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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May 26. 2024

빈센트의 풍경

원피스 & 고흐


빈센트는 어린 시절 보았던 한 장면을 오래도록 잊지 못한다. 아무도 그에게 그날 사건에 대해서 더는 말하지 않지만, 빈센트는 종종 꿈을 꿀 때나 무심코 신발이나 의자를 볼 때 그날 한 장면이 떠오르곤 했다. 그건 슬픔과 분노를 동반하는 종류의 이미지였다.

당시 아버지와 빈센트는 엄마가 데려왔던 형과 함께 그럭저럭 평범하게 살았다. 형은 빈센트보다 두 살 위였는데 아버지가 다른 그를 친절히 대해주는 편이었다. 딱 여느 형들과 별다를 바 없이. 엄마나 아버지 역시 형과 빈센트를 동등하게 대우해주었고, 빈센트 역시 돌이켜보아도 그건 대체로 맞는 듯했다.

그러니 가정불화가 재혼 때부터 파생되는 복합적 문제 때문에 생긴 건 아니었다. 형 때문에 생긴 일도 아니었다. 그저 빈센트의 아버지는 술을 좋아했다. 너무도 좋아했다. 일을 하다가도 술 때문에 하던 일을 잊을 정도였고, 인테리어 작업 일을 다 잊고 작업장에 나가지 않는 바람에 사장으로부터 계약 해지를 당하는 일까지 생겼다. 그런 일이 겹치다 보니 엄마와 아버지는 말다툼을 하는 날이 많았다. 자세한 건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에도 그랬던 것 같다. 늘 고성이 오가고 때로는 욕설이 오가기도 했다.

그날도 빈센트의 아버지는 변함없이 술에 잔뜩 취해있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밖에 나가서 술을 또 한 번 거나하게 마시고 들어왔었다. 그럴 때면 빈센트의 집은 늘 침체되어 있었는데, 아버지의 신발 소리가 들리면 빈센트는 아버지의 괴롭힘이 두려워 침대 밑으로 들어가 잠을 자곤 하였다. 아버지가 불러도 나가지 않는 편이었다. 숨어 있다 보면, 아버지가 찾다가는 더는 흥미를 잃고 술을 마시는 데 몰두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날도 그런 과정은 엇비슷했다. 다만 술상을 차려달라는 아버지의 말에 엄마가 무어라 한마디를 하였는데, 갑자기 격노한 아버지가 엄마가 몸싸움을 벌이는 듯했다. 엄마는 힘겹게 뭐라고 소리치려다가 불발된 목소리처럼 잦아들었다. 곧이어 형의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한 겹 두꺼운 장벽에 가로막힌 듯했다. 그것은 소파 쿠션이었다고 한다.

갑자기 두 소리가 잦아들자 빈센트는 극도로 공포에 휩싸여선 본능적으로 입을 막고는 거실쪽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낮은 데서부터 위를 보아야 하는 시점이었다. 방문은 살짝 열려 있었고 그 제한된 틀 안에서 의자가 하나 보였다. 아버지는 의자에 앉아서 모든 것을 상심한 듯 흐느껴 울었다. 그러면서 “빈센트! 빈센트, 어디 있니?”라고 되뇌었다.

그러더니 울음이 잦아들었고, 더는 빈센트를 찾지 않았다. 몇 분쯤 뒤였을까, 그는 천장 쪽에 보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위쪽을 향해 발꿈치를 들었다. 무언가를 잡아당기는 듯하더니, 튼튼하다 싶었는지 허리띠를 풀고는 둥글게 만들더니 허리띠를 위로 올렸다. 아버지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빈센트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기가 무서웠다. 눈을 감고 있을 때 와당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보니 처음으로 아래쪽 광경이 눈에 보였는데, 의자는 보이지 않았고, 아버지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신발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끼익끼익 하며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소리 같았다. 그 소리에 맞춰 꺼졌던 불이 자동센서 감지 때문인지 자꾸만 다시 켜졌다. 노란 불빛이 깜빡였고 어둠으로 휩싸이기를 반복했다.

모든 게 툭 하고 빠져버릴 것 같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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