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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May 07. 2024

노련하지 않아도 좋으니 #1

빌드업 & 콜라주

[소개글]
- 삼행시 등을 콜라주 재료로 활용하여 그림 콩트로 빌드업했습니다.
- 이 중에 일부는 브런치스토리에서 공개할 수도 있습니다.
- 이미지는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콜라주 재료]
→ [원피스]어찌 보면 슬프고, 어쩌면 물결치는 잠깐의 순간
→ [놀이글]엄마는 우리 딸 사랑해
→ [삼행시]오렌지 빛깔 감수광
→ [삼행시]결제 전 증상과 눌린 버튼에 관하여
→ [삼행시]빛은 하나의 선처럼, 너의 이름처럼
→ [삼행시]노련하지는 않았어도, 노련할 수 없어서
→ [놀이글]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일기장을 메모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녀를 보았을 때부터요.”


어찌 보면 슬픈 입매였다. 눈물이 떨어지다 입 꼬리에 걸리면 조용히 부서졌다.

사실 입매가 슬프다는 것은 애매한 표현이었다. 물결치는 머리카락이 굽이굽이 흩날리다 무늬로 엉킨다는 표현은 적절할까? 그리운 눈빛이란 어떤 것일까? 원망으로 짐 지워진 눈망울이란 또 무엇일까? 그녀의 시선에선 알 수 없는 감정이 간신히 남았다가 잔잔히 증발되는 듯했다.






사실 찰나의 시선에 관하여 무언가를 해석해낼 필요는 없다. 어차피 타인의 생각과 삶은 알 수 없고, 오래 살며 경험을 쌓아도, 언제나 미래는 알 듯 말 듯한 방향으로 흐른다. 어차피 알 수 없는 인생처럼 매번 다르게 변주되는 타인의 의미는 끝내 모른 채 안개처럼 흩어지기 마련이다.

점점 멀어지는 느낌에 콧잔등에 시큰한 자극이 오고, 잠깐의 순간, 하지 않은 경험으로 아련할 때도 있겠지만.





→ 나, 융지은
“때로는 일기장에 글을 끄적이던 순간에 흘러나오던 배경음악으로 기억되죠. 어떤 감정은요.”


“남편과 사별 후 오랫동안 딸애를 뒷바라지 하는 것에서 제 보람을 찾았어요. 그러다 그녀를 보았지요. 그녀를 보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죠. 나의 질투, 나의 부정, 나의 깨달음, 나의 온전함, 어느 표현이 맞는지를 모르겠어요. 딸애와 함께 그녀를 응원했어요.

제 앞에 홀연히 나타난 워너비 스타라고 해야 할까요?”






“한가로운 시간에 그 사람 이름을 되뇌어 보았어요. 이름을 몰래 불러 본다고 문제가 될 리는 없었으니까요. 그 정도는 자유였죠. 그런데 어느 날 그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들었을 때가 있었죠. 의사는 이것이 어떤 작은 의식 같은 것이라면서 별빛을 양지 바른 곳에 묻는 과정이라고도 했죠.

어떤 별빛을 묻는 과정이라는 걸까요? 제 꿈을 이루지 못하고, 엄마의 삶에 집중하려던 순간일까요? 딸애의 성취에 집중하며 나를 찾아가려던 그 모든 순간일까요?"


때로는 끈질기게 모호한 것도 있죠.






“그 모호한 감정은 지평선 어딘가로 쉴 새 없이 은은하게 번졌어요. 빛은 하나의 선처럼, 새벽의 어두운 공간으로 번지면서 차츰 정체를 드러냈죠. 밤잠을 설치고는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고단한 미소처럼요. 빛이 퍼져서 묵묵히 서 있던 나무에 드리워지던 오래된 그림자처럼요.”


“그때 사람들이 그 광경을 가리키며 소리쳤죠. 오래도록 기다리던 풍경이 기어이 드러나는 순간이었으니, 열오르고 숨 찬 목소리로 소리 쳤던 거죠. 그러자 산 절벽 아래로 메아리 치는 자신의 감탄사를, 때로는 그리워하는 이름으로 마주치게 되었죠.”






“딸애와 함께 그 사람을 응원하는 팬클럽에 가입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함께 평범한 모녀로서, 어찌 보면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모녀로서 콘서트를 함께 다니곤 했죠. 방탄소년단이었으면 다큰 어른이 어린 남자를 좇아다니면 쓰겠느냐는 시선도 있다지만, 제가 좇아다니는 스타는 여성이었으니 그런 시선도 없었죠.

그러니 제 감정은 온전히 저만의 것이었답니다.”


“일일카페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게 어찌나 큰 기쁨이었던지.”






“엄마를 온전히 안다고 자신할 순 없지만, 그래도 남들보단 오래 함께 살았는데, 그래도 조금은 더 알지 않겠어요? 엄마는 많은 것을 양보하면서 살았다고 생각해요.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런 심증이 생기던 순간들이 어렸을 적 여러 번 있었어요.

제가 그런 쪽에 무감했다면 모르겠지만, 어쩌면 엄마는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하며 살지는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날 우연히 엄마의 일기장을 보게 되었는데,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모아둔 돈으로 노래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고 했던 날이라서 선명히 기억하죠.

네, 제가 노래 공부를 더 해보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아낌없이 응원해주셨죠. 자기도 노래를 하고 싶었을 때가 있었다면서요. 너는 포기하지 말라면서요. 엄마보다 더 재능이 있다고 했어요. 그런 긍정적인 기운들 때문에 더 기억나죠.”






“오렌지는 늘 시고 달다. 간혹 시기만 할 때도 있지만, 은은한 향이 입 안 가득 맴돌 때 몸이 살짝 떨리는 자극으로 생동하는 기쁨을 느낀다. 뭐 이런 간드러짐이 다 있을까. 이건 애잔하고 찰진 슬픔을 버무린 채로 자칫 너무 슬플까 하여 물로 조금 희석한 뒤 낭랑하게 우는 간드러짐이었다. 길거리를 배회하는 고양이라면, 그 아이가 길을 잃지 않았으면 싶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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