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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Sep 27. 2023

습관적인 위로

산문


Vincent van Gogh


집까지 가려고 나서는데, 하필 그때 부고 소식이 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사람들과 약속 시각을 잡고 빈소가 마련된 병원 앞에서 보기로 한다. 대개는 집으로 돌아가서 양복으로 갈아입고 구두를 신고는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려고 한다. 때로는 검은 넥타이까지 매기도 하는데, 요즘엔 상주가 아니라면 검은 넥타이까지 하고 가면 좀 과하다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간혹 신발은 갈색 구두라든지 캐주얼이어도 괜찮게 변한 듯하다. 어차피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절을 하거나 묵념을 하기에, 양복 자체가 중요하기 마련이다. 

간혹 급하게 가느라 캐주얼 차림이거나 원색의 옷을 입은 경우도 생기는데, 가급적 그런 경우를 만들지 않으려 하지만, 가끔 정말 애매할 때가 있다. 빈소가 집이랑 정반대여서 그날 집에 갔다 가기에는 이미 저녁대라 난감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발인이고, 본인은 발인에 참가해야 할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닌 데다가 내일 중요한 미팅 일정이 있다면, 부득이하게 간편한 차림 그대로 병원의 빈소를 찾아야 할 때도 있다. 그때 좀 지나치게 '튈' 때도 있는데, 신발을 정리하다 보면, 그런 신발이 눈에 도드라지게 보일 때가 있다. 

그는 지금 무슨 일을 하다가 급하게 온 것일까? 단지 귀찮아서, 조금만 참으면 된다는 심정으로 그냥 온 것일까? 그런 허례를 크게 개의치 않는 사람일까? 아니면 꼭 와야 하는데 상황이 애매해서 부득이하게 실례를 무릅쓰고 그냥 온 것일까? 아니면, 황망한 채로 우연히 근처를 지나다가 바로 달려온 것일까?

그는 빈소에서 가장 깊이 슬퍼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빨리 예를 다한 뒤 집에 갈 마음으로 가득할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그들의 신발이 빈소에 있다 갔으므로. 그런 걸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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