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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Mar 13. 2024

알앤비의 승리

놀이글 & 고흐


"목소리를 꺾으니 공기가 휘는구나! 워우워우예"

알앤비야말로 흑인들 정서를 대중적으로 풀어낸 장르 중 '진퉁'이 아닐까 싶고.





"나 로버트 존슨은 악마에게 영혼을 판 자로 여겨졌지. 어느 교차로에선가 악마와 계약을 맺고는 갑자기 놀라운 연주를 했다는 전설."

사실 그 전엔 블루스가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알앤비와 달리, 재즈와 블루스는 숱한 괄시에도 결국엔 고평가를 받는 순간이 비교적 일찍 온다. 흑인예술로선.





"살도 붙지 않은, 선율 없는 음악 아닌 음악이라 했죠."

개인적으로 대중음악의 주목할 만한 사건으로 가장 최근에 있는 장르적 사건으로 '힙합의 등장'을 꼽는데,





"흑. 모색기인지 정체기인지 나도 모르겠네. 스웩. 뉴메탈 화이어!"

힙합 이후로는 창작방법론적으로 기존의 성과를 조합하는 식으로 모색기를 거치는 중으로 보는 편.





"아무렴 어떻소. 내일 지구가 망할 린 없고, 난 돈을 벌어야 하오. 사과나무를 묘목으로 심으면, 채산성이 안 맞아서, 다른 씨를 뿌리오."

어쨌든 그 힙합 전에 주목할 만한 장르적 사건으론 60년대 록 무브먼트, 그리고 그 전에 재즈와 블루스의 대중음악으로 유입한 사건이 아닐까 싶다. 그 어느 것이든 어쨌든 그 어디에도 알앤비가 그에 걸맞은 적은 없었던 듯하다.






"나 알앤비에게도 축복의 때가 있었지."

물론 최근 롤링스톤즈의 대중음악 명반 리스트에서 알앤비 장르의 71년 음반(마빈 게이)이 1위를 하기도 했지만,





"지금 와서 그렇게 봐주니까 그렇지, 그땐 결코 풍족하지 않았다고. 주머니에 동전밖에 없었어."

그건 지금의 재평가고 여러 장르의 흐름 중에서 알앤비는 약간 가벼운 흑인 장르 취급을 받았다고 해야 맞을 듯.





"아무 거나 불겠소. 알앤비는 그냥 현장에서 악보 대충 쓱 보고."

재즈맨 중에 재능있던 색소포니스트가 마약 중독 탓에 약값 벌려고 알앤비 밴드에서 재능을 썩혔다는 식의 표현도 있고.





"이 못난 삶이여! 워우워우예."

그리고 리듬앤블루스는 블루스라는 형에게도 밀리고, 재즈라는 사촌에게도 밀리고. 심지어 힙합이란 새카만 애송이에게도 밀린 셈.





"남들은 내가 꽃길만 걸어온 줄 안다오."

그러다 지금 와서 우연히 알앤비 평가를 보면 격세지감이다.

요즘 알앤비가 얼터너티브라든지 네오소울이라든지 알앤비힙합이라든지 프로그레시알앤비라든지 이런저런 표현으로 그 특이한 음색과 정서를 들려주는데, 솔직히 좀 매혹적이다. 비실비실한 줄 알았던 장르가 어찌어찌 대중과 함께 호흡하다가 어느덧 보니, 자기 구실을 하고 있던 것.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네. 두비두비다디답 삐리빠리삐리뽀비바아압"

심지어 대중음악은 알앤비의 승리라는 식으로도 과대평가까지 받는 상황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로크놀 네버 다이!" / "뭐래?"

록이 힙합과 알앤비에 졌다고 하고 싶진 않다. 록도 역시 변호해야 할 중요한 대안팝이니.





oceanfromtheble: 검은 머리 / 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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