가 자신을 찾기를 바랐기 때문일까. 눈시울이 붉어지고, ‘이점례’라고 말마디를 뿌린다. 정씨는 가지런히 놓인 기차길 끝에 분명히 놓인 삼포를 갈 이유를 잃는다. 삼포는 있음에도 그의 삼포는 없다.

갑자기 모든 바람이 <눈발 날리는 어두운 들판>으로 사라지고, 그들은 길에 놓인다. 인연이라는 것은 사람에 대한 축복일까, 빚일까. 축복이라면, 사람은 살면서 평생 축복받고, 빚이라면, 살면서 평생 빚을 진다. 축복이라면, 길은 사람에게 가장 아름다운 축복의 형식이요, 빚이라면, 길은 사람에게 가장 힘겨운 아픔의 원천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사람은 길 위에서 말한다.

<인연이 닿아서 말뚝 박구 살게 될지. 이런 때 아주 뜨내기 신셀 청산해야지>라고 버릇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국엔 서로에게 <잘 가게>라고 말하고야 만다. 그 과정에는 행복했던 기억과 울었던 기억들이 하나로 범벅이 된 채 녹아있다. 그리고 이별의 바람에 베인 마음을 치료하려고 기억을 잠시 동안 길가 나무에 걸어놓고 있노라면, 문득 노인이 된 자신이 길이 되어 땅으로 스러짐을 알게 된다.





2004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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